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의사의 투자노트     소수 성장주에 집중…가치투자 ‘시들’

- 주가지수 우상향 추세 ‘느슨’… 경기 방어주로 중단기 승부해야 

 

 지난 호에서 필자는 ‘통계의 범주를 벗어나는 국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이 용어의 진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난 1998년 6월에서 1999년 7월 사이의 1년간의 주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주가는 단기간에 400% 정도에 가까운 상승률을 기록했다. ‘500원짜리 담뱃값 수준’이라고 불리던 절대적으로 낮은 개별 주가 수준에 기업 구조 조정으로 인해 갑자기 늘어난 유동자금의 유입은 그야말로 기름에 불을 붙인 듯 주가를 끌어올렸다.

 

이때 시장은 단순한 모멘텀의 논리와, 덜 오른 주식은 무조건 오른다는 잘못된 믿음을 투자자들에게 심어줬고, 소위 순환매라는 용어가 일상적으로 통용됐다. 이에 따라 개인 투자자들은 수익의 절정을 맛보았고 가격의 저항선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어떤 통계적 수단을 동원해도 지표는 ‘과열에 과열’을 가리킬 뿐이었다. 주식 투자는 그야말로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지금 주가수익률(PER) 70배 수준의 중국 증시가 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확하다.

 

그 후 2000년부터 조정을 시작한 증시는 8년 만에 2000을 기록했다. 저점인 500을 기준으로 보면 약 300% 상승을 달성한 셈이다. 단순 수치로만 본다면 이것은 놀라운 수준이며, 가격의 신천지다. 하지만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1~2년 내에 주가지수가 4000이 된다고 가정해 보자.

 

초과 하락 종목도 위험

무려 4000이라는 상상하기에도 놀라운 시대가 열린다고 해도 개인 투자자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은 그리 매력적인 것이 아니다. 4000에 도달한다고 해도 주가는 현재가에서 두 배를 목표로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1998년 당시 1년간의 400%에 비하면 대단히 느슨하고 가속도가 느린 상승이다.

 

이런 상황을 가정하고 장기 이동평균값에 대한 이격(장기 이동평균선에서 주가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알아보는 값)을 기준으로 생각해 보면 가격은 장기이동평균에 수렴 중이며, 1990년대 후반 이후 가격은 고점을 높여가는데 이격은 점차 줄어드는 양상이다. 이는 시장이 2000에서 7000 혹은 8000으로 내쳐 달리지 않는 한 시장 참여자들은 중장기 가격의 평균적인 흐름을 의식하고 있다는 의미이며, 개인 투자자들의 흥분과 기대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오히려 시간이 흐를수록 침착하고 냉정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뜻이다.

 

이것이 필자가 지난 몇 주간에 걸쳐 ‘통계적 범주를 벗어나는 순간의 수익’과 ‘범주 안의 수익’을 비교 대상으로 삼은 이유다. 이렇게 ‘통계적 범주의 구간’을 벗어나지 못하는 주가흐름은 주가지수를 장기이동평균한 가격을 기준으로 보면 아무리 지수가 높아도 여전히 지수가 안정 구간에 있지만, 몇 개의 개별 종목군에선 범주를 벗어나는 가격들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이쯤에서 결론을 내리자면 지금은 과거 주가지수의 장기이동평균에서 범주를 벗어나는 초과열 국면의 시장이 아니며 아무 종목이나 마구 사들여서는 절대로 이익을 낼 수 없다. 따라서 지수를 추종하면 이동평균이 가리키는 방향성만큼의 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이런 방식이 큰 수익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우선 장기 투자에 대해 생각해 보자. 장기 투자는 국면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동전 던지기 놀이를 생각해 보자. 동전 던지기에서 처음 100번을 던졌을 때 우연히 70 대 30으로 앞면이 나왔다고 치자. 이때 투자자들은 뒷면에 돈을 걸고 기다리면 (장기 투자를 하면) 반드시 이익이 난다. 동전 던지기는 그 결과가 반드시 정분포를 따라 나타나며 이런 확률 게임은 게임의 횟수가 잦아질수록 ‘중간값’, 즉 50%에 수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식 투자에서 장기 투자를 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주가지수 대비 초과 하락한 종목을 사들인 후 지속적으로 장기 보유한다면 그것은 항상 이익으로 연결될까. 꼭 그렇지는 않다. 기업의 영속성을 확신할 수 없고, 불가측한 외부 변수들이 많기 때문이다. 불가측 변수들을 모두 제거한다면 대개 동전 던지기와 같은 결과를 가져 올 것이다. 즉, 현재 지수가 위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주가가 어떤 적정한 가상의 이론 가격을 넘어선 채 주가지수 자체가 고평가된 상황이라면 상대적으로 저평가된 종목을 오래 보유해도 그 종목은 주가의 하락과 함께 장기 하락할 공산이 크다. 반대로 주가가 역사적인 저평가 상태에 있는 경우라면 우리는 10년에 한두 번 올 수 있는 이 기회에 주가지수 대비 저평가된 주식을 매수해 이익을 낼 공산이 대단히 크다.

