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1) '총균쇠'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권력 잡은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하면, 혁명 일어날 것”
인류가 지금처럼 산다면, 50년 뒤 우리에게 남아 있는 건 없다 경향신문 입력 2014.01.01 00:29 수정 2014.01.13 20:51
2014년이 밝았다. 갑오년인 올해는 한반도가 역사적 격랑에 휩싸였던 120년 전의 갑오년에 비유되곤 한다. 북한의 예측 불가능성, 일본의 보수화 등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가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새 정부 출범 이후 보수와 진보의 반목이 더욱 심해지며 '유신'과 '종북'을 불러 싸움을 시킨다.
사람들 사이에 놓인 선은 집단끼리 경계를 만들며 이젠 벽이 된 듯하다. 월드컵 붉은 티셔츠를 나눠 입던 우리들은 서로에게 보수와 진보라는 딱지를 붙였다. '민주화'라는 단어도 두 개의 뜻으로 달리 해석한다. 좋아하는 영화에 따라 편이 갈리고 밥상에도 함께 앉기 불편해졌다. 그 속에서 미래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은 우리 손을 떠나고 있다. 세계는 문명의 위기를 논하며 산업적 전환을 꾀하고 생태환경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며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길게 멀리 보려 하지 않기에 걸린 덫이다. 역사에서 반복된 패턴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도 적용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린 인류가 지나온 긴 시간을 거울 삼아 지금 당장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멀리 보면, 엉켜진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의 해결 실마리도 잡힐 수 있다.
우리의 현재를 비춰줄 안내자로 미국 UCLA 지리학과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찾았다. 그는 인류 탄생 이전부터 내려오는 수억년의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문명의 발생, 이동, 몰락을 세밀히 살펴온 세계적 지성이며 남은 생을 지구의 생명이 지속 가능하도록 이어가는 데 쏟겠다고 선언한 활동가다.
다이아몬드 교수와의 인터뷰는 지난 12월9일 LA에 있는 그의 자택에서 이루어졌다. 붉은 벨벳 재킷으로 격을 갖춘 노학자는 온화한 미소로 맞아주었다. 우리의 대담은 한 시간 동안 몰입의 깊이를 유지했다. 이 문명의 살길을 묻는 내게 그는 온 정성을 다해 답했다.
안희경 = 선생께서는 2006년 < 문명의 붕괴(Collapse) > 를 출판하며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4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별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단지 1000년뿐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고요. 우리 현대문명은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스티븐 호킹은
1000년뿐이라 했지만
우리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
다이아몬드 = 스티븐 호킹은 틀렸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에겐 1000년의 시간이 있지 않아요. 고작해야 50년뿐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풀든지 망치든지 할 수 있는 시간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이 별을 망쳐놓고 다른 행성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살 만한 별이라면 분명 이 태양계 말고 다른 은하계일 텐데, 그 먼 별에 도달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별을 망가뜨리지 않는 데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안 = 50년이라는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 =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50년 뒤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참 좋아하죠? 안타깝게도 세계 대부분의 어장이 50년을 못 버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속한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어려워요. 참치는 고갈되고 있습니다. 황새치는 대서양에서 사라졌고 태평양에서도 사라져가고 있죠. 또 다른 예는 목재입니다. 한국은 열대우림의 목재를 엄청나게 수입합니다. 이대로라면 세계 대부분의 숲은 30년 안에 사라집니다. 쉽게 꺼내 쓰던 화석 연료도 고갈되니까 바다로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이 파들어가죠. 또 다른 예는 물이에요, 담수. 소금물을 가져다 염분을 제거해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럼 또 고갈되는 화석연료를 써야 하니까 안되고요. 지금 세계 강물의 85%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머지라고 해봐야 아이슬란드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주 외딴곳이니까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물전쟁이 터질 만큼 위태롭습니다. 다뉴브강을 두고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충돌했고, 시리아와 터키도 그랬어요. 중국과 베트남, 태국까지 히말라야 고원에서 오는 물 때문에 갈등이 깊어질 조짐입니다.
안 = 마지막 물고기를 잡고서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는 인디언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불 붙은 집 안에서 이윤과 성장을 담보로 한 내기장기에 정신이 팔려 있구나 싶은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비관적인 예측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현대문명은 기술 발전을 통해 많은 해법을 제시해 왔습니다.
다이아몬드 = 그래요. 기술은 많은 것을 해결합니다. 에너지를 예로 들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기술도 나왔죠. 덴마크에서는 20%의 에너지를 바람으로 만들고, 독일 서부와 스페인 북부에서도 풍력 발전의 양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80% 가까운 에너지를 핵발전으로 생산하고, 캘리포니아 남부는 태양열 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염 문제도 풀고 있죠. 하지만 이는 기술이 갖는 좋은 면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나쁜 면이 있습니다. 바로 부작용인데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기술은 단 한번도 개발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냉장고에 쓰는 냉매가 유독해서 가스가 새어나오면 사람이 죽었어요. 밤에 자러 가면서 걱정을 했죠. '냉장고가 새면 내일 아침에 깨어날 수 없을 텐데' 하고요. 그 와중에 굉장한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1940년대에 프레온이 발견된 겁니다. 사람이 죽을 일이 없어진 거예요. 기술 혁신입니다. 그런데 이 신념이 뒤집혔어요. 그것도 20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프레온 가스가 태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입니다. 프레온 가스는 금지됐습니다. 자, 이제 제 답을 내놓을 차례입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작동시킬 에너지 발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바람이나 태양, 핵발전처럼 더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겁니다.
기술 발전 폐해 알았다면
지속 가능 에너지 찾아야
환경정책 거부만 말고
정치인이 결단 내려야
안 =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가운데 핵발전을 거론하셨는데요. 대기 오염을 유발하지 않고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많은 정부들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방사능이 유출되면 치명적입니다. 최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식품 오염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탈핵 요구 등 저항감이 높습니다.
다이아몬드 =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에게 건강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사고 역시 비극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습니다. 이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그곳에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화석연료를 태웠겠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끔찍한 대기 오염을 유발합니다. 중국의 오염된 바람이 한국까지 불어오잖아요. 저는 후쿠시마의 비극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생활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고통받고 있어요. 베이징 도로에서 일하는 경찰관의 평균수명이 42세입니다. 거리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때문에 폐 관련 질환으로 죽어가죠.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안 = 핵발전소가 필요하도록 조장하는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말씀인데요. 에너지 소비가 감소되면 자연히 발전량은 줄어들게 되겠죠.
다이아몬드 =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쓰는 에너지의 반만 소비합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인들을 닮을 수 있다면 미국의 화석연료 소비는 반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정치적 결단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환경정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안 = 나쁘다고 정의되는 일들이 세상에 기여해 온 업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파괴를 동반한 산업화의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다른 결핍에서도 벗어났죠. 저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여는 있다고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값싼 소비를 통해 생활의 편리를 얻을 수 있었죠. 중국은 대기 오염을 줄이고자 철강 생산에 제동을 건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생산 감소로 미국 철강회사의 이윤이 늘고 값도 올랐어요. 중국 대기가 맑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서민의 부담이 커집니다. 1%와 99%가 대결하는 갈등 구조 속에서 함께 감내해야 하는 불편은 수치로만 평등합니다. 실제 고통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약자의 등을 먼저 휘게 만들죠.
가난한 나라 분노 생기면
부자 나라에도 문제 발생
그 예가 소말리아 해적
그들 공격 멈추는 방법은
정직하게 살도록
나눠주는 원조가 유일
다이아몬드 = 그래요, 우리 삶의 표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어요. 당신과 나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소수의 농부들이 키워주고 있죠. 미국에서는 인구의 2%인 농부들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서 98%를 다 먹이고도 세계로 수출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항생물질 덕분에 병에 걸려도 죽지 않고 치료가 될 거예요. 내 이야기는 우리가 현대문명을 배척하거나 항생제를 버리고 다시 감기나 천연두로 죽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받아들이자는 겁니다.
안 = 지속 가능한 경제란 무엇을 말하나요.
다이아몬드 =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예가 되겠죠. 미국 자연산 연어는 거의 알래스카에서 잡힙니다. 연어잡이 어부들은 정부가 알려주는 어획량만큼만 잡습니다. 매년 야생 연어의 숫자는 비슷하게 되죠. 반대의 예는 지중해 참치입니다. 참다랑어라 불리는데 일본에서 최고의 횟감으로 큰 건 1억원이 넘습니다. 자, 이쯤되면 일본 사람들이 참치초밥을 무척 사랑해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아닙니다. 유럽에서 지중해 참치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자고 토론할 때 일본 사람들은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 5년이나 10년 안에 일본은 참다랑어를 먹지 못할 겁니다. 세상 모든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한다면, 우리는 스티븐 호킹 말처럼 앞으로 1000년은 넉넉한 해산물을 갖게 될 겁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것
지중해 참치어장 지속성
일본인들이 앞장서 반대
그 결과 5~10년 안에
참다랑어 못 먹게 될 수도
안 = 제가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생수를 마실 수 있는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산소탱크를 사서 오염 안된 공기를 흡입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는 소득에 따라 삶의 질이 굉장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장의 논리라면 물건값은 큰 폭으로 상승할 거고요. 기존 소비자들의 불만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욕망은 그대로인데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요.
다이아몬드 = 맞아요. 부자는 참다랑어를 더 오래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5년 안에 끝납니다. 당신의 질문은 바꿔 말하면 '부자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지 않을까'인데요. 네,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도 즐기지 못할 것들이 늘어갑니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1%의 미국인들이 80%의 부를 가졌습니다. 나라들 간에도 비슷해요. 한국은 1인당 평균 소득이 대략 2만5000달러인데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는 500달러죠. 한국의 수입이 가난한 나라의 50배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풍부한 해산물을 즐겨요. 수도꼭지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죠.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화가 상황을 변화시켰습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화났다고 미국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분노한다고 해서 미국에 지장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2001년 9·11 이후 더욱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가슴에 분노가 일렁인다면 이는 반드시 부자 나라에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한 가지 예가 소말리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정부마저 무너졌어요. 그들이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배들이 지나가는 겁니다. 유럽의 상선들, 미국의 상선들…. 그리고 그들은 해적이 되었습니다.
안 = 한국의 배도 여러 차례 납치를 당했습니다.
다이아몬드 = 소말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문제를 일으켜 돈 챙기는 법을 발견한 거죠. 소말리아인의 공격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원조입니다. 그들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하도록 돕는 거죠. 한국 배를 잡아 인질을 삼는 대신 정직하게 일하며 먹고살도록 이끄는 겁니다. 부자가 자신이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좋은 이기심이 이것입니다. 이제 가진 것을 지키려면 나눠야 해요.
안 = 1% 지배층의 자기 보호 방법은 '함께 살자'는 99%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네요. 그렇죠. 함께 살자는 생각이 권력의 카르마(업)를 멈출 수 있겠네요. 그 누구보다 긴 역사를 다루어 왔는데 역사적으로 문명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지요. 절정에 오른 문명이 극적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왔습니다. 문명 자체가 고도의 발전인데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드는 것
모두가 안녕해야지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돼
다이아몬드 =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역사 속에서 왜 어떤 사회는 몰락하고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았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뤘던 마야 사람들이 대단한 천문학과 문자, 사원 등을 가졌을 때 왜 무너졌을까요. 마야 왕들이 뿌려놓은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계속 굶주리고 헐벗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활은 품격이 있었어요. 결국 지친 마야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타도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선거에 몰두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잠깐은 괜찮아도 사회를 몰락으로 이끄는 과업을 피할 수 없습니다. LA에서 제 평생에 두 번 시민 소요를 봤습니다. 하나는 1960년대 LA 다운타운 흑인 동네에서 일어난 왓스 폭동이고, 또 하나는 방화와 파괴가 넓게 자행됐던 1993년 로드니 킹 폭동입니다. 특히 많은 한국 상점들이 화염에 휩싸였죠. 가난한 사람들이 빈민 지역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비벌리힐스의 부자들은 집이 불에 탈까봐 두려움에 떨었고요. 경찰은 뭘 했을까요. 길에다 노란 폴리스라인을 둘러치더군요. 그래도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진짜로 비벌리힐스를 불태우려 했다면 했을 겁니다. 그때는 분노가 충분히 타오르지 않았기에 소강되었습니다. 만약 100만명의 시민이 나선다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최상위 1%에 맞서 99%가 일어난다면 비벌리힐스는 사라집니다. 답은 지도자들의 역할에 있습니다. 자기들만을 위해 살겠다면, 권력을 잡은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하다면,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모두가 안녕해야 합니다.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됩니다.
