[시골의사의 투자노트]기술적 분석 ‘No’…직관이 투자 성패 갈라

- 시장이 통계 범주 벗어날 때 '결정적 승부처' ㆍㆍㆍ'과거를 믿지 말라'              --시골의사  박경철--

 

 주식시장을 판단하는 잣대는 다양하다. 하지만 그중에 가장 큰 흐름은 모멘텀 투자와 내재 가치 투자다. 이 중에서 내재 가치 투자는 가격의 정당성 측면에서 가장 확실한 투자법이다. 예를 들어 어떤 다이아몬드가 커팅이 잘못돼 싸게 팔리더라도 그 다이아몬드의 원석 가치가 그보다 비싸다면 그것은 분명히 싼 것이다.

 

겉과 속 다른 가치주 펀드

유가증권의 가치는 다이아몬드와는 달리 가변적이다. 이는 대상이 되는 기업의 영속성이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어떤 기업이 보유한 땅의 가격이 100억 원인데 시가총액이 90억 원이라면 그 기업은 당연히 싼 것이어야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만약 이 기업이 영업이익이 나기는커녕 오히려 결손을 내고 있다면 이 기업의 가치는 지금 당장 해체하지 않는 한 앞으로 더욱 나빠질 것이다. 이 경우엔 기업의 존속 그 자체가 위험 요소가 된다.

 

또 어떤 기업의 이익이 시가총액의 10%쯤 된다고 가정하면, 그 기업의 이익을 십년치만 모아도 기업을 살 정도로 저평가됐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기업의 이익이 지난 몇 년간 10%의 영업이익을 냈다고 해서 다음해, 그 다음해에도 같은 이익을 낸다는 보장은 없다. 말하자면 기업의 청산 가치가 시가총액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영업 상황이 나쁘고, 기업의 영업이익이 많아 시가총액이 올라간 경우에는 청산 가치가 너무 높게 평가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내재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도 직관이라는 고도의 정신작용이 필요해진다. 즉, 그 기업의 영속성, 지배력 등 수치로 나타나지도 않고 계량화할 수도 없는 잣대들이 필요해지는 것이다. 해당 기업의 재무제표나 실적이 추호도 틀림이 없고, 또 그것이 시의성을 가지고 있는 자료여야 하며, 그것을 분석하고 평가하는 능력이 있다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내재 가치를 잘 평가했다 하더라도 문제는 남는다. 대개 내재 가치가 낮은 주식들은 내재 가치 저평가라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그 시점에서 시장으로부터 외면 받고 있는 주식이다. 그 때문에 시장의 논리가 현재 관심을 받고 있는 종목들에서 가격 부담을 느끼고 새로운 주식에 관심을 돌리는 시점이 아니라면 그 주식을 보유한다는 것은 길고 힘든 인고의 과정을 거치게 된다. 예를 들어 1990년대 후반에 일어난 성장주의 혁명에서 외면 받았던 가치주 보유자들은 길고도 고독한 시간을 보내야 했을 것이다.

 

결국 내재 가치에 투자한다는 것은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모든 주식은 언젠가 가격이 평형 상태를 이룰 것이며 덜 오른 주식(관심이 적고 내재 가치가 우량한 주식)을 보유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이익을 낼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런 국면이 올해 일어나고 있다. 2003년 이후 시작된 펀드 혁명의 초기 단계에서 시작된 한국 사회의 가치 투자 논리가 본격화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한국 시장에 펀드 투자 자금이 급증하고, 그것이 다시 제2의 정상주 시대를 이끌어 낸다면 소위 내재 가치가 우량하다는 주식들은 그만큼 성장성이 부족하다는 혹독한 평가를 받으면서 길고 긴 겨울잠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래서 가치 투자는 반드시 여유자금으로 해야 하고, 다른 주식의 가격에 연연하지 않고 단지 자신의 판단을 믿으며 시장의 항상성에 신뢰를 보내는 마인드로만 가능한 것이다.

 

문제는 지금 한국 시장의 투자자들이 이런 가치 투자의 논리를 너무나 쉽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치주 펀드에 가입하면 그것이 금세 두 배 세 배의 이익을 올려주거나, 항상 펀드 수익률 상위에 포진할 것이라는 기대들이 팽배해 있다. 실제로 가치 투자를 내건 펀드의 상당수가 좋은 성과를 내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는 적지 않은 가치주 펀드들이 내재 가치보다는 엄밀히 말하면 전통주와 자산주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 데다 중소형 종목을 집중 매수해서 수익률이라는 숫자 놀음을 하는 등 펀드의 무도덕성에 상당 부분 기인한 것이지 진정한 의미의 내재 가치 투자의 결과는 아니라는 점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한편 또 다른 일단의 투자자들(사실은 대개의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투자 방식은 모멘텀 투자다. 이 방식 역시 가치 분석과 기술적 분석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 가치 분석을 내재 가치 투자로 오해하는 투자자들도 많다.

