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일본과 판박이 .. 한국도 디플레에 갇히나

중앙일보 | 정선언 | 입력 2013.07.10 00:31

 

[일러스트=차준홍 기자] 직장인 김성진(52)씨는 요즘 용돈을 반으로 줄였다. 주 1회 하던 외식은 일절 금지, 택시는커녕 가까운 거리는 버스도 잘 안 탄다. 주말 취미로 하던 테니스도 코트 사용료가 아까워 돈 안 드는 등산으로 바꿨다. 이렇게 해서 월 40만원 선에서 용돈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그의 '내핍생활'은 2006년 아파트를 사면서 시작됐다. 1억5000만원을 대출해 산 용인의 89㎡ 아파트다. 직장 문제로 2년 전 서울로 이주하면서 아파트를 전세 놓게 됐는데 최근 전세 재계약을 하면서 세입자가 대출금 상환을 요구했다. 전세금도 1000만원 올려 받았지만 아파트 값이 떨어지면서 근저당 설정비율에 맞춰 대출 2000만원을 상환해야 했다. 김씨는 금리가 6.6%인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받았다. 그는 "다들 여유가 없다 보니 한 달에 한 번 있는 동창모임도 장소를 술집에서 당구장으로 바꿨다"고 말한다.

 일본 이바라키현에 사는 일본인 아쓰야(55·가명). 그는 1989년 일본주택금융공사로부터 '유토리(융통성) 대출'을 받아 단독주택을 샀다. 전세가 없는 일본의 특성상 집세로 나가는 돈이 적잖이 부담이 됐던 까닭이다. 그는 "당시 5년치 집세 정도면 집을 살 수 있었다"며 "월급도 계속 오를 거라고 생각했고 부동산도 사 놓으면 오를 줄 알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90년대 들어 버블붕괴로 자산가격이 급락하면서 일본은 장기불황에 빠졌고, 그는 월 15만 엔을 버는 비정규직으로 전락했다. 집을 처분했지만 대출금은 1500만 엔이 남았다. 그의 내핍생활은 20년 넘게 계속 중이다.

아파트값 하락+가계 빚 증가+저성장

 

 

최근 국내 경제상황이 일본 장기침체의 시발점이 됐던 초기 국면과 매우 흡사하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저성장과 자산가격 하락에 이어 이번엔 디플레이션 논란까지 불거졌다. 최근 통계청은 우리나라 소비자물가가 8개월째 1%대 상승에 머물고 있다고 밝혔다. 2011년 4%를 웃돌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지난해 2.19%로 뚝 떨어지더니 올 들어 6월까지는 1.3%대에 머물고 있다.

 이런 물가 안정세는 팍팍한 서민 살림살이에 도움이 되는 반가운 소식이다. 더구나 최근 물가 안정의 원인이 국제유가 하락과 농산물 작황 호조라는 점에서 나쁜 소식이라고 볼 순 없다. 김보경 통계청 물가동향과장은 "품목별로 보면 국제유가 하락으로 석유류 가격이 지난해보다 5.1% 하락했고 기상 호조로 농산물(-2.2%)과 축산물(-5.1%) 값이 떨어졌다"며 "공급 요인이 작용한 물가 하락은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올해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정책이 시행되면서 학교 급식비(-11.3%), 보육시설 이용료(-23.2%)가 전년보다 크게 줄었다.

 이대희 기획재정부 물가정책과장도 "경기 전망과 지출 계획 등을 반영하는 소비자태도지수를 보면 지난해 2분기(43.6) 이후 꾸준히 상승해 2013년 2분기 현재 47.3 수준까지 올라섰다"며 "소비자들의 향후 1년간 물가 상승 예상 수준을 보여 주는 기대 인플레이션율도 2.9%나 돼 (디플레이션을) 우려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하지만 물가 하락을 반갑게만 볼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물가 안정이 '부동산 값 하락과 가계부채 증가, 저성장' 등 이른바 3각 파도와 함께 왔기 때문이다.

 조인스랜드에 따르면 2011년 6월 이후 우리나라 수도권 아파트 매매가는 36개월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가구당 부채는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2010년 이후 매년 증가세다. 한국은행은 올 3월 말 기준으로 가계부채가 961조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한다. 오정근 아시아금융학회장은 "최근의 물가 안정은 부동산 값 하락과 하우스푸어 등장과 연결되는 수요 부족의 징후가 많이 보이고 있다"며 "한국 경제는 이제 본격적으로 일본식 디플레를 걱정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고령화에 청년실업 … 소비 위축돼