안 = 선생께서는 문명사에 대한 저술을 발표하다 어느 시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데 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낳은 다음 더 민감하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지구 살리기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이아몬드 = 나는 쌍둥이를 두었어요. 1987년에 태어나서 26세입니다. 언젠가 지금 우리 둘이 나누는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2050년에는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러는 거예요. 2000년은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내가 예순셋일 테니까요. 2050년은 상상 속 숫자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AD 3200년처럼요. 그런데 아들들이 태어나니까 2050년이 현실로 와 닿았습니다. 내 아들들이 예순셋이 되는 실제상황인 거죠. 당신에게 적용해 봅니다. 딸이 여섯 살이잖아요. 2007년에 태어났겠네요. 2050년이면 마흔셋이고 우리가 다 파괴하지 않으면 살아있을 거예요. 그래도 2050년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티처럼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하수시설도 없을지 몰라요. 아니면 소말리아 사람들이 자동소총으로 배를 해적질하는 대신 핵무기를 들고 한국이나 미국에다 핵폭탄을 떨어뜨릴지도 모르고요. 큰 기업들의 지도자들이 요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래서 물어봤어요. 쉐브론 최고경영자한테 언제부터 신경 쓰게 된 거냐고. 딸 이야기를 합디다. 집에 가니 열세 살 딸이 묻더랍니다. "엄마는 환경을 위해 오늘 무슨 일을 하셨어요?" "환경? 난 그 말만 나와도 괴롭다. 환경이 뭐가 중요한데. 시간낭비 말고 공부해라." 딸이 퍼붓더랍니다. "엄마는 한심해. 엄마가 세상을 망치고 있어. 엄마랑 말 안 해." 그래서 바뀌었대요. 많은 경제계 인사들이 같은 말을 합니다. 자식의 미래를 지키려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가슴으로 느낀 거죠. 당신의 한국 지도자들, 신문을 읽을 경제를 책임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살 50년 뒤의 세상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들이 지금 안녕한 생활을 하든, 지중해산 참다랑어를 음미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안녕할 것인지 그걸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 그의 학문적 연구와 성과는 생리학에서부터 진화생물학, 조류학, 지리, 역사, 환경까지 광범위하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6년 UCLA 의과대학 생리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러다가 65세 되던 2002년, 45년 동안 이어온 생리학자의 길을 접었다. 지리환경 비교사학자의 길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이런 삶의 전환은 28세에 떠났던 뉴기니 섬 여행에서 비롯된다. 그는 뉴기니 말을 배워가며 생리학 못지않게 인류문명 발달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같은 무게로 두 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청소년기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배웠고 20대 중반에는 열두 번째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오전에 2시간 동안 이탈리아 문학작품을 필사했다. 그리고 매일 2시간씩 새를 관찰하며 걷는다. 새들이 보여주는 미미한 변화 속에서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고자 한다.
미국예술아카데미, 미국과학아카데미, 미국철학협회 회원이고 환경 분야의 업적으로 타일러상, 국립과학메달을 수상했다. 대표 저서로는 문명사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 총균쇠 > < 문명의 붕괴 > < 어제까지의 세계 > 가 있다. 특히 < 총균쇠 > 는 1998년 퓰리처상과 영국 과학출판상을 수상했다.
재미 저널리스트. 불교방송 PD로 시사·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1998년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 2000년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윌리엄 켄트리지, 다카시 무라카미 등을 인터뷰한 < 현대미술 거장과의 만남 > (2010), 노엄 촘스키·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2013)를 출간했다.
< la| 글·사진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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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사이에 놓인 선은 집단끼리 경계를 만들며 이젠 벽이 된 듯하다. 월드컵 붉은 티셔츠를 나눠 입던 우리들은 서로에게 보수와 진보라는 딱지를 붙였다. '민주화'라는 단어도 두 개의 뜻으로 달리 해석한다. 좋아하는 영화에 따라 편이 갈리고 밥상에도 함께 앉기 불편해졌다. 그 속에서 미래의 재난을 막을 수 있는 기회들은 우리 손을 떠나고 있다. 세계는 문명의 위기를 논하며 산업적 전환을 꾀하고 생태환경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며 교육 시스템을 바꾸는데, 우리는 여전히 과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다.
길게 멀리 보려 하지 않기에 걸린 덫이다. 역사에서 반복된 패턴은 현재를 바탕으로 미래에도 적용될 것이다. 그러기에 우린 인류가 지나온 긴 시간을 거울 삼아 지금 당장의 과제를 풀어야 한다. 멀리 보면, 엉켜진 보수와 진보 간 갈등의 해결 실마리도 잡힐 수 있다.
우리의 현재를 비춰줄 안내자로 미국 UCLA 지리학과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를 찾았다. 그는 인류 탄생 이전부터 내려오는 수억년의 역사를 연구해온 학자다. 문명의 발생, 이동, 몰락을 세밀히 살펴온 세계적 지성이며 남은 생을 지구의 생명이 지속 가능하도록 이어가는 데 쏟겠다고 선언한 활동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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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9일 LA 자택에서 인터뷰에 응한 다이아몬드 교수는 생리학자로 출발해 인류문명 발달을 연구하는 비교사학자의 길을 함께 걸어왔다. |
안희경 = 선생께서는 2006년 < 문명의 붕괴(Collapse) > 를 출판하며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이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작년 4월 영국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별에서 우리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은 단지 1000년뿐이다.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야 한다'고 경고했고요. 우리 현대문명은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스티븐 호킹은
1000년뿐이라 했지만
우리 지구별은
이제 시한폭탄
다이아몬드 = 스티븐 호킹은 틀렸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우리에겐 1000년의 시간이 있지 않아요. 고작해야 50년뿐입니다. 우리가 문제를 풀든지 망치든지 할 수 있는 시간 말이죠. 그리고 또 하나, 이 별을 망쳐놓고 다른 행성을 찾아나선다는 것은 답이 아닙니다. 살 만한 별이라면 분명 이 태양계 말고 다른 은하계일 텐데, 그 먼 별에 도달하려고 불가능에 도전할 것이 아니라 지금 이 별을 망가뜨리지 않는 데 우리의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합니다.
안 = 50년이라는 시간의 근거는 무엇입니까.
다이아몬드 = 지금처럼 살아간다면 50년 뒤 남아있는 것이 없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생선을 참 좋아하죠? 안타깝게도 세계 대부분의 어장이 50년을 못 버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속한 미국 서부 태평양 해안은 가능할 수 있습니다만, 나머지는 어려워요. 참치는 고갈되고 있습니다. 황새치는 대서양에서 사라졌고 태평양에서도 사라져가고 있죠. 또 다른 예는 목재입니다. 한국은 열대우림의 목재를 엄청나게 수입합니다. 이대로라면 세계 대부분의 숲은 30년 안에 사라집니다. 쉽게 꺼내 쓰던 화석 연료도 고갈되니까 바다로 더 멀리 나가고 더 깊이 파들어가죠. 또 다른 예는 물이에요, 담수. 소금물을 가져다 염분을 제거해서 만들 수도 있지만 그럼 또 고갈되는 화석연료를 써야 하니까 안되고요. 지금 세계 강물의 85%를 사용하고 있는데 나머지라고 해봐야 아이슬란드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아주 외딴곳이니까 이미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봅니다. 실제로 물전쟁이 터질 만큼 위태롭습니다. 다뉴브강을 두고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충돌했고, 시리아와 터키도 그랬어요. 중국과 베트남, 태국까지 히말라야 고원에서 오는 물 때문에 갈등이 깊어질 조짐입니다.
안 = 마지막 물고기를 잡고서야 돈은 먹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거라는 인디언의 예언이 떠오릅니다. 우리가 불 붙은 집 안에서 이윤과 성장을 담보로 한 내기장기에 정신이 팔려 있구나 싶은데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너무 비관적인 예측 아닌가 싶어요. 그동안 현대문명은 기술 발전을 통해 많은 해법을 제시해 왔습니다.
다이아몬드 = 그래요. 기술은 많은 것을 해결합니다. 에너지를 예로 들면 화석연료를 대체하는 기술도 나왔죠. 덴마크에서는 20%의 에너지를 바람으로 만들고, 독일 서부와 스페인 북부에서도 풍력 발전의 양이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프랑스에서는 80% 가까운 에너지를 핵발전으로 생산하고, 캘리포니아 남부는 태양열 에너지 발전량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오염 문제도 풀고 있죠. 하지만 이는 기술이 갖는 좋은 면일 뿐입니다. 이에 비해 나쁜 면이 있습니다. 바로 부작용인데 세상에 완벽하게 좋은 기술은 단 한번도 개발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냉장고에 쓰는 냉매가 유독해서 가스가 새어나오면 사람이 죽었어요. 밤에 자러 가면서 걱정을 했죠. '냉장고가 새면 내일 아침에 깨어날 수 없을 텐데' 하고요. 그 와중에 굉장한 기술적 진보가 일어났습니다. 1940년대에 프레온이 발견된 겁니다. 사람이 죽을 일이 없어진 거예요. 기술 혁신입니다. 그런데 이 신념이 뒤집혔어요. 그것도 20년이 지난 다음에서야. 프레온 가스가 태양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해 주는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증명되었습니다.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입니다. 프레온 가스는 금지됐습니다. 자, 이제 제 답을 내놓을 차례입니다. 우리에겐 더 이상 새로운 기술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을 지속 가능하게 작동시킬 에너지 발전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필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바람이나 태양, 핵발전처럼 더욱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에너지를 생산하는 겁니다.
기술 발전 폐해 알았다면
지속 가능 에너지 찾아야
환경정책 거부만 말고
정치인이 결단 내려야
안 = 지속 가능한 에너지 가운데 핵발전을 거론하셨는데요. 대기 오염을 유발하지 않고 발전 비용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 많은 정부들이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방사능이 유출되면 치명적입니다. 최근 후쿠시마 사고 이후 식품 오염 등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지면서 탈핵 요구 등 저항감이 높습니다.
다이아몬드 = 후쿠시마 인근 주민들에게 건강 문제가 일어나고 있을 겁니다. 1986년 러시아 체르노빌 사고 역시 비극이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암에 걸렸습니다. 이 비극 속에서도 우리가 생각해야 할 지점이 있습니다. 그곳에 핵발전소가 없었다면 무엇이 있었을까요? 화석연료를 태웠겠죠. 지구온난화를 일으키고 끔찍한 대기 오염을 유발합니다. 중국의 오염된 바람이 한국까지 불어오잖아요. 저는 후쿠시마의 비극을 축소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에너지를 필요로 하는 우리의 생활 말입니다. 오늘날 한국과 중국에 사는 사람들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결과물로 고통받고 있어요. 베이징 도로에서 일하는 경찰관의 평균수명이 42세입니다. 거리에서 들이마시는 공기 때문에 폐 관련 질환으로 죽어가죠. 부정적인 면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그 일을 하지 않는 겁니다.
안 = 핵발전소가 필요하도록 조장하는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자는 말씀인데요. 에너지 소비가 감소되면 자연히 발전량은 줄어들게 되겠죠.
다이아몬드 = 유럽인들은 미국인들이 쓰는 에너지의 반만 소비합니다. 미국인들이 유럽인들을 닮을 수 있다면 미국의 화석연료 소비는 반이 될 겁니다.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정치적 결단입니다. 많은 정치인들이 환경정책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안 = 나쁘다고 정의되는 일들이 세상에 기여해 온 업적도 있습니다. 수많은 파괴를 동반한 산업화의 결과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싼 가격으로 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배고픔과 다른 결핍에서도 벗어났죠. 저는 신자유주의를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여는 있다고 여깁니다. 많은 사람들이 값싼 소비를 통해 생활의 편리를 얻을 수 있었죠. 중국은 대기 오염을 줄이고자 철강 생산에 제동을 건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미 생산 감소로 미국 철강회사의 이윤이 늘고 값도 올랐어요. 중국 대기가 맑아진다는 것은 반가운 일입니다. 한국의 모든 국민이 혜택을 받게 되니까요. 그렇지만 소비재 가격이 오르면 상대적으로 서민의 부담이 커집니다. 1%와 99%가 대결하는 갈등 구조 속에서 함께 감내해야 하는 불편은 수치로만 평등합니다. 실제 고통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약자의 등을 먼저 휘게 만들죠.
가난한 나라 분노 생기면
부자 나라에도 문제 발생
그 예가 소말리아 해적
그들 공격 멈추는 방법은
정직하게 살도록
나눠주는 원조가 유일
다이아몬드 = 그래요, 우리 삶의 표준은 과거 어느 때보다 높아졌어요. 당신과 나는 농사를 짓지 않아도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소수의 농부들이 키워주고 있죠. 미국에서는 인구의 2%인 농부들의 생산성이 매우 높아서 98%를 다 먹이고도 세계로 수출을 합니다. 현대인들은 항생물질 덕분에 병에 걸려도 죽지 않고 치료가 될 거예요. 내 이야기는 우리가 현대문명을 배척하거나 항생제를 버리고 다시 감기나 천연두로 죽어보자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지속 가능한 경제를 받아들이자는 겁니다.
안 = 지속 가능한 경제란 무엇을 말하나요.
다이아몬드 =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겁니다. 알래스카 연어 어장이 예가 되겠죠. 미국 자연산 연어는 거의 알래스카에서 잡힙니다. 연어잡이 어부들은 정부가 알려주는 어획량만큼만 잡습니다. 매년 야생 연어의 숫자는 비슷하게 되죠. 반대의 예는 지중해 참치입니다. 참다랑어라 불리는데 일본에서 최고의 횟감으로 큰 건 1억원이 넘습니다. 자, 이쯤되면 일본 사람들이 참치초밥을 무척 사랑해서 그렇구나, 라는 생각이 들 거예요. 하지만 아닙니다. 유럽에서 지중해 참치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하자고 토론할 때 일본 사람들은 앞장서서 반대했습니다. 그 결과 앞으로 5년이나 10년 안에 일본은 참다랑어를 먹지 못할 겁니다. 세상 모든 어장을 지속 가능하게 운영한다면, 우리는 스티븐 호킹 말처럼 앞으로 1000년은 넉넉한 해산물을 갖게 될 겁니다.
지속 가능한 경제는
생산에 맞춰 소비하는 것
지중해 참치어장 지속성
일본인들이 앞장서 반대
그 결과 5~10년 안에
참다랑어 못 먹게 될 수도
안 = 제가 말하는 것은 어떤 사람들은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생수를 마실 수 있는 현실입니다. 누군가는 산소탱크를 사서 오염 안된 공기를 흡입하는 삶을 누릴 수 있는 구조에서 지속 가능한 경제는 소득에 따라 삶의 질이 굉장히 달라질 수밖에 없을 겁니다. 시장의 논리라면 물건값은 큰 폭으로 상승할 거고요. 기존 소비자들의 불만은 정책 결정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칩니다. 욕망은 그대로인데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있을까요.