이 경우의 가치 분석은 다분히 성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내재 가치 분석이 성장성을 보는 관점은 ‘이 기업의 영업이익이 최근 3년간 증가했으므로 내년에도 불어날 것’이라는 예측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현재 알고 있는 수치들을 앞으로도 그대로 믿을만한 가치로 평가해도 되는가(예를 들어 독점적 지위 등)를 판단하는 것이다.

 

주식 투자는 고도의 정신적 행위

모멘텀 투자에서 가치 분석은 이런 방식이다. 즉, 과거 해당 주식의 주가수익률(PER)이 15배에서 8배까지 거래된 적이 있으니 현재 PER 10배인 가격은 싼 편이라거나, 이 기업의 주당순자산배율(PBR)이 0.8~2배 사이에 거래된 적이 있으니 지금 1.0배는 싸다는 식이다. 그래서 이 기업의 과거 평가를 기준으로 주가를 판단해 이 기업의 적정가는 얼마이고 그래서 저평가라는 논리가 성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방식을 가치 투자라고 부른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기본적으로 내재 가치를 평가하는 것은 상대적이 아니라 절대적 개념이어야 한다. ‘무조건 싸다’는 존재하지만 ‘과거에 비해 싸다’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렇게 과거에 비해 싸다는 개념은 결국 ‘통계의 범주’에서 가격을 평가하는 것이고 통계란 과거의 궤적을 따지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기술적 분석가들은 통렬한 반박을 한다. 그렇게 잘 알지도 못하는 기업 실적을 예측하려고 애쓰지 말고 그런 흐름들은 이미 가격에 모두 반영돼 있으니 차라리 가격의 궤적을 살피라고 주장한다. 즉, 과거의 가격들을 통계적으로 살피면 현재 주가의 흐름이 높은지 낮은지 알게 되는데 왜 굳이 부정확한 기업 분석을 하느라 애를 쓰느냐고 되묻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어느 쪽이 옳든 양측 모두 과거의 통계에 바탕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식 투자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통계의 영역을 벗어나는 순간에 대응하는 고도의 정신적 행위다. 과거의 통계에 입각해 해당 주식에 PER 20배를 적용하건 10배를 적용하건, 얼마를 기준으로 PBR를 적용하건 간에 그것은 과거다. 또 전고점과 전저점을 보든, 혹은 추세선을 살피든, 그리고 추세선을 합한 추세대와 가격의 가속도를 분석하든 이들 모두 과거의 통계에 바탕하고 있다는 결정적 한계를 가진다.

 

통계의 범주에 드는 가격 행위란 참여자 모두에게 적당한 이익과 손실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박스를 형성하는 가격은 고점 매도, 저점 매수가 가능하지만 그 폭은 크지 않다. 반면 추세적으로 누적된 적당한 이익은 통계의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 일거에 사라진다. 1만 원대에 사고 1만5000원대에 팔기를 반복해서 몇 번의 이익을 냈더라도 지난 7월 말 이후처럼 순식간에 급락하는, 예상 밖으로 통계의 범주를 벗어나는 가격 흐름이 나타나면 고스란히 손실을 보게 마련이다.

 

반대로 1만5000원에 매도한 주식이 갑자기 급등해 10만 원이 되는 상황을 넋 놓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 통계의 함정이다. 같은 논리에서 보면 지난번 주가 2000을 넘은 시점의 한국 주식시장은 여전히 통계적 범주에 있었다. 대부분의 투자자들이 통계적 범주 사이에서 안정적인 이익을 내고 있었지만 그 이익이 사라지는 데는 10분의 1의 시간만으로도 충분했다.

 

결국 주식 투자는 통계의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의 이익과 손실을 취하는 예술이다. 기술적 분석은 모두 통계의 범주라는 함정에 갇혀 100번의 작은 이익을 보장하지만 1번의 큰 이익을 취할 기회를 앗아가고 90번의 저점 매수를 보장하지만 1번의 통계적 범주를 벗어나는 손실로 그간의 이익을 날려버리기 일쑤다. 그래서 모멘텀에 투자하는 투자자들은 통계의 범주를 벗어난 가격 움직임 속에서 결정적인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하지만 이는 직관의 영역이니 주식 투자란 이래저래 고달프고 어려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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