 디플레이션은 일본의 2000년대 저성장의 핵심 요인으로 꼽힐 만큼 경제에는 암적인 존재다. 디플레이션이 예상되면 기업들은 투자를 해 봐야 생산한 제품 값이 하락해 수익성이 나빠질 것으로 보기 때문에 투자를 미룬다. 가계도 물가가 떨어지는 상황에서 되도록 소비를 늦추게 된다. 결국 소비와 투자가 동시에 위축되면서 물가 하락 압력이 더 커지는 악순환에 빠진다. 디플레이션은 자산가격을 통해서도 또 다른 악순환을 만든다. 버냉키의 부채 디플레이션 이론에 따르면 디플레는 채무자들의 부담을 높이기 때문에 채무자들이 자산 매각에 나서게 되면서 자산가격 하락과 수요 위축을 촉발한다. 최근 일본이 아베노믹스의 핵심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율을 높이겠다'는 것을 꼽고 있는 것만 봐도 디플레가 가져올 위험성을 짐작할 수 있다.

 구조적 내수 부진 요인이 심화되고 있다는 점도 디플레이션 우려를 키우는 요소다. 지난해 우리나라 가계의 평균 소비성향은 74.1%를 기록해 2010년(77.3%)에 빠른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소비성향 저하는 경기 부진에 따른 일시적 요인보다는 인구 비중 변화에 따른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은 "인구 구조상 50대 이상 고령층이 내수 소비를 주도해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공적 연금 보장이 부족하고, 자녀 교육비 등으로 노후 대비가 부족하다"며 "부동산 가격 하락과 저금리에 직면한 50대의 소비 위축은 우리 경제에 장기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정부 "물가 상승 예상치 높아 괜찮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수요 부진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정부도 인플레이션보다는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계를 본격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버블붕괴 초기 정책적 대응을 잘못해 20년 장기불황에 빠진 일본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는 얘기다. 유신익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일본은 80년대 중반 저금리로 자산버블을 부추겼으면서도 경기 침체기에는 반대로 금융완화에 소극적이었고, 부실 금융회사의 구조조정까지 미루면서 화를 키웠다"며 "우리도 일본의 디플레이션 초기 상황에 대한 많은 연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LG경제연구원 이근평 연구원은 "최근 추세를 보면 우리나라도 일본 같은 제로 성장에 도달할 것이라는 우려를 무시할 수 없다"며 "특히 일본이 앞서 겪은 고령화에 따른 청년실업이나 수요 부족에 따른 디플레이션 등은 우리가 잘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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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本을 보면 '한국 펀드 흐름' 보인다

일본과 닮아가는 펀드시장 조선비즈 | 천대중 수석연구원 | 입력 2013.07.10 03:02
    이제 막 펀드 저성장 시대에 들어선 우리나라 펀드 시장이 가장 참고할 만한 것은 일본의 펀드 시장이다.

    1990년대 버블(거품) 붕괴와 더불어 장기 침체에 들어간 일본 경제와 마찬가지로 일본 펀드시장도 1990년대에 '잃어버린 10년'을 겪었다.

    1989년 58조6000억엔이었던 펀드 수탁고(공모 기준)는 10년 가까이 지나면서 30% 정도 줄어들어 1997년 40조6000억엔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 비중도 38.4%에서 11.8%로 축소됐다.

     

     

    일본은 2000년대 들어 경기가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면서 펀드 시장이 다시 성장세로 돌아선다. 그런데 이 시기 펀드시장의 움직임은 1990년대 버블 붕괴 이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구조적 변화를 보여준다.

    우선 펀드 수탁고의 성장세가 크게 둔화했다. '펀드 고속 성장' 시대에서 '펀드 중속 성장' 시대로 바뀐 것이다. 펀드 수탁고 증가율은 버블 붕괴 이전(1985~ 1989년) 연평균 30.9%에서 2000년대(2000~2007년)에는 연평균 7.1%로 크게 하락했다.

    수탁고 성장세가 감속한 것보다 중요한 변화는 투자 성향 변화로 인해 펀드 포트폴리오가 크게 바뀌었다는 점이다. 초저금리 상황이 지속하면서 국내 안전자산 투자만으로는 적절한 수익을 내기가 어려워지면서 해외 채권형 펀드와 멀티에셋펀드 등의 중위험·중수익 펀드에 대한 투자가 증가하게 됐다.

    2000년 이후 일본의 경험을 살펴보면, 일본 펀드시장의 트렌드 변화가 시차를 두고 우리나라에 그대로 반영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우리 펀드시장에 소개되기 시작한 대표적인 은퇴 관련 펀드인 월지급식 펀드는 일본 시장에서는 이미 2000년부터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일본은 2001년 1조2000억엔에 불과했던 월지급식 펀드 수탁고가 2011년 33조2000억엔 수준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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