다이아몬드 = 맞아요. 부자는 참다랑어를 더 오래 먹을 수 있을 거예요. 그래도 5년 안에 끝납니다. 당신의 질문은 바꿔 말하면 '부자들이 더 많은 것을 누리지 않을까'인데요. 네,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부자들도, 가난한 이들도 즐기지 못할 것들이 늘어갑니다. 이는 또 다른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1%의 미국인들이 80%의 부를 가졌습니다. 나라들 간에도 비슷해요. 한국은 1인당 평균 소득이 대략 2만5000달러인데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는 500달러죠. 한국의 수입이 가난한 나라의 50배라는 말입니다. 한국 사람들은 훌륭한 의료보험 혜택을 누리고 풍부한 해산물을 즐겨요. 수도꼭지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죠. 아프리카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세계화가 상황을 변화시켰습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의 가난한 사람들이 화났다고 미국에 영향을 미치진 않았습니다. 아프가니스탄 민중이 분노한다고 해서 미국에 지장을 주지 않았어요. 그러나 2001년 9·11 이후 더욱 분명해진 것이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가슴에 분노가 일렁인다면 이는 반드시 부자 나라에 문제를 불러일으킵니다. 한 가지 예가 소말리아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고 정부마저 무너졌어요. 그들이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배들이 지나가는 겁니다. 유럽의 상선들, 미국의 상선들…. 그리고 그들은 해적이 되었습니다.
안 = 한국의 배도 여러 차례 납치를 당했습니다.
다이아몬드 = 소말리아 사람들이 한국에 문제를 일으켜 돈 챙기는 법을 발견한 거죠. 소말리아인의 공격을 멈추는 유일한 방법은 원조입니다. 그들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하도록 돕는 거죠. 한국 배를 잡아 인질을 삼는 대신 정직하게 일하며 먹고살도록 이끄는 겁니다. 부자가 자신이 살기 위해 실천해야 하는 좋은 이기심이 이것입니다. 이제 가진 것을 지키려면 나눠야 해요.
안 = 1% 지배층의 자기 보호 방법은 '함께 살자'는 99%의 요구를 들어주는 거네요. 그렇죠. 함께 살자는 생각이 권력의 카르마(업)를 멈출 수 있겠네요. 그 누구보다 긴 역사를 다루어 왔는데 역사적으로 문명이 몰락하는 결정적 계기는 무엇인지요. 절정에 오른 문명이 극적으로 순식간에 사라져 왔습니다. 문명 자체가 고도의 발전인데 급격한 몰락으로 이어지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드는 것
모두가 안녕해야지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돼
다이아몬드 = 지도자의 역할입니다. 역사 속에서 왜 어떤 사회는 몰락하고 어떤 사회는 그렇지 않았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문명을 이뤘던 마야 사람들이 대단한 천문학과 문자, 사원 등을 가졌을 때 왜 무너졌을까요. 마야 왕들이 뿌려놓은 인과에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백성은 계속 굶주리고 헐벗어 가는데도 그들의 생활은 품격이 있었어요. 결국 지친 마야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켜 왕을 타도했습니다. 지도자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생각해야만 합니다. 선거에 몰두하는 지도자는 지도자가 아닙니다. 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잠깐은 괜찮아도 사회를 몰락으로 이끄는 과업을 피할 수 없습니다. LA에서 제 평생에 두 번 시민 소요를 봤습니다. 하나는 1960년대 LA 다운타운 흑인 동네에서 일어난 왓스 폭동이고, 또 하나는 방화와 파괴가 넓게 자행됐던 1993년 로드니 킹 폭동입니다. 특히 많은 한국 상점들이 화염에 휩싸였죠. 가난한 사람들이 빈민 지역에서 뛰쳐 나왔습니다. 비벌리힐스의 부자들은 집이 불에 탈까봐 두려움에 떨었고요. 경찰은 뭘 했을까요. 길에다 노란 폴리스라인을 둘러치더군요. 그래도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진짜로 비벌리힐스를 불태우려 했다면 했을 겁니다. 그때는 분노가 충분히 타오르지 않았기에 소강되었습니다. 만약 100만명의 시민이 나선다면? 달라집니다. 그러니까 미국의 최상위 1%에 맞서 99%가 일어난다면 비벌리힐스는 사라집니다. 답은 지도자들의 역할에 있습니다. 자기들만을 위해 살겠다면, 권력을 잡은 1%만 행복하고 99%가 불행하다면, 혁명이 일어날 겁니다. 다시 말합니다. 지도자의 역할은 사회의 안녕을 만들어내는 겁니다. 모두가 안녕해야 합니다. 그들만 안녕해서는 안됩니다.
안 = 선생께서는 문명사에 대한 저술을 발표하다 어느 시기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데 생을 바치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두 아이를 낳은 다음 더 민감하게 위기의식을 느끼게 되는데 지구 살리기 활동에 나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다이아몬드 = 나는 쌍둥이를 두었어요. 1987년에 태어나서 26세입니다. 언젠가 지금 우리 둘이 나누는 주제로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였습니다. '2050년에는 세상이 어떻게 될까', 그러는 거예요. 2000년은 생각해 볼 수 있었어요. 내가 예순셋일 테니까요. 2050년은 상상 속 숫자로 다가왔습니다. 마치 AD 3200년처럼요. 그런데 아들들이 태어나니까 2050년이 현실로 와 닿았습니다. 내 아들들이 예순셋이 되는 실제상황인 거죠. 당신에게 적용해 봅니다. 딸이 여섯 살이잖아요. 2007년에 태어났겠네요. 2050년이면 마흔셋이고 우리가 다 파괴하지 않으면 살아있을 거예요. 그래도 2050년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아이티처럼 전기도 없고 물도 없고 하수시설도 없을지 몰라요. 아니면 소말리아 사람들이 자동소총으로 배를 해적질하는 대신 핵무기를 들고 한국이나 미국에다 핵폭탄을 떨어뜨릴지도 모르고요. 큰 기업들의 지도자들이 요즘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습니다. 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그래서 물어봤어요. 쉐브론 최고경영자한테 언제부터 신경 쓰게 된 거냐고. 딸 이야기를 합디다. 집에 가니 열세 살 딸이 묻더랍니다. "엄마는 환경을 위해 오늘 무슨 일을 하셨어요?" "환경? 난 그 말만 나와도 괴롭다. 환경이 뭐가 중요한데. 시간낭비 말고 공부해라." 딸이 퍼붓더랍니다. "엄마는 한심해. 엄마가 세상을 망치고 있어. 엄마랑 말 안 해." 그래서 바뀌었대요. 많은 경제계 인사들이 같은 말을 합니다. 자식의 미래를 지키려면 함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걸 가슴으로 느낀 거죠. 당신의 한국 지도자들, 신문을 읽을 경제를 책임지는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자식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살 50년 뒤의 세상이 어떨지 생각해 보세요. 당신들이 지금 안녕한 생활을 하든, 지중해산 참다랑어를 음미하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안녕할 것인지 그걸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미국 UCLA 지리학과 교수. 그의 학문적 연구와 성과는 생리학에서부터 진화생물학, 조류학, 지리, 역사, 환경까지 광범위하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생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후 1966년 UCLA 의과대학 생리학과 교수로 강단에 섰다. 그러다가 65세 되던 2002년, 45년 동안 이어온 생리학자의 길을 접었다. 지리환경 비교사학자의 길에 몰두하기 위해서다. 이런 삶의 전환은 28세에 떠났던 뉴기니 섬 여행에서 비롯된다. 그는 뉴기니 말을 배워가며 생리학 못지않게 인류문명 발달 연구에 몰두했다. 그 결과 같은 무게로 두 길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한 지역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언어를 알아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청소년기부터 라틴어, 그리스어 등을 배웠고 20대 중반에는 열두 번째 언어인 이탈리아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인터뷰를 하던 날도 오전에 2시간 동안 이탈리아 문학작품을 필사했다. 그리고 매일 2시간씩 새를 관찰하며 걷는다. 새들이 보여주는 미미한 변화 속에서 지구의 환경을 되살리고자 한다.
미국예술아카데미, 미국과학아카데미, 미국철학협회 회원이고 환경 분야의 업적으로 타일러상, 국립과학메달을 수상했다. 대표 저서로는 문명사 3부작이라 일컬어지는 < 총균쇠 > < 문명의 붕괴 > < 어제까지의 세계 > 가 있다. 특히 < 총균쇠 > 는 1998년 퓰리처상과 영국 과학출판상을 수상했다.
재미 저널리스트. 불교방송 PD로 시사·교양·음악 프로그램을 제작했고 1998년 한국방송대상 교양 우수작품상, 2000년 한국방송대상 연예오락 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2002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 서구에 부는 성찰적 기운과 대안 활동을 소개하는 글을 써왔다. 윌리엄 켄트리지, 다카시 무라카미 등을 인터뷰한 < 현대미술 거장과의 만남 > (2010), 노엄 촘스키·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등 세계 석학 7인과의 대담집 < 하나의 생각이 세상을 바꾼다 > (2013)를 출간했다.
< la| 글·사진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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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2) 제러미 리프킨 미 펜실베이니아대 교수화석연료는 끝났다…재생 에너지 중심 ‘3차 산업혁명’ 다가와 경향신문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입력 2014.01.13 21:52 수정 2014.01.13 22:54
인터넷에서 벌어지는 거래와 공유에 대해 일찌감치 예언했던 제러미 리프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통찰이 현실에 부합하는 걸 확인하면서 더 큰 신뢰를 보내고 있다. 그는 이미 거대자본 중심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시장이 변할 수밖에 없음을 예언했다. 그 바탕에는 지구적 재앙으로 다가온 환경위기와 함께 인류 문명이 더욱 넓혀놓은 사람들의 공감 능력 확대가 있다.
인터넷을 통한 개인과 개인의 소통은 시장을 바꿔놓았다. 아프리카 수단 할머니의 좌판에 놓인 대바구니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와 묶여 스웨덴, 뉴질랜드로 팔려가는 시대이다. 이처럼 네트워크가 강화된 세상은 산업의 동력인 에너지 생산 체계마저 바꿀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두 개의 트랙으로 갈라지고 있다. 한 트랙은 현재의 대량소비사회를 유지하며 자본주의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새로운 화석연료 개발을 추진한다. 다른 한 트랙은 재생 가능 에너지망을 설치해 환경재앙을 막고, 무엇보다 개인 대 개인이 연결되는 새로운 상품과 거래망을 선점하려는 도전이다.
첫 시작점은 미미한 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트랙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어느 시기에 돌아가려 해도 이미 시간이 흘러버렸기에 과거의 출발점은 사라진다. 그래서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제러미 리프킨 교수로부터 전 지구적으로 맞대결하고 있는 신구 트랙의 움직임, 그리고 오늘 우리의 문명이 어떤 전환점에 와 있는지 들어보았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던 지난 6일은 20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동부가 꽁꽁 얼어붙던 날이었다.
▲ 온난화로 기후변화 재앙… 세계 '두 트랙'으로 갈려
원전 80% 프랑스는 물론 중국도 3차 산업혁명 동참
▲ 집·빌딩·PC·휴대폰… 모두 '개인 발전소' 갖고
분산 생산해 수평 이동… '에너지 인터넷'이 미래
안희경 = < 문명, 그 길을 묻다 > 의 첫 인터뷰 대상자는 문명을 탐구해온 생태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그는 지구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이제 50년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원이 고갈되기 때문이라는 진단입니다.
리프킨 = 19세기 1차 산업혁명과 20세기 2차 산업혁명을 이루면서 우리는 화석연료를 다 퍼냈습니다. 전체가 같은 문명을 창조하겠다고 그걸 태웠죠.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만들어냈어요. 지구의 물 순환이 바뀌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대기는 땅에서 7%의 강수량을 빨아들입니다. 물이 균형을 잃고 더 많은 집중호우가 내립니다. 눈은 봄까지 오고 봄 홍수, 여름 가뭄에다 초대형 허리케인과 태풍이 더 자주 찾아옵니다. 지구는 4억5000만년 동안 5번의 멸종 시기가 있었는데 온도변화 때문이었죠. 과학자들은 지금 6번째 멸종이 시작됐고 이번 세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생명 종 가운데 최대한 60%를 잃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완전히 잠에 취해있어요.
안 =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경제를 제안했습니다.
리프킨=무엇을 지속가능한 경제라고 했나요.
안 =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소비하는 겁니다. 선생님의 해법은 어떤 것인가요.
리프킨 = 우리가 할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를 산업의 동력, 생활에너지로 바꾸는 3차 산업혁명을 이루는 겁니다. 이제 학문적인 단계에서 실용적인 단계로 넘어왔고, 클라우스 핸슈 전 유럽연합 의장, 메르켈 독일 총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가 받아들였습니다.
안 = 중국까지 에너지 정책을 수정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작년 11월 중국공산당 3중전회(제18기 당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환경의제가 채택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대기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나보다 정도로 짐작했는데 그런 규모가 아니군요.
리프킨 = 중국은 경제 변화에서 앞서기 위한 결단을 내린 겁니다. 지난 9월 중국 지도자들과 3주 동안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리프킨, 우리는 1차 산업혁명도 놓치고 2차 산업혁명도 놓쳤소. 그렇지만 3차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중국국가전망공사 회장이 3차 산업혁명을 진행하겠다는 글을 3주 전에 발표했습니다. 전력 분산을 위해 에너지 인터넷 배치에만 820억달러를 4년 동안 쓰겠답니다. 제 책이 2012년에 중국에서 출판됐는데 당시 왕양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는 중국 최대 산업단지가 있는 광둥성의 수장이었고 지금 중국 경제 부총리인데, 그가 3중전회에 발표했고 리커창 총리가 선택한 거죠.