 

전고점에서 포트폴리오 조정

장기 투자란 절대 저평가 상태에서 혹은 우연한 기회(당시에 보는 시각에 따라서는 위기일 수도 있지만)에 주가가 절대적으로 하락하면 주식을 매수하고, 경제의 복원력을 믿는 투자를 할 때 적용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다. 거꾸로 말하면 주가가 절대 저평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기 투자한다는 것은 향후 주가가 지속적으로 상승 국면을 이어갈지, 조정을 받을지에 대한 확률에 배팅을 하는 것이며,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필자 역시 대부분의 투자자들에게 우량주 장기 투자를 권한다. 장기 투자가 무조건 큰 이익을 내서가 아니라, 대개 단기 투자를 했을 때 많은 투자자들이 이익을 내지 못하고 수수료만 낭비하거나 공포와 탐욕에 휘둘리며 손실을 낼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무조건 아무 때나 장기 투자가 옳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주식시장에서 장기 투자를 권한다면 그것은 옳은 답일까 틀린 답일까. 결론부터 말하면 틀린 답이다. 왜냐하면 지금 주가는 지난 8년간의 긴 시간 동안 상승하다 깊은 조정을 받다가 다시 횡보하기도 하는 전형적인 수렴 과정 속에 있고, 다만 그 방향성만 우상향하고 있기 때문이다(그나마 그 우상향의 기울기마저 서서히 느슨해지고 있다).

 

이 시점에서 가장 옳은 판단은 현재의 시장은 시장 참여자들 간에 치열한 고민과 갈등이 교차 중이며, 그 결과가 중기(1년 정도)적인 하락이나 혹은 느슨한 재상승 중에서 어느 쪽으로 갈지 확신하기 어려운 시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은 해외 변수 등을 들어 시장을 부정적으로 보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인 입장에서 ‘연내 2000 재돌파 가능’과 같이 긍정적으로만 보는 엇갈리는 의견들 중 어느 한쪽에 굳이 무턱대고 손을 들어 줄 필요가 없다. 투자는 던져진 주사위의 결과를 놓고 내기를 거는 행위이지 주사위를 던지는 행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관점에서 다시 한 번 정리해 보자. 우리는 지금 전체적으로는 장기 우상향 추세선상에 서 있다. 하지만 이 기울기는 한두 번의 강한 도전을 받으면 금세 수평이 될 수도 있다. 필자의 예상대로 단기 조정 후 연내 2100~2200 수준으로 반등해도 그것은(조정과 반등의 폭) 여전히 확률적 범주 안에서 움직이는 작은 파동에 불과하다.

 

이를 뛰어 넘기 위해서는 강력한 상승 기울기가 필요하고, 그것은 파죽지세의 형세를 취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은 경우 아무 것이나 오르던 시절의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덜 오른 종목을 붙잡고 장기 투자하거나 순환매를 기대하고 혹은 잡주를 잡고 있다면 결과는 치명적이다. 지금은 단지 종목별로, 혹은 지수가 중기 이동평균과의 이격을 벌리며 순간적으로 뻗어가는 마디를 따는 국면일 뿐 전체가 함께하는 상황은 아직 아니라는 의미다.

 

그 점에서 본다면 가치 투자의 시대가 끝나고, 새로운 매듭과 마디를 만들어 내는 종목과 업종군을 찾아 선택과 집중을 해나가는 편이 현명하다. 지금처럼 범주 내에 갇혀 있는 시점에서 무리한 장기 투자보다는 결국 전체가 아닌 일부 종목들이 지수를 이끌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인식하고 전고점까지는 기존 주도주와 경기방어주로 짧은 호흡으로 중단기 투자를 하거나 쉬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지난 1~2년간 장기 투자의 자세로 보유했던 종목군들은 적절한 수익이 났다면 전고점에 도달하는 지점에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하고, 대신 소수 집중으로 지수를 좀 더 앞으로 끌어 낼 수 있는 성장 가능한 업종을 골라 투자하는 것이 유용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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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의사’ 박경철

현직 외과의사이자 국내 최고의 투자전문가로 꼽힌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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