안 = 에너지 인터넷이 3차 산업혁명을 아우르는 핵심 같은데, 이는 선생이 만든 개념인지요.
리프킨 = 이미 변화하고 있는 일입니다. 젊은이들이 음악 파일을 공짜로 공유하기 시작할 때 음반 회사들이 질겁을 했어요. 하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신문도 블로그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았죠. 지금, 신문도 내리막길입니다. 이미 수십억의 인구가 오디오, 비디오 텍스트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시대죠. 게다가 거의 공짜입니다. 이와 똑같은 움직임이 에너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안 =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캠핑 가면 알루미늄 포일에다 조잡하게 뭘 연결해서 태양열로 불도 밝히고 밥도 하는 이들을 봅니다. 휴대용 솔라 발전기인데 그 발상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 에너지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구나 해서요.
리프킨 = 우리 모두가 발전소 주인이 되는 겁니다. 두 가지가 발생할 때 경제적 혁명이 일어났어요. 첫째,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창조하는 것, 둘째, 그것을 운영할 소통 혁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제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19세기에 수공업 인쇄에서 증기 인쇄로 옮겨갔기에 학교에서 공부할 만큼 인쇄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공교육이 발전하고 그 안에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죠. 1차 산업혁명은 인쇄술과 기관차와 증기력을 갖춘 공장이 합작한 커뮤니케이션 에너지였습니다. 20세기의 두 번째 커뮤니케이션 통합은 중앙집중식 전력, 전화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발전했고 자동차와 교외 문화를 운영하는 거대 소비사회를 만들었습니다. 2차 산업혁명이죠. 하지만 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타르샌드(모래층에 섞여있는 중질 원유)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지구를 오염시키며 더 많은 비용을 유발하니까요. 생산성이 없습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에너지의 새로운 수렴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이 추진합니다. 중앙 집중이 아니라 분산적인 방식이죠. 이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형식이 아니라 협력적입니다. 수평적인 권력입니다.
안 = 인터넷은 수평적 소통이고 분산적 권력인 것은 모두 동의합니다. 그런데 분산적인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리프킨 = 석유, 천연가스, 핵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 등은 몇몇 지역에서만 발견됩니다. 거대한 군사적 투자를 요구하고 지리정치학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대규모 자본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안 = 지난 100년간의 군사적 충돌을 화석에너지를 향한 지정학적 긴장으로 보는군요.
리프킨 = 분산적인 에너지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집과 빌딩을 개인 발전소로 바꾸는 거예요. 지붕에서는 태양에너지를 끌어오고 건물 벽면에 수직으로 바람에너지를 받고 땅 밑에서는 지열을 끌어올립니다. 빌딩 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에너지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 컴퓨터 갖고 있죠? 휴대폰도 있죠? 이제 개인 발전소를 갖는 겁니다. 다섯 가지 핵심 요소 중 첫째가 바로 이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인데 유럽연합이 공식 서약을 했습니다. 2020년까지 전력의 3분의 1을 재생 에너지로 바꿀 겁니다.
안 = 프랑스는 핵발전으로 80%의 전력을 충당하는데도 변화에 참여합니까.
리프킨= 프랑스가 달라졌습니다. 올랑드 대통령이 작년 9월에 3차 산업혁명의 리더가 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우리팀과 함께 프랑스 북부 노르 파드칼레 산업지구에 대한 마스터 플랜도 마친 상황입니다. 20년 동안 1년에 20억유로를 쓰기로 했어요. 독일에서는 제가 메르켈 총리의 공식적인 조언자로 함께합니다. 독일은 이미 23%가 그린 전력이고 2020년까지 35%의 전력이 기존 건물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자, 여기 두번째 핵심 사항이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는 겁니다. 살고 일하는 건물을 작은 개인 발전소로 개조하는 데는 수백만개의 일자리와 수천개의 작은 사업장이 필요해요. 인간의 노동력이 집약적으로 필요하기에 경제가 살아납니다.
안 = 미국의 전 노동장관이 대기업이 미국에다 제조공장을 세웠다고 해서 일자리 창출이 되겠구나 싶어 반갑게 축하 연설을 하러 갔다가 기겁을 했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인간 직원은 100여명뿐이고 기계들이 도열해 있었던 거죠.
리프킨 = 일자리뿐 아니라 더욱 큰 기회는 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주인이 작은 생산조합이라는 겁니다. 소비자조합, 개인, 농부, 도시거주민들이 주체입니다. 거대한 회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핵심 요소 세번째는 에너지 저장입니다. 햇빛이 매일 있는 것도, 바람이 늘 부는 것도 아니기에 이를 저장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도록 수소 축전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인터넷처럼 작동된다는 겁니다. 남는 에너지가 있으면 스마트폰 앱에다 프로그램 할 수 있고 이 전기를 아일랜드에서 동부 유럽에다 건네줄 수 있어요. 인터넷처럼 하면 됩니다. 정보를 만들어 디지털로 저장하고 온라인으로 나누는 거죠. 지금 독일, 덴마크에서 시작 단계입니다. 다섯번째는 운송입니다. 도요타가 2015년에 수소차를 선보일 예정이고 혼다, 현대, GM이 이미 수소 연료전지차를 완성했습니다. 곧 아무 빌딩에서나 플러그를 꽂고 수소 하이브리드 차에 충전하면 됩니다. 반대로 남은 전기를 그린 에너지로 돌려놓을 수도 있고요. 이 다섯 가지 핵심 요소는 3차 산업혁명을 만드는 인프라 구조입니다. 앞으로 10년에서 30년 사이에 전체 경제가 바뀔 겁니다.
▲ 핵이 공해 없는 에너지라 '에너지 자본'이 우릴 속여
▲ 조합, 농부, 도시민 등이 스스로 그린에너지 창출
'에너지 민주화' 이룩해야
▲ 한국, 이 기회 놓치면 10년 뒤 세계 2부리그에
안 =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이 유리하다는 입장이 여러 중앙 정부들의 호응을 얻습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물론 건설되는 지역의 저항은 심하죠. 한국은 원자력 말고도 밀양 송전탑 건설로 어르신들이 목숨을 끊어가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공급 거리가 멀더라도 경제적 효율을 위해서는 대규모 발전을 해서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리프킨 = 송전탑은 중앙 집중적 방식입니다. 먼 거리에서 가져오고 그 지방사람들은 희생을 강요받죠. 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핵발전소도. 이들은 민주적인 방식이 아닐뿐더러 모두 몇몇 사람들의 손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을 위한 겁니다.
안 = 그래도 핵발전은 태워 사라지는 것이 아닌, 재생 에너지이자 공해 없는 그린 에너지라는 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리프킨 = 아닙니다. 핵발전은 우라늄에 기초합니다. 일정량의 우라늄이 땅속에 있어 이를 플루토늄으로 재생하는 것인데 당신은 이 테러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플루토늄을 갖기를 바랍니까? 자, 핵발전이 진행되는 비즈니스 세계의 논쟁을 들려줄게요. 좀 깁니다. 제가 세계에서 제일 큰 개발팀의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IT, 전자, 물류, 건축, 건설, 금융 다 모여있는데, 우리팀 CEO들은 핵발전이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끝났다고 진단합니다. 체르노빌 사건 이후에 20년 동안 그 누구도 핵발전소를 짓지 않았어요. 그러다 기후변화 이야기가 나오니까 핵 산업에서 "잠깐만 당신들은 우리가 필요해.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거든"하며 목소리를 높였죠. 이 주장에는 큰 하자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미치려면 20%를 생산해야 하는데 원자력은 6%뿐입니다. 그렇다고 20%를 채우려면 노후된 핵발전소를 다 제거하고 매달 한 개씩 40년간 세워야 합니다. 비용적으로 이득이 없습니다. 두번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하기를 우라늄이 부족해 2030년에는 비용이 올라가 적자가 될 거라고 했어요. 그 다음, 핵 폐기물을 묻을 곳이 없습니다. 70년 동안 핵발전소들이 핵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방법을 모릅니다. 미국은 네바다주에 핵 폐기물 지하창고를 세우는데 16년 동안 80억달러를 썼습니다. 우리는 단 한번도 그 창고를 열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그곳이 새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냉각수가 없다는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40%의 담수를 냉각수로 쓰는데 기후변화로 물이 뜨거워 쓸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그리 급하게 유럽과 프랑스의 원자력발전소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거죠. 해수면에 세울 수는 있어요. 하지만 위태롭습니다. 쓰나미와 태풍이 더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왜 그렇게 비싼 핵발전을 하려고 하는 거죠? 한국에는 모든 사람이 다 생산할 수 있는 공짜 그린 전기가 있는데요. 원자력발전은 중앙 집중 방식으로 몇몇 회사들에만 이득을 줍니다. 모든 동네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으로 소유할 수 있는 그들만의 에너지를 창출해야 합니다. 독일이 지금 하는 일이죠. 모든 한국인이 자기 마당에서 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을 때 '파워 투 더 피플', 즉 국민에게 권력을 쥐여줬다고 부를 수 있는 에너지 민주화를 이룩하는 겁니다.
안 =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생산 동력인 에너지를 국민 손에 쥐여줌으로써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작동되겠네요. 가슴 뛰는 일입니다. 기존의 에너지망 속에 있던 기업들은 무엇을 하게 됩니까.
리프킨 = 과거 중앙 집중식은 전기를 팔아서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하는 겁니다. 경영하는 사람들은 생산성의 85%가 열역학적 효율이고 단지 15%만이 설비와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가진 전력 회사의 도움으로 전체 망 속에서 남는 에너지가 부족한 곳으로 원활히 흘러가도록 운영되면 에너지 비용과 재료 비용, 자원 비용이 줄어들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극적으로 상승할 겁니다. 더 많은 성장이 이뤄질 거예요. 독일 전력회사 RWE, EnBW, 프랑스 최대 전력회사인 EDF도 이 길에 동참했습니다.
안 = 한국이 이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리프킨 = 지금부터 10년 뒤에는 힘의 논리에서 2부 리그에 있게 되겠죠. 유럽과 중국이 이미 움직였습니다.
안 = 미국은 어떻습니까.
리프킨 = 미국과 캐나다는 불행히도 궤도 밖에 있습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오리건주와 뉴잉글랜드, 텍사스 남부의 샌안토니오부터 오스틴까지는 움직이고 있어요. 정말로 슬픈 일은 요즘 미국이 한다는 혁신에 있습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만들며 산업혁명의 반을 이뤘는데, 그만 멈춰 버렸어요. 셰일가스와 타르샌드로 가버렸습니다. 기존의 에너지 회사들이 우리에게 엉터리 상품을 팔아먹는 일을 용인한 겁니다. 셰일가스, 타르샌드가 훨씬 싸다며 그 값만 선전하고 있어요. 이는 중앙 집중화된 화석에너지 자본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 미국 셰일가스가 세계 에너지 시장을 움직인다는 보도가 등장합니다. 셰일가스는 지하수 오염에다 지구온난화를 촉진한다는 비판을 받는데도, 워낙 기름값이 오르니 한국도 가스공사, 석유공사, SK 등이 개발 투자에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리프킨 = 셰일가스 쪽으로 엄청나게 몰리는데, 미연방 정부가 말하기를 2020년이면 셰일가스 가격이 올라 사라질 거라고 합니다. 가격을 유지하면서 미국은 결국 6년이란 기회의 시간을 놓치는 것이죠. 2025년엔 2류국가가 될 겁니다.
안 = 한국은 서울시에서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합니다. 전력 수요가 가장 큰 곳에서 수요를 줄임으로써 서울로 인해 먼 곳에 세워질 수 있는 원전 건설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리프킨 = 서울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바마는 정말 큰 실수를 했어요. 그는 수십억달러를 경기 부양에 썼습니다. 하지만 고립적인 프로젝트에다 각각 따로 놀도록 했어요. 배터리 공장은 여기에, 태양열 공장은 저기에.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핵심은 연결된 설비를 만드는 겁니다.
안 = < 공감의 시대 > 에서 선생은 우리가 협력적 경제를 만들 수 있는 공감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논리 속에서 공기업의 이윤을 셈하는 요즘인데 인간의 착한 본성을 신뢰하기에는 시절이 참 각박합니다.
리프킨 = 신경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에서 과학자들이 증명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신경회로망을 갖고 태어났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당신 팔에 거미가 기어가는 걸 본다면, 나도 간지러울 거예요. 또 피를 흘리면 나도 움찔할 테고요. 인간은 공감 신경으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보다 힘이 약하고 느린데도 살아남았겠죠. 본성적으로 어울려 살고자 교감합니다. 모든 문명도 그래서 이룩해 왔고요. 젊은이들은 필리핀에 태풍이 왔을 때 트위터를 날리고 비디오를 찍어 보냈습니다. 페이스북을 하는 아이들은 글로벌 교실에 있죠. 이들은 이제 인류를 핏줄로 나누지 않아요. 다른 종들 역시 가족의 일부라고 여길 겁니다. 온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피부로 느끼죠. 물론 나는 나이브하지 않아요. 2075년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집니다. 기후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거든요. 모든 두 번째 이슈들은 미루고 심각하게 우리 사회의 전환에 뜻을 합쳐야 합니다.
제러미 리프킨(68)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워튼경영대학원 교수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경제동향연구재단(Economic Trends)'을 설립해 새로운 기술의 경제·환경·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공공의 이익 수호에도 관심을 갖는다. 최근에는 우리 문명이 맞닥뜨린 지구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내는 지역 및 국가적 산업구조 재편에 관여하고 있다.
리프킨은 지난 10년간 유럽연합 자문역으로 활동했으며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사파테로 스페인 전 총리 등의 공식 자문역할도 맡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로 19권의 책을 35개 언어로 출판하면서 노동·환경·정치·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미래학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왔다. 저서로는 < 노동의 종말 > < 소유의 종말 > < 육식의 종말 > < 유러피언 드림 > < 수소혁명 > < 공감의 시대 > < 3차 산업혁명 > 등이 있다. 리프킨과 만난 날, 그의 책상에서 새로운 책 한 권을 만났다. 4월에 영어권에 배포되고 9월에 한국어 등으로 출판될 < zeroMarginal Cost Society(제로 마진 비용 사회) > 다. 책상 왼편에는 쌀 세 포대는 됨직한 새 책의 자료와 초고 더미가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옛날 전화번호부 두께의 A4용지 원고 묶음을 올려놓았다. 방대한 사고의 흐름이 압축되어 한 권으로 완성되는 엄청난 집중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쉼없이 현재를 통찰하며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
인터넷을 통한 개인과 개인의 소통은 시장을 바꿔놓았다. 아프리카 수단 할머니의 좌판에 놓인 대바구니가 할머니의 인생 이야기와 묶여 스웨덴, 뉴질랜드로 팔려가는 시대이다. 이처럼 네트워크가 강화된 세상은 산업의 동력인 에너지 생산 체계마저 바꿀 수 있다.
지금 세계는 두 개의 트랙으로 갈라지고 있다. 한 트랙은 현재의 대량소비사회를 유지하며 자본주의 시장을 안정시키고자 새로운 화석연료 개발을 추진한다. 다른 한 트랙은 재생 가능 에너지망을 설치해 환경재앙을 막고, 무엇보다 개인 대 개인이 연결되는 새로운 상품과 거래망을 선점하려는 도전이다.
첫 시작점은 미미한 차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트랙의 거리는 점점 벌어진다. 어느 시기에 돌아가려 해도 이미 시간이 흘러버렸기에 과거의 출발점은 사라진다. 그래서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 제러미 리프킨 교수로부터 전 지구적으로 맞대결하고 있는 신구 트랙의 움직임, 그리고 오늘 우리의 문명이 어떤 전환점에 와 있는지 들어보았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그의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했던 지난 6일은 20년 만에 찾아온 한파로 동부가 꽁꽁 얼어붙던 날이었다.
▲ 온난화로 기후변화 재앙… 세계 '두 트랙'으로 갈려
원전 80% 프랑스는 물론 중국도 3차 산업혁명 동참
▲ 집·빌딩·PC·휴대폰… 모두 '개인 발전소' 갖고
분산 생산해 수평 이동… '에너지 인터넷'이 미래
안희경 = < 문명, 그 길을 묻다 > 의 첫 인터뷰 대상자는 문명을 탐구해온 생태학자 재레드 다이아몬드였습니다. 그는 지구의 풍요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이제 50년뿐이라고 했습니다. 자원이 고갈되기 때문이라는 진단입니다.
리프킨 = 19세기 1차 산업혁명과 20세기 2차 산업혁명을 이루면서 우리는 화석연료를 다 퍼냈습니다. 전체가 같은 문명을 창조하겠다고 그걸 태웠죠. 그리고 지구온난화를 만들어냈어요. 지구의 물 순환이 바뀌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기온이 1도 오를 때마다 대기는 땅에서 7%의 강수량을 빨아들입니다. 물이 균형을 잃고 더 많은 집중호우가 내립니다. 눈은 봄까지 오고 봄 홍수, 여름 가뭄에다 초대형 허리케인과 태풍이 더 자주 찾아옵니다. 지구는 4억5000만년 동안 5번의 멸종 시기가 있었는데 온도변화 때문이었죠. 과학자들은 지금 6번째 멸종이 시작됐고 이번 세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생명 종 가운데 최대한 60%를 잃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완전히 잠에 취해있어요.
안 =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우리에게 지속 가능한 경제를 제안했습니다.
리프킨=무엇을 지속가능한 경제라고 했나요.
안 = 생산할 수 있는 만큼 소비하는 겁니다. 선생님의 해법은 어떤 것인가요.
리프킨 = 우리가 할 만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재생 가능한 자연에너지를 산업의 동력, 생활에너지로 바꾸는 3차 산업혁명을 이루는 겁니다. 이제 학문적인 단계에서 실용적인 단계로 넘어왔고, 클라우스 핸슈 전 유럽연합 의장, 메르켈 독일 총리,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리커창 중국 총리가 받아들였습니다.
안 = 중국까지 에너지 정책을 수정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작년 11월 중국공산당 3중전회(제18기 당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에서 환경의제가 채택되었다는 기사를 보고 대기오염 문제를 심각하게 거론하나보다 정도로 짐작했는데 그런 규모가 아니군요.
리프킨 = 중국은 경제 변화에서 앞서기 위한 결단을 내린 겁니다. 지난 9월 중국 지도자들과 3주 동안 회의를 열었습니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리프킨, 우리는 1차 산업혁명도 놓치고 2차 산업혁명도 놓쳤소. 그렇지만 3차는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중국국가전망공사 회장이 3차 산업혁명을 진행하겠다는 글을 3주 전에 발표했습니다. 전력 분산을 위해 에너지 인터넷 배치에만 820억달러를 4년 동안 쓰겠답니다. 제 책이 2012년에 중국에서 출판됐는데 당시 왕양의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는 중국 최대 산업단지가 있는 광둥성의 수장이었고 지금 중국 경제 부총리인데, 그가 3중전회에 발표했고 리커창 총리가 선택한 거죠.
안 = 에너지 인터넷이 3차 산업혁명을 아우르는 핵심 같은데, 이는 선생이 만든 개념인지요.
리프킨 = 이미 변화하고 있는 일입니다. 젊은이들이 음악 파일을 공짜로 공유하기 시작할 때 음반 회사들이 질겁을 했어요. 하지만 막을 수 없었습니다. 신문도 블로그에 대해 듣고 싶어하지 않았죠. 지금, 신문도 내리막길입니다. 이미 수십억의 인구가 오디오, 비디오 텍스트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시대죠. 게다가 거의 공짜입니다. 이와 똑같은 움직임이 에너지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안 = 제가 사는 캘리포니아에서는 캠핑 가면 알루미늄 포일에다 조잡하게 뭘 연결해서 태양열로 불도 밝히고 밥도 하는 이들을 봅니다. 휴대용 솔라 발전기인데 그 발상에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아! 에너지도 사적으로 소유할 수 있구나 해서요.
리프킨 = 우리 모두가 발전소 주인이 되는 겁니다. 두 가지가 발생할 때 경제적 혁명이 일어났어요. 첫째, 새로운 에너지 체계를 창조하는 것, 둘째, 그것을 운영할 소통 혁명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경제 패러다임이 바뀝니다. 19세기에 수공업 인쇄에서 증기 인쇄로 옮겨갔기에 학교에서 공부할 만큼 인쇄물을 만들어 낼 수 있었습니다. 공교육이 발전하고 그 안에서 노동력 보충이 이뤄졌죠. 1차 산업혁명은 인쇄술과 기관차와 증기력을 갖춘 공장이 합작한 커뮤니케이션 에너지였습니다. 20세기의 두 번째 커뮤니케이션 통합은 중앙집중식 전력, 전화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커뮤니케이션 미디어가 발전했고 자동차와 교외 문화를 운영하는 거대 소비사회를 만들었습니다. 2차 산업혁명이죠. 하지만 이는 죽어가고 있습니다. 석탄, 석유, 천연가스, 타르샌드(모래층에 섞여있는 중질 원유) 같은 화석연료가 고갈되고 지구를 오염시키며 더 많은 비용을 유발하니까요. 생산성이 없습니다. 다행히 지금 우리는 커뮤니케이션 에너지의 새로운 수렴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에 있습니다. 3차 산업혁명은 인터넷이 추진합니다. 중앙 집중이 아니라 분산적인 방식이죠. 이는 위에서 아래로 내리꽂는 형식이 아니라 협력적입니다. 수평적인 권력입니다.
안 = 인터넷은 수평적 소통이고 분산적 권력인 것은 모두 동의합니다. 그런데 분산적인 에너지는 무엇입니까.
리프킨 = 석유, 천연가스, 핵발전에 사용되는 우라늄 등은 몇몇 지역에서만 발견됩니다. 거대한 군사적 투자를 요구하고 지리정치학적으로 긴장을 고조시키고 대규모 자본의 논리로 움직입니다.
안 = 지난 100년간의 군사적 충돌을 화석에너지를 향한 지정학적 긴장으로 보는군요.
리프킨 = 분산적인 에너지는 우리 모두가 갖고 있습니다. 집과 빌딩을 개인 발전소로 바꾸는 거예요. 지붕에서는 태양에너지를 끌어오고 건물 벽면에 수직으로 바람에너지를 받고 땅 밑에서는 지열을 끌어올립니다. 빌딩 안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에너지로 전환할 수도 있습니다. 개인 컴퓨터 갖고 있죠? 휴대폰도 있죠? 이제 개인 발전소를 갖는 겁니다. 다섯 가지 핵심 요소 중 첫째가 바로 이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인데 유럽연합이 공식 서약을 했습니다. 2020년까지 전력의 3분의 1을 재생 에너지로 바꿀 겁니다.
안 = 프랑스는 핵발전으로 80%의 전력을 충당하는데도 변화에 참여합니까.
리프킨= 프랑스가 달라졌습니다. 올랑드 대통령이 작년 9월에 3차 산업혁명의 리더가 되겠다고 공표했습니다. 우리팀과 함께 프랑스 북부 노르 파드칼레 산업지구에 대한 마스터 플랜도 마친 상황입니다. 20년 동안 1년에 20억유로를 쓰기로 했어요. 독일에서는 제가 메르켈 총리의 공식적인 조언자로 함께합니다. 독일은 이미 23%가 그린 전력이고 2020년까지 35%의 전력이 기존 건물에서 나오게 될 겁니다. 자, 여기 두번째 핵심 사항이 있습니다. 우리들 각자가 경제 성장의 주역이 되는 겁니다. 살고 일하는 건물을 작은 개인 발전소로 개조하는 데는 수백만개의 일자리와 수천개의 작은 사업장이 필요해요. 인간의 노동력이 집약적으로 필요하기에 경제가 살아납니다.
안 = 미국의 전 노동장관이 대기업이 미국에다 제조공장을 세웠다고 해서 일자리 창출이 되겠구나 싶어 반갑게 축하 연설을 하러 갔다가 기겁을 했다는 일화가 생각납니다. 인간 직원은 100여명뿐이고 기계들이 도열해 있었던 거죠.
리프킨 = 일자리뿐 아니라 더욱 큰 기회는 이 모든 것을 소유하는 주인이 작은 생산조합이라는 겁니다. 소비자조합, 개인, 농부, 도시거주민들이 주체입니다. 거대한 회사는 감당하기 어려운 조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핵심 요소 세번째는 에너지 저장입니다. 햇빛이 매일 있는 것도, 바람이 늘 부는 것도 아니기에 이를 저장하는 기술을 발전시켜야 하는데,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도록 수소 축전 기술이 많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네번째는 인터넷처럼 작동된다는 겁니다. 남는 에너지가 있으면 스마트폰 앱에다 프로그램 할 수 있고 이 전기를 아일랜드에서 동부 유럽에다 건네줄 수 있어요. 인터넷처럼 하면 됩니다. 정보를 만들어 디지털로 저장하고 온라인으로 나누는 거죠. 지금 독일, 덴마크에서 시작 단계입니다. 다섯번째는 운송입니다. 도요타가 2015년에 수소차를 선보일 예정이고 혼다, 현대, GM이 이미 수소 연료전지차를 완성했습니다. 곧 아무 빌딩에서나 플러그를 꽂고 수소 하이브리드 차에 충전하면 됩니다. 반대로 남은 전기를 그린 에너지로 돌려놓을 수도 있고요. 이 다섯 가지 핵심 요소는 3차 산업혁명을 만드는 인프라 구조입니다. 앞으로 10년에서 30년 사이에 전체 경제가 바뀔 겁니다.
제러미 리프킨은 에너지 이용의 패러다임을 화석연료와 원자력 등 기존의 중앙집중적 방식에서 재생가능 에너지를 활용하는 분산적 에너지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독일 함부르크 하펜시티에 있는 유니레버 사옥(왼쪽 사진)은 태양열 이용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리창-태양열 보호장비-비닐로 벽체를 3중 설계했다. 건물 구조를 변경해 재생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 것이다. 오른쪽 사진은 독일 함부르크 빌헬름스부르크 미테 지역에 있는 에너지 벙커. 2차 세계대전 당시 방공요새를 리모델링해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발전소로 바꾼 것이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 조합, 농부, 도시민 등이 스스로 그린에너지 창출
'에너지 민주화' 이룩해야
▲ 한국, 이 기회 놓치면 10년 뒤 세계 2부리그에
안 =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이 유리하다는 입장이 여러 중앙 정부들의 호응을 얻습니다. 한국도 그렇습니다. 물론 건설되는 지역의 저항은 심하죠. 한국은 원자력 말고도 밀양 송전탑 건설로 어르신들이 목숨을 끊어가며 저항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에너지 공급 거리가 멀더라도 경제적 효율을 위해서는 대규모 발전을 해서 가져와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리프킨 = 송전탑은 중앙 집중적 방식입니다. 먼 거리에서 가져오고 그 지방사람들은 희생을 강요받죠. 댐도 그렇습니다. 그리고 핵발전소도. 이들은 민주적인 방식이 아닐뿐더러 모두 몇몇 사람들의 손에 집중되어 있고 그들을 위한 겁니다.
안 = 그래도 핵발전은 태워 사라지는 것이 아닌, 재생 에너지이자 공해 없는 그린 에너지라는 데 공감을 불러일으킵니다.
리프킨 = 아닙니다. 핵발전은 우라늄에 기초합니다. 일정량의 우라늄이 땅속에 있어 이를 플루토늄으로 재생하는 것인데 당신은 이 테러의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플루토늄을 갖기를 바랍니까? 자, 핵발전이 진행되는 비즈니스 세계의 논쟁을 들려줄게요. 좀 깁니다. 제가 세계에서 제일 큰 개발팀의 의장을 맡고 있습니다. IT, 전자, 물류, 건축, 건설, 금융 다 모여있는데, 우리팀 CEO들은 핵발전이 비즈니스적 관점에서는 끝났다고 진단합니다. 체르노빌 사건 이후에 20년 동안 그 누구도 핵발전소를 짓지 않았어요. 그러다 기후변화 이야기가 나오니까 핵 산업에서 "잠깐만 당신들은 우리가 필요해. 우리는 이산화탄소를 내뿜지 않거든"하며 목소리를 높였죠. 이 주장에는 큰 하자가 있습니다. 기후변화에 최소한의 영향력을 미치려면 20%를 생산해야 하는데 원자력은 6%뿐입니다. 그렇다고 20%를 채우려면 노후된 핵발전소를 다 제거하고 매달 한 개씩 40년간 세워야 합니다. 비용적으로 이득이 없습니다. 두번째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발표하기를 우라늄이 부족해 2030년에는 비용이 올라가 적자가 될 거라고 했어요. 그 다음, 핵 폐기물을 묻을 곳이 없습니다. 70년 동안 핵발전소들이 핵 폐기물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했는데 아직도 방법을 모릅니다. 미국은 네바다주에 핵 폐기물 지하창고를 세우는데 16년 동안 80억달러를 썼습니다. 우리는 단 한번도 그 창고를 열어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이미 그곳이 새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더 큰 이유는 냉각수가 없다는 겁니다. 프랑스에서는 40%의 담수를 냉각수로 쓰는데 기후변화로 물이 뜨거워 쓸 수 없게 됐어요. 그래서 그리 급하게 유럽과 프랑스의 원자력발전소들이 문을 닫아야 하는 거죠. 해수면에 세울 수는 있어요. 하지만 위태롭습니다. 쓰나미와 태풍이 더 증가하고 있으니까요. 왜 그렇게 비싼 핵발전을 하려고 하는 거죠? 한국에는 모든 사람이 다 생산할 수 있는 공짜 그린 전기가 있는데요. 원자력발전은 중앙 집중 방식으로 몇몇 회사들에만 이득을 줍니다. 모든 동네에서 생산자와 소비자 조합으로 소유할 수 있는 그들만의 에너지를 창출해야 합니다. 독일이 지금 하는 일이죠. 모든 한국인이 자기 마당에서 에너지를 가져올 수 있을 때 '파워 투 더 피플', 즉 국민에게 권력을 쥐여줬다고 부를 수 있는 에너지 민주화를 이룩하는 겁니다.
안 = 대한민국 헌법 제1조에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명시되어 있습니다. 생산 동력인 에너지를 국민 손에 쥐여줌으로써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작동되겠네요. 가슴 뛰는 일입니다. 기존의 에너지망 속에 있던 기업들은 무엇을 하게 됩니까.
리프킨 = 과거 중앙 집중식은 전기를 팔아서 돈을 벌었지만 지금은 네트워크를 연결해 주는 서비스를 하는 겁니다. 경영하는 사람들은 생산성의 85%가 열역학적 효율이고 단지 15%만이 설비와 숙련된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빅데이터를 가진 전력 회사의 도움으로 전체 망 속에서 남는 에너지가 부족한 곳으로 원활히 흘러가도록 운영되면 에너지 비용과 재료 비용, 자원 비용이 줄어들면서 기업의 생산성은 극적으로 상승할 겁니다. 더 많은 성장이 이뤄질 거예요. 독일 전력회사 RWE, EnBW, 프랑스 최대 전력회사인 EDF도 이 길에 동참했습니다.
안 = 한국이 이 기회를 놓치면 어떻게 될까요.
리프킨 = 지금부터 10년 뒤에는 힘의 논리에서 2부 리그에 있게 되겠죠. 유럽과 중국이 이미 움직였습니다.
안 = 미국은 어떻습니까.
리프킨 = 미국과 캐나다는 불행히도 궤도 밖에 있습니다. 하지만 캘리포니아주, 워싱턴주, 오리건주와 뉴잉글랜드, 텍사스 남부의 샌안토니오부터 오스틴까지는 움직이고 있어요. 정말로 슬픈 일은 요즘 미국이 한다는 혁신에 있습니다. 미국은 실리콘밸리를 만들며 산업혁명의 반을 이뤘는데, 그만 멈춰 버렸어요. 셰일가스와 타르샌드로 가버렸습니다. 기존의 에너지 회사들이 우리에게 엉터리 상품을 팔아먹는 일을 용인한 겁니다. 셰일가스, 타르샌드가 훨씬 싸다며 그 값만 선전하고 있어요. 이는 중앙 집중화된 화석에너지 자본이 버티고 있기 때문입니다.
안 = 미국 셰일가스가 세계 에너지 시장을 움직인다는 보도가 등장합니다. 셰일가스는 지하수 오염에다 지구온난화를 촉진한다는 비판을 받는데도, 워낙 기름값이 오르니 한국도 가스공사, 석유공사, SK 등이 개발 투자에 적극적으로 움직인다고 합니다.
리프킨 = 셰일가스 쪽으로 엄청나게 몰리는데, 미연방 정부가 말하기를 2020년이면 셰일가스 가격이 올라 사라질 거라고 합니다. 가격을 유지하면서 미국은 결국 6년이란 기회의 시간을 놓치는 것이죠. 2025년엔 2류국가가 될 겁니다.
안 = 한국은 서울시에서 원전 하나 줄이기 운동을 합니다. 전력 수요가 가장 큰 곳에서 수요를 줄임으로써 서울로 인해 먼 곳에 세워질 수 있는 원전 건설을 막는다는 것입니다.
리프킨 = 서울시는 오바마 대통령이 했던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바마는 정말 큰 실수를 했어요. 그는 수십억달러를 경기 부양에 썼습니다. 하지만 고립적인 프로젝트에다 각각 따로 놀도록 했어요. 배터리 공장은 여기에, 태양열 공장은 저기에.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에 맞는 인프라를 구축하지 못했습니다. 핵심은 연결된 설비를 만드는 겁니다.
안 = < 공감의 시대 > 에서 선생은 우리가 협력적 경제를 만들 수 있는 공감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고 했습니다. 모두가 신자유주의 논리 속에서 공기업의 이윤을 셈하는 요즘인데 인간의 착한 본성을 신뢰하기에는 시절이 참 각박합니다.
리프킨 = 신경인지과학과 진화생물학에서 과학자들이 증명하고 있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고통에 대해 공감하는 신경회로망을 갖고 태어났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당신 팔에 거미가 기어가는 걸 본다면, 나도 간지러울 거예요. 또 피를 흘리면 나도 움찔할 테고요. 인간은 공감 신경으로 연동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호랑이보다 힘이 약하고 느린데도 살아남았겠죠. 본성적으로 어울려 살고자 교감합니다. 모든 문명도 그래서 이룩해 왔고요. 젊은이들은 필리핀에 태풍이 왔을 때 트위터를 날리고 비디오를 찍어 보냈습니다. 페이스북을 하는 아이들은 글로벌 교실에 있죠. 이들은 이제 인류를 핏줄로 나누지 않아요. 다른 종들 역시 가족의 일부라고 여길 겁니다. 온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피부로 느끼죠. 물론 나는 나이브하지 않아요. 2075년을 생각하면 몸서리쳐집니다. 기후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거든요. 모든 두 번째 이슈들은 미루고 심각하게 우리 사회의 전환에 뜻을 합쳐야 합니다.
제러미 리프킨(68)은 미 펜실베이니아대학 워튼경영대학원 교수다. 또한 비영리 조직인 '경제동향연구재단(Economic Trends)'을 설립해 새로운 기술의 경제·환경·사회·문화적인 영향력을 소개하고 있다. 그는 공공의 이익 수호에도 관심을 갖는다. 최근에는 우리 문명이 맞닥뜨린 지구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재생 가능한 에너지로 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내는 지역 및 국가적 산업구조 재편에 관여하고 있다.
리프킨은 지난 10년간 유럽연합 자문역으로 활동했으며 사르코지 프랑스 전 대통령과 메르켈 독일 총리, 사파테로 스페인 전 총리 등의 공식 자문역할도 맡았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저자로 19권의 책을 35개 언어로 출판하면서 노동·환경·정치·사회 전 분야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미래학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해왔다. 저서로는 < 노동의 종말 > < 소유의 종말 > < 육식의 종말 > < 유러피언 드림 > < 수소혁명 > < 공감의 시대 > < 3차 산업혁명 > 등이 있다. 리프킨과 만난 날, 그의 책상에서 새로운 책 한 권을 만났다. 4월에 영어권에 배포되고 9월에 한국어 등으로 출판될 < zeroMarginal Cost Society(제로 마진 비용 사회) > 다. 책상 왼편에는 쌀 세 포대는 됨직한 새 책의 자료와 초고 더미가 쌓여 있었고, 책상 위에는 옛날 전화번호부 두께의 A4용지 원고 묶음을 올려놓았다. 방대한 사고의 흐름이 압축되어 한 권으로 완성되는 엄청난 집중의 시간을 시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다. 그는 그렇게 쉼없이 현재를 통찰하며 미래를 보여주고 있다.
< 안희경 | 재미 저널리스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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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그 길을 묻다 - 세계 지성과의 대화](3)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한국, 경제적으로 성공했는데… ‘전쟁터 사회’ 벗어날 때도 돼
바른 사람·바른 노동자·바른 시민이 되도록 아이들 가르쳐야 경향신문 글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 김아람 재미 사진작가 입력 2014.01.27 21:48 수정 2014.01.28 09:56
한국 사회에서 입시 경쟁이 세대가 바뀌어도 느슨해지지 않는 이유는 그동안 경제는 눈부시게 성장한 반면 분배가 공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력별 소득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고 학벌에 따라 기회가 제한되는 관행들도 개선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존엄을 갖출 만큼 기본소득이 주어지는 복지가 이뤄진 것도 아니다. 갈수록 힘들어지는 취업 때문에 불안은 커지고 경쟁은 점점 과열된다. 어른의 불안과 불만은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쏟아지면서 우울한 어린이를 양산하고 있다. 자식을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나마 아직 열려 있는 보험 같은 문이라는 명문대 입시로 몰아가는 것이다. 그 길에는 돈과 희생이 쌓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덫이 하나 있다. 공정하다는 평가시험 자체가 인간 능력에 대한 차별에서 출발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갖춘 여러 능력 가운데 수리능력과 언어능력이 우수한 학생들에게만 유리하도록 제도가 짜여졌다. 논리적 추론이 정교하고 셈이 빠르며 잘 외우는 능력만을 우대해 기회의 문을 열어준 것이다.
25년 전, 하버드대 교육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능력을 가늠하는 단일지능 우대 시스템에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의 두뇌는 8가지 다중지능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의 이론은 급속히 학계에 퍼졌고, 연구와 임상 그리고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견고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전 세계 대학과 연구소가 다중지능이론을 존중하며 현실에 적용시켜 나간다. 21세기 들어와서는 대중적으로도 확산됐다. 앞서 2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21세기를 '공감의 시대'라고 했다. 우리의 지능 가운데 인간 친화 지능과 자기 성찰 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사회경제적으로도 교류 양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닥쳐올 위기들 또한 협업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소통과 협력의 시대를 맞아 한국 교육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수업과 평가를 통해 문명의 지속성을 단단히 지켜내야 할 때다. 우리 교육에서 무엇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지 조언을 듣고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를 만났다. 지난 7일 하버드대 그의 연구실에서 나눈 이야기다.
▲ 언어·수리 능력 재는 시험이
"왜 죽나" "왜 싸우나" 같은 사유 능력 측정하진 못해
▲ 제도 안의 '학벌 편견' 문제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라
안희경 = 요즘 대학 입시 발표가 나고 있습니다. 결과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한국은 대학이 마치 교육 레이스의 결승점처럼 됐어요. 대학을 가야 하고, 이름 높은 학교를 가야 남은 인생이 보장된다는 안도감을 얻습니다.
하워드 가드너 = 왜 부모들이 자식을 그렇게도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할까요?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 높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 가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물론 그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시험 점수로 사람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면 똑똑하다고 칭찬할 만한 능력은 성적이 좋은 경우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재능들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어느 특정한 능력에만 찬사를 보내고 미화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학과 언어 능력 중심으로 사람들한테 영광을 얻게 해준 거예요. IQ(지능지수) 검사를 보다 정교하게 보완한 검사 중 하나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치르는 SAT입니다. 한국 시험도 이와 비슷할 거 같은데요. 언어 점수와 수학 점수를 중시하는 일종의 단일지능 위주의 테스트죠. 20세기 산업 패턴에 맞춰진 테스트입니다. 이런 시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를 바로 보는 능력, 예술적인 자질, 창의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매우 필요한 능력인데도요.
안 = 시험 잘 못 봐서 기죽고 머리 나쁘다 실망하고, 또 IQ 낮아 열등감에 빠졌던 시간들이 결국은 단일지능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 때문에 자기비하를 한 거였군요. 억울해집니다.
가드너 = 본인의 IQ를 압니까? 저는 모릅니다. 미국에서는 다들 몰라요. 안다 해도 IQ를 대화에 거론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평가틀로 끼워넣는 거니까요.
안 = 인종차별처럼 통용되는군요. 우리의 경우는 '머리가 좋다'는 표현이 대화에서 자주 오고갑니다.
가드너 = 그렇다고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IQ 테스트가 그 사람의 미래를 잘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에 초점을 둬서 검사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조건들을 더해서 검사를 하면 예측성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사람의 미래를 뭐라 예측한다는 것이 참 부질없음을 알게 하죠. 성적이 좋으니까 법대 가면 잘할 거라는 기대감도 IQ 위주로 평가해서 나온 건데, 법은 논리와 언어 능력이 동등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수학 잘한다고 법대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는 틀린 겁니다. 의사도 그렇습니다. 과학과 의학에다 환자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환자의 얼굴을 보며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은 IQ가 아니라 인간 친화 지능에 더 가깝죠. 바로 이 인간적 교감 때문에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고요. 누가 훌륭한 판매능력을 갖춘 마케터인지 알려면 시험 성적에 중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한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니까요. 또 새로 발명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때는 그 어떤 시험도 미리 줄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안 = 성적 좋은 학생을 칭찬할 때는 학습 능력뿐 아니라 그 성실함까지 높이 사서 그런 건데요. 이도 특정한 재능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런 이들이 조금 쉽게 참아낼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가드너 = 여러 사람이 평가받는 시험은 우선 치르기 편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언어·수리 능력 위주로 출제해온 겁니다. 그런 시험지에는 큰 질문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죽는가'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싸우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천 년 넘게 흐르는 긴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사유하는 질문들은 답하는 데도, 점수를 주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쉽게 몰두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있습니다. 실존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이라고 논문을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런 큰 질문들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때로는 문학으로 승화되죠. 이런 능력은 테스트로 알 수 없죠. 수리능력, 언어능력이 독창성, 창의력, 공감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21세기는 협력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요. 이것도 우리가 종이에다 연필로 적어서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죠.
▲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 가는 한국 교육의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한 병리적 증상
▲ 한국서 다중지능이론 인기
아이의 흥미·자질 측정 아닌 8가지 지능 개발로 왜곡돼
안 = 이달 초 한국 언론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한 '노동시장 선호와 선별에 기반한 입시체제의 분석과 평가'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학벌에 따라 받는 차별이 성별이나 연령, 출신지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어요. 같은 대졸자라도 출신 대학에 따라 임금, 승진, 조직 내 관계에서 차별을 경험했는데 그 비율이 50%에 육박합니다.
가드너 = 엘리트 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엘리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맞춤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마디하고 싶은데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 나의 목표, 나의 능력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평가하는 겁니다. 남의 평가에 위축되는 분위기가 참 슬퍼요. 저는 아이가 넷인데 평판이 좋기를 바라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주목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무룩해지면 이렇게 말해줍니다. "애야,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문제란다." 한국의 제도 안에 있는 학벌에 대한 편견이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몹쓸 일이죠. 그래도 우리 눈으로 스스로를 진단해야 해요. 미스터 김이, 미스 박이 생각하는 대로 휘둘리면 안됩니다. 이럴 때 제도의 협조가 있다면 상황이 훨씬 쉬워질 겁니다.
안 = 사회 제도를 바꾸느냐 교육 제도를 바꾸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라기보다 두 가지 모두 아우르면서 편견을 깨는 인식의 확장이 이뤄져야겠습니다.
가드너 = 내가 매우 관심을 기울이는 두 개의 사회가 있어요. 핀란드와 이탈리아 북부입니다. 이곳은 중국이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균형감을 갖추고 있죠.
안 = 두 곳 모두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네요. 이탈리아 북부는 협동조합에서 태동한 레지오 아밀리아 교육을 떠올리게 합니다. 핀란드는 교육 이전에 복지와 부의 분배가 어느 선진국보다 잘된 곳이고요. 평등한 사회가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가드너 = 그렇죠. 내가 투표장에 가서 선거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걱정만 늘어놓을 것인지 바꿀 것인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제도를 바꾸고 싶다면 나서야죠. 출마도 하고 선거운동도 해서 도전하는 겁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명문대를 나왔다면 국민한테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모두 좁은 구멍 속으로 자식을 밀어넣게 만들 거예요. 정부 요직에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대학 동창생이라면 한국 사회의 긴장은 느슨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학교를 나온 남녀가 정부 부처에 모여 뜻을 펼친다면, 사회로 퍼지는 의미는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안 = 협력을 깨는 것은 누군가 이윤을 독식할 때입니다. 교실 속 문제도 결국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가드너 = 사회가 더욱 다양성과 다원적인 문화를 가질 때 서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싸움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한국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회가 됐는데 "긴장 풀자"고 여유 좀 부려도 되지 않나요? 이제는 돌볼 때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저의 다중지능이론이 인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가요?
안 = 중국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가드너 = (웃음) 아이의 흥미와 자질을 알아보려고 이용하기보다 8가지 지능을 다 개발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군요.
안 = 본뜻과는 다르게 입시 경쟁, 출세 경쟁에서 남보다 뛰어나도록 키우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교육 시장이 커져서 그런데요. 유아교육 시장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죠.
가드너 = 정말로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부모를 먼저 교육시켜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은 모두 다른 자질을 갖고 있고 그 다양한 능력이 존중받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인식할 때 사회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 =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고 잘살기를 바랍니다.
가드너 = 물론이죠. 단, 무엇이 잘사는 삶인가 물어야 해요. 편안하려면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일단 돈을 갖게 되면 금방 불행해져요. 늘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갖고 있는 걸 알게 되니까요. 많은 연구 결과가 그래요. 행복의 의미가 무얼까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산적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도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삶이 잘사는 것 아닐까요?
안 = 학교에서 행복을 경험하고 스스로 행복해지는 법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수업을 도입하면 어떨까요.
가드너 = 나는 학교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자기 일을 즐기고, 조금 더 나아지려 애쓰고, 또 서로 나누며 기뻐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미래가 또 그렇게 될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행동을 봅니다. 부모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돈에 더 관심을 가지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구나'라고 배워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책에서 뭐라고 하는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자랍니다.
안 =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밤에 우는 아기를 염려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는 마을이라면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는 느긋하고 너그럽겠죠. 그런데 한국의 어린이들은 바쁩니다. 지금 방학인데도 학원 가느라 놀 틈이 없습니다. 다들 선행학습을 하기에 미리 배우고 학년에 올라가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조바심이 있어요.
가드너 = 솔직히 말하면, 제게는 매우 병적 증상으로 들립니다. 아이들한테서 어린 시절을 빼앗는 강도짓이에요. 더 좋은 성적을 내라고 몰아치는 건데 그 시험은 어떤 누군가가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 생각한다면, 이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쥐가 된 겁니다. 거기에서 꼼짝 못하고 계속 달리고 있는 거예요. 틀에 갇혔어요. 내가 만약 한국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라면 이렇게 외칠 겁니다. "좋아, 이제 그런 시험은 없어. 다 걷어내는 거야." 그럼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에게 또 어른들에게도 자기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발견하도록 기회를 줄 겁니다. 그런 시험 없이 우리는 훨씬 더 잘 해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모든 8살짜리가 같은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사람마다 수리능력이 다르니까요. 어떤 8살 아이는 10살이 배우는 걸 해볼 만합니다. 그럼 기회를 줘야죠.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방과후에 학원으로 간다는 것은 병리학적 신호입니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안 =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가드너 =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일 년 전이었어요. 한 학생이 찾아와서 말하더군요. "저는 왜 학교가 필요한지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은 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학생 말이 맞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니죠. 한 종류는 없습니다. 바로 우리들 존재에 관한 질문들이죠.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비로움, 보살핌이 중요하다는 것을 식구들과 나누며 살면 좋겠어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쓰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살아있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굿 프로젝트'(www.thegoodproject.org)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사람들한테 세 가지 선을 이야기합니다.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이 되자고요. 바른 사람은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달려가 돕는 사람입니다. 바른 노동자는 훌륭하고 참여적이며 도리에 맞게 살아가면서 공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충만하게 사는 이들이죠. 바른 시민이 되는 것은 규칙과 법을 알고 보살피며 윤리적으로 활동하는 겁니다. 자기만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셋을 함께 이룰 수 있다면 바른 사회가 되겠죠. 신자유주의 속에서 돈이 제일이 됐고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그 돈을 쥐려고들 애씁니다. 참으로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위험합니다. 멍청한 이유는 그 누구도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고요. 위험한 것은 이 세상에 쓸 수 있는 자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지혜와 지식을 동원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농작물도 물고기도 광물도 그 양이 정해져 있기에 아끼고 또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눈을 부릅떠야 해요. 지금의 엄청난 소유 격차로는 이 세상을 지켜나갈 수가 없습니다. 과학도 수학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직 깨달음뿐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깨닫고 이 세상을 모두와 공유하며 살겠다는 인도적 가치를 깨달아야 생존할 수 있어요. 자유, 정의, 평등에 대해 일어났던 우리 문명의 혁명을 이해하며 편가르기보다 함께하도록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워드 가드너(71)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하버드대 심리학과 겸임 교수이다.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로, 그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됐다. 또한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학교와 연구소가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인간의 예술적·창조적 능력의 발달 과정을 분석하는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의 책임자로서 20여년간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1981년 맥아더 펠로십, 2000년 구겐하임 펠로십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먼과 함께 '굿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을 길러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데 열정을 기울여왔다.
그동안 < 열정과 기질 > < 체인징 마인드 > < 마음의 틀 > <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 < 진선미 > 등 29권의 책을 출판했고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근 저서로는 작년 10월 영어로 출간된 < 앱 세대(The App Generation): 오늘날 젊은이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친밀감 그리고 상상력을 펼치는 방식 > 이 있다.
인간의 지능은 그동안 IQ 위주로 단일하게 평가돼 왔지만, 실상은 8가지 다양한 능력으로 이뤄진 다중지능이다. 8가지 지능은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이다.
각각의 지능이 드러나는 정도를 조합하면 개인이 갖는 잠재력과 개성은 무한하다.
가드너 교수가 제시한 8가지 인간 지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뇌과학으로 더욱 풍부하게 증명되고 있다.
사고로 두뇌의 일부가 손상되면서 각각의 지능이 급격히 줄어드는 임상을 봐도 각 지능이 독립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글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 김아람 재미 사진작가 >
http://media.daum.net/series/112574/newsview?newsId=20140127214807240&seriesId=112574
25년 전, 하버드대 교육심리학 교수인 하워드 가드너는 인간의 능력을 가늠하는 단일지능 우대 시스템에 반론을 제기했다. 인간의 두뇌는 8가지 다중지능을 갖고 있다는 이론이다.
그의 이론은 급속히 학계에 퍼졌고, 연구와 임상 그리고 뇌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견고한 틀을 갖추게 되었다. 전 세계 대학과 연구소가 다중지능이론을 존중하며 현실에 적용시켜 나간다. 21세기 들어와서는 대중적으로도 확산됐다. 앞서 2회에서 제러미 리프킨은 21세기를 '공감의 시대'라고 했다. 우리의 지능 가운데 인간 친화 지능과 자기 성찰 지능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며, 사회경제적으로도 교류 양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닥쳐올 위기들 또한 협업을 통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소통과 협력의 시대를 맞아 한국 교육 역시 새로운 시대에 맞는 수업과 평가를 통해 문명의 지속성을 단단히 지켜내야 할 때다. 우리 교육에서 무엇이 미래를 준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하는지 조언을 듣고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를 만났다. 지난 7일 하버드대 그의 연구실에서 나눈 이야기다.
▲ 언어·수리 능력 재는 시험이
"왜 죽나" "왜 싸우나" 같은 사유 능력 측정하진 못해
▲ 제도 안의 '학벌 편견' 문제
남의 평가에 휘둘리지 말고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라
안희경 = 요즘 대학 입시 발표가 나고 있습니다. 결과에 따라 집안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한국은 대학이 마치 교육 레이스의 결승점처럼 됐어요. 대학을 가야 하고, 이름 높은 학교를 가야 남은 인생이 보장된다는 안도감을 얻습니다.
하워드 가드너 = 왜 부모들이 자식을 그렇게도 명문대에 보내고 싶어 할까요? 다른 사람의 자식들이 그곳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적 높은 학생들이 모인 학교에 가면 그들과 어울릴 수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죠. 물론 그 네트워크를 무시할 수는 없어요. 그렇지만 저는 그렇게 시험 점수로 사람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세우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면 똑똑하다고 칭찬할 만한 능력은 성적이 좋은 경우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재능들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어느 특정한 능력에만 찬사를 보내고 미화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학과 언어 능력 중심으로 사람들한테 영광을 얻게 해준 거예요. IQ(지능지수) 검사를 보다 정교하게 보완한 검사 중 하나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치르는 SAT입니다. 한국 시험도 이와 비슷할 거 같은데요. 언어 점수와 수학 점수를 중시하는 일종의 단일지능 위주의 테스트죠. 20세기 산업 패턴에 맞춰진 테스트입니다. 이런 시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를 바로 보는 능력, 예술적인 자질, 창의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매우 필요한 능력인데도요.
안 = 시험 잘 못 봐서 기죽고 머리 나쁘다 실망하고, 또 IQ 낮아 열등감에 빠졌던 시간들이 결국은 단일지능 중심으로 만들어진 제도 때문에 자기비하를 한 거였군요. 억울해집니다.
가드너 = 본인의 IQ를 압니까? 저는 모릅니다. 미국에서는 다들 몰라요. 안다 해도 IQ를 대화에 거론하는 일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을 평가틀로 끼워넣는 거니까요.
안 = 인종차별처럼 통용되는군요. 우리의 경우는 '머리가 좋다'는 표현이 대화에서 자주 오고갑니다.
가드너 = 그렇다고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IQ 테스트가 그 사람의 미래를 잘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에 초점을 둬서 검사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조건들을 더해서 검사를 하면 예측성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사람의 미래를 뭐라 예측한다는 것이 참 부질없음을 알게 하죠. 성적이 좋으니까 법대 가면 잘할 거라는 기대감도 IQ 위주로 평가해서 나온 건데, 법은 논리와 언어 능력이 동등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수학 잘한다고 법대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는 틀린 겁니다. 의사도 그렇습니다. 과학과 의학에다 환자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환자의 얼굴을 보며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은 IQ가 아니라 인간 친화 지능에 더 가깝죠. 바로 이 인간적 교감 때문에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고요. 누가 훌륭한 판매능력을 갖춘 마케터인지 알려면 시험 성적에 중점을 두면 안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한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니까요. 또 새로 발명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때는 그 어떤 시험도 미리 줄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안 = 성적 좋은 학생을 칭찬할 때는 학습 능력뿐 아니라 그 성실함까지 높이 사서 그런 건데요. 이도 특정한 재능과 연결되어 있기에 그런 이들이 조금 쉽게 참아낼 수 있었겠다 싶습니다.
가드너 = 여러 사람이 평가받는 시험은 우선 치르기 편리해야 합니다. 그래서 과거부터 언어·수리 능력 위주로 출제해온 겁니다. 그런 시험지에는 큰 질문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죽는가'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싸우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천 년 넘게 흐르는 긴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사유하는 질문들은 답하는 데도, 점수를 주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쉽게 몰두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있습니다. 실존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이라고 논문을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런 큰 질문들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때로는 문학으로 승화되죠. 이런 능력은 테스트로 알 수 없죠. 수리능력, 언어능력이 독창성, 창의력, 공감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됩니다. 21세기는 협력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요. 이것도 우리가 종이에다 연필로 적어서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죠.
▲ 대부분 아이들이 학원 가는 한국 교육의 현재 상황은
매우 심각한 병리적 증상
▲ 한국서 다중지능이론 인기
아이의 흥미·자질 측정 아닌 8가지 지능 개발로 왜곡돼
안 = 이달 초 한국 언론에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진행한 '노동시장 선호와 선별에 기반한 입시체제의 분석과 평가' 보도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학벌에 따라 받는 차별이 성별이나 연령, 출신지보다 큰 것으로 나타났어요. 같은 대졸자라도 출신 대학에 따라 임금, 승진, 조직 내 관계에서 차별을 경험했는데 그 비율이 50%에 육박합니다.
가드너 = 엘리트 학교를 다녔고 지금도 엘리트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기 때문에 제가 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이 맞춤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한마디하고 싶은데요. 남들이 나를 어떻게 보는가에 연연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보다 나의 목표, 나의 능력을 들여다보고 스스로 평가하는 겁니다. 남의 평가에 위축되는 분위기가 참 슬퍼요. 저는 아이가 넷인데 평판이 좋기를 바라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이 어떤 중요한 사람을 만났는데 그 자리에서 주목받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시무룩해지면 이렇게 말해줍니다. "애야, 너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사람의 문제란다." 한국의 제도 안에 있는 학벌에 대한 편견이 문제입니다. 그 때문에 당하는 불이익, 몹쓸 일이죠. 그래도 우리 눈으로 스스로를 진단해야 해요. 미스터 김이, 미스 박이 생각하는 대로 휘둘리면 안됩니다. 이럴 때 제도의 협조가 있다면 상황이 훨씬 쉬워질 겁니다.
안 = 사회 제도를 바꾸느냐 교육 제도를 바꾸느냐,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는 문제라기보다 두 가지 모두 아우르면서 편견을 깨는 인식의 확장이 이뤄져야겠습니다.
가드너 = 내가 매우 관심을 기울이는 두 개의 사회가 있어요. 핀란드와 이탈리아 북부입니다. 이곳은 중국이나 싱가포르보다 훨씬 균형감을 갖추고 있죠.
안 = 두 곳 모두 경쟁보다 협력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네요. 이탈리아 북부는 협동조합에서 태동한 레지오 아밀리아 교육을 떠올리게 합니다. 핀란드는 교육 이전에 복지와 부의 분배가 어느 선진국보다 잘된 곳이고요. 평등한 사회가 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기회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가드너 = 그렇죠. 내가 투표장에 가서 선거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겁니다. 걱정만 늘어놓을 것인지 바꿀 것인지 여러분이 결정해야 합니다. 제도를 바꾸고 싶다면 나서야죠. 출마도 하고 선거운동도 해서 도전하는 겁니다. 한국의 지도자들이 모두 명문대를 나왔다면 국민한테 아주 특별한 메시지를 주는 겁니다. 모두 좁은 구멍 속으로 자식을 밀어넣게 만들 거예요. 정부 요직에 있는 이들이 모두 같은 대학 동창생이라면 한국 사회의 긴장은 느슨해질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서로 다른 학교를 나온 남녀가 정부 부처에 모여 뜻을 펼친다면, 사회로 퍼지는 의미는 확연하게 달라집니다.
안 = 협력을 깨는 것은 누군가 이윤을 독식할 때입니다. 교실 속 문제도 결국은 민주주의를 지켜내는 것이 관건인 것 같습니다.
가드너 = 사회가 더욱 다양성과 다원적인 문화를 가질 때 서로 살아남고자 발버둥치는 싸움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한국이야말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회가 됐는데 "긴장 풀자"고 여유 좀 부려도 되지 않나요? 이제는 돌볼 때입니다. 제가 묻고 싶은 질문이 있는데요. 한국에서 저의 다중지능이론이 인기가 많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가요?
안 = 중국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같습니다.
가드너 = (웃음) 아이의 흥미와 자질을 알아보려고 이용하기보다 8가지 지능을 다 개발하겠다고 욕심을 부리는군요.
안 = 본뜻과는 다르게 입시 경쟁, 출세 경쟁에서 남보다 뛰어나도록 키우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그만큼 사교육 시장이 커져서 그런데요. 유아교육 시장에서 특히 강조되고 있죠.
가드너 = 정말로 사회 구조를 바꾸고 싶다면 부모를 먼저 교육시켜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들은 모두 다른 자질을 갖고 있고 그 다양한 능력이 존중받도록 지켜줘야 한다고 인식할 때 사회가 변하기 시작합니다.
안 = 모든 부모들은 아이들이 고생하지 않고 잘살기를 바랍니다.
가드너 = 물론이죠. 단, 무엇이 잘사는 삶인가 물어야 해요. 편안하려면 돈이 충분히 있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일단 돈을 갖게 되면 금방 불행해져요. 늘 다른 사람이 더 많이 갖고 있는 걸 알게 되니까요. 많은 연구 결과가 그래요. 행복의 의미가 무얼까요? 저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생산적일 때, 그리고 다른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도울 때라고 생각합니다. 스스로 행복해지는 방법을 찾는 삶이 잘사는 것 아닐까요?
가드너 = 나는 학교가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이들 주변에 있는 어른들이 해야 합니다. 어른들이 자기 일을 즐기고, 조금 더 나아지려 애쓰고, 또 서로 나누며 기뻐한다면, 그 모습을 보고 자라는 아이의 미래가 또 그렇게 될 겁니다. 아이들은 부모가 하는 말을 절대로 듣지 않습니다. 다만 부모가 하는 행동을 봅니다. 부모가 "나는 정말이지 네가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하면서 돈에 더 관심을 가지면, 아이는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돈이구나'라고 배워요.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어른들이야말로 가장 많이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책에서 뭐라고 하는가와 상관없이 아이들은 자기가 보는 어른의 모습으로 자랍니다.
안 =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어른들 말씀이 생각납니다. 한밤에 우는 아기를 염려하고 뛰어노는 아이들의 안전을 살피는 마을이라면 그곳에서 자라는 아이는 느긋하고 너그럽겠죠. 그런데 한국의 어린이들은 바쁩니다. 지금 방학인데도 학원 가느라 놀 틈이 없습니다. 다들 선행학습을 하기에 미리 배우고 학년에 올라가야 뒤처지지 않는다는 조바심이 있어요.
가드너 = 솔직히 말하면, 제게는 매우 병적 증상으로 들립니다. 아이들한테서 어린 시절을 빼앗는 강도짓이에요. 더 좋은 성적을 내라고 몰아치는 건데 그 시험은 어떤 누군가가 만든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이 다들 그렇게 해야 하는가 보다 생각한다면, 이건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쥐가 된 겁니다. 거기에서 꼼짝 못하고 계속 달리고 있는 거예요. 틀에 갇혔어요. 내가 만약 한국에서 연구하는 연구자라면 이렇게 외칠 겁니다. "좋아, 이제 그런 시험은 없어. 다 걷어내는 거야." 그럼 큰 변화가 일어납니다. 아이들에게 또 어른들에게도 자기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 발견하도록 기회를 줄 겁니다. 그런 시험 없이 우리는 훨씬 더 잘 해나갈 수 있어요. 그리고 모든 8살짜리가 같은 수학을 배운다는 것은 옳지 않아요. 사람마다 수리능력이 다르니까요. 어떤 8살 아이는 10살이 배우는 걸 해볼 만합니다. 그럼 기회를 줘야죠. 하지만 대부분 아이들이 방과후에 학원으로 간다는 것은 병리학적 신호입니다. 알아차려야 합니다.
안 = 미래를 위해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가드너 = 이야기 하나 해줄게요. 일 년 전이었어요. 한 학생이 찾아와서 말하더군요. "저는 왜 학교가 필요한지 더 이상 모르겠습니다. 모든 질문의 답은 이 스마트폰 속에 들어 있잖아요." 그래서 학생 말이 맞다고 그랬습니다. 하지만 모든 질문의 답은 아니죠. 한 종류는 없습니다. 바로 우리들 존재에 관한 질문들이죠. 나는 아이들이 자라나서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가정을 이루어 자비로움, 보살핌이 중요하다는 것을 식구들과 나누며 살면 좋겠어요. 세상을 조금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고 애쓰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제가 살아있는 단 한 가지 이유입니다. 저는 지난 20년 동안 '굿 프로젝트'(www.thegoodproject.org) 일을 해왔습니다. 우리는 사람들한테 세 가지 선을 이야기합니다.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이 되자고요. 바른 사람은 당신이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달려가 돕는 사람입니다. 바른 노동자는 훌륭하고 참여적이며 도리에 맞게 살아가면서 공정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며 충만하게 사는 이들이죠. 바른 시민이 되는 것은 규칙과 법을 알고 보살피며 윤리적으로 활동하는 겁니다. 자기만 성장하지 않고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는 거예요. 이 셋을 함께 이룰 수 있다면 바른 사회가 되겠죠. 신자유주의 속에서 돈이 제일이 됐고 세상이 없어질 때까지 그 돈을 쥐려고들 애씁니다. 참으로 멍청할 뿐 아니라 아주 위험합니다. 멍청한 이유는 그 누구도 충분한 돈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고요. 위험한 것은 이 세상에 쓸 수 있는 자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죠. 지혜와 지식을 동원해서 잘 사용해야 합니다. 농작물도 물고기도 광물도 그 양이 정해져 있기에 아끼고 또 공정하게 분배되도록 눈을 부릅떠야 해요. 지금의 엄청난 소유 격차로는 이 세상을 지켜나갈 수가 없습니다. 과학도 수학도 우리를 지켜주지 못합니다. 오직 깨달음뿐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잠재력을 깨닫고 이 세상을 모두와 공유하며 살겠다는 인도적 가치를 깨달아야 생존할 수 있어요. 자유, 정의, 평등에 대해 일어났던 우리 문명의 혁명을 이해하며 편가르기보다 함께하도록 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진실해야 한다고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하워드 가드너(71)는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교육심리학과 교수이자 하버드대 심리학과 겸임 교수이다. 다중지능이론(Multiple Intelligence)의 창시자로, 그의 교육심리 이론은 여러 나라에 도입됐다. 또한 다중지능이론을 교육 현장에서 실천하는 학교와 연구소가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는 하버드대에서 인간의 예술적·창조적 능력의 발달 과정을 분석하는 '프로젝트 제로' 연구소의 책임자로서 20여년간 지능과 창조성, 리더십, 교육방법론, 두뇌개발에 관한 연구 결과를 꾸준히 발표해 왔다. 1981년 맥아더 펠로십, 2000년 구겐하임 펠로십 등 수많은 상을 받았다. 1990년대 중반부터는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윌리엄 데이먼과 함께 '굿 프로젝트' 활동을 하면서 바른 사람, 바른 노동자, 바른 시민을 길러 사회를 변화시켜나가는 데 열정을 기울여왔다.
그동안 < 열정과 기질 > < 체인징 마인드 > < 마음의 틀 > < 다중지능: 인간지능의 새로운 이해 > < 진선미 > 등 29권의 책을 출판했고 32개 언어로 번역되었다. 최근 저서로는 작년 10월 영어로 출간된 < 앱 세대(The App Generation): 오늘날 젊은이들이 디지털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친밀감 그리고 상상력을 펼치는 방식 > 이 있다.
인간의 지능은 그동안 IQ 위주로 단일하게 평가돼 왔지만, 실상은 8가지 다양한 능력으로 이뤄진 다중지능이다. 8가지 지능은 음악지능, 신체운동지능, 논리수학지능, 언어지능, 공간지능, 인간친화지능, 자기성찰지능, 자연친화지능이다.
각각의 지능이 드러나는 정도를 조합하면 개인이 갖는 잠재력과 개성은 무한하다.
가드너 교수가 제시한 8가지 인간 지능은 시간이 지날수록 뇌과학으로 더욱 풍부하게 증명되고 있다.
사고로 두뇌의 일부가 손상되면서 각각의 지능이 급격히 줄어드는 임상을 봐도 각 지능이 독립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글 |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 김아람 재미 사진작가 >
http://media.daum.net/series/112574/newsview?newsId=20140127214807240&seriesId=112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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