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독립성 점검)①흔들리는 중앙은행 대통령부터 관료까지 통화정책에 `직설적`으로 방향제시
해외 IB "4월부터는 한국은행 통화정책 청와대가 이끌 듯" 입력 : 2010.03.12 11:52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은행이 중립적이고 독립적으로 통화정책을 운영하고 있느냐를 두고 다시금 논란이 일고 있다. 여타 국가들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드물지 않게 보고돼 왔다. 한국은행의 중립성과 독립성 문제는 과거 정부때부터 계속돼온 논란거리로, 과도한 수준으로 급증한 가계부채나 자산시장의 거품 이슈와도 맞물려 있다. 이데일리는 정부정책과의 조화, 해외 주요국과의 정책공조를 명분으로 다시금 심화되고 있는 한국은행의 독립성 훼손 논란을 다각도로 점검하고 새 방향을 제시해본다. [편집자]
지난 1월8일 오전 8시35분.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태운 승용차가 피켓시위중인 수십명의 한국은행 노조원들과 취재진에 둘러쌓인채 한국은행 본점 정문을 통과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으로 올라가 맨 끝자리에 앉은 허 차관은 "한은과 금통위의 독립성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이번 열석발언권 행사는 한은과의 소통 강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은을 지극히 배려한 표현이긴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날 허 차관의 금통위 참석과 회의전 발언은 한은 독립성을 뒤흔드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 해묵은 `정부와의 동거`
그리고 마침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 동결이라는 결론을 내놓자 월스트리트저널은 "한은이 정부 개입에 굴복했다"며 한은이 정부의 도우미(helper)가 됐다고 비판했다.
열석발언권 행사는 `이젠 떨쳐냈거니` 했던 과거를 한은 사람들에게서 다시 들춰내는 일이었다. "한은이 과거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고 불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한 직원의 푸념이 그것이다.
불편한 과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외환위기 이후 금통위 의장이 재정경제원 장관에서 한은 총재로 바뀌었지만, 독립적인 통화정책 수행은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지난 2002년 6월. 한국은행이 총액한도대출을 축소하기 위해 의안까지 만들어 배포했다가 `모처`에서 걸려온 전화에 포기했던 일은 당시 이성태 부총재가 국회에서 증언한 대표적 개입 사례였다. (관련기사 : 2002년 한국은행에서는 무슨 일이... )
◇ `사공`이 너무 많은 통화정책
정부와 한은, 거시경제정책과 통화정책 간 거리 좁히기를 긴밀한 정책공조로 볼 수도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런 공조는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권장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다만 문제는 현 정권 들어 대통령부터 정부관료들까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시때때로 통화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있다. `정부정책과의 조화`를 넘어 통화정책의 주객 자체가 전도되는 모양새에 대해 시장은 '정부의 압력행사'라는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던 지난해 9월부터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 한 자리씩 하는 정부관료들이라면 누구나 출구전략이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지금은 안된다`는 식의 얘기를 쏟아냈다.
이성태 한은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해 9월과 12월 직전에 특히 이같은 일이 잦았는데, 한은 내부에서는 "이 총재의 수위가 높아진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코멘트로 시장심리가 한쪽으로 쏠린 것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너나없이 사공을 자처한 탓에 한은과 시장은 그만큼 혼란스러웠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지난 8일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사흘 앞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관련기사 : 윤증현 장관 "금리정책 관련해 부연 설명하자면…" )
◇ `중앙은행 DNA`는 사라지나?
우려는 다음달 이후 꾸려질 차기 금통위를 감안할 때 더 커지고 있다.
3월말에는 이성태 총재, 4월에는 박봉흠, 심훈 등 금통위원 2명이 임기를 마친다. 특히 한은 출신으로 금통위 내 대표적 매파성향 인물로 분류돼 온 이 총재와 심 위원의 교체는 향후 금통위 역학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이 총재 후임에는 어윤대 국가브랜드관리위원장,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보,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중수 OECD대사,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박영철 고려대 교수 등 소위 `친(親) MB` 성향의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다. 은행연합회 추천인 심 위원 후임도 친 정부 인사가 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HSBC는 최근 보고서에서 "4월 교체되는 금통위원 3명중 둘이 한은 내부출신이었던 만큼 이들 교체 이후 금통위는 대체로 비둘기파적인 스탠스로 분명하게 돌아설 것 같다"고 점쳤다. 심지어 ING는 "4월부터 통화정책은 사실상 청와대가 이끌어갈 것 같다"고까지 했다.
한은 내부에서 말하는 `중앙은행 DNA`가 금통위에서 사실상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외부에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금통위와 위원들의 권한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임명권자나 추천기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은 현실인 만큼 실제 어떻게 운영될지는 지켜봐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지난 1월8일 오전 8시35분. 허경욱 기획재정부 제1차관을 태운 승용차가 피켓시위중인 수십명의 한국은행 노조원들과 취재진에 둘러쌓인채 한국은행 본점 정문을 통과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15층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장으로 올라가 맨 끝자리에 앉은 허 차관은 "한은과 금통위의 독립성에는 추호의 의심도 없다. 이번 열석발언권 행사는 한은과의 소통 강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은을 지극히 배려한 표현이긴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날 허 차관의 금통위 참석과 회의전 발언은 한은 독립성을 뒤흔드는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되고 말았다.
◇ 해묵은 `정부와의 동거`
그리고 마침 이날 금통위가 기준금리 동결이라는 결론을 내놓자 월스트리트저널은 "한은이 정부 개입에 굴복했다"며 한은이 정부의 도우미(helper)가 됐다고 비판했다.
열석발언권 행사는 `이젠 떨쳐냈거니` 했던 과거를 한은 사람들에게서 다시 들춰내는 일이었다. "한은이 과거 `재무부의 남대문 출장소`라고 불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는 한 직원의 푸념이 그것이다.
불편한 과거는 오래전부터 있어왔다. 외환위기 이후 금통위 의장이 재정경제원 장관에서 한은 총재로 바뀌었지만, 독립적인 통화정책 수행은 요원한 일처럼 보였다.
지난 2002년 6월. 한국은행이 총액한도대출을 축소하기 위해 의안까지 만들어 배포했다가 `모처`에서 걸려온 전화에 포기했던 일은 당시 이성태 부총재가 국회에서 증언한 대표적 개입 사례였다. (관련기사 : 2002년 한국은행에서는 무슨 일이... )
◇ `사공`이 너무 많은 통화정책
정부와 한은, 거시경제정책과 통화정책 간 거리 좁히기를 긴밀한 정책공조로 볼 수도 있다. 특히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이런 공조는 오히려 전세계적으로 권장되는 분위기이기도 했다.
|
다만 문제는 현 정권 들어 대통령부터 정부관료들까지 공개적인 자리에서 시시때때로 통화정책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데 있다. `정부정책과의 조화`를 넘어 통화정책의 주객 자체가 전도되는 모양새에 대해 시장은 '정부의 압력행사'라는데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한은이 기준금리 인상 필요성을 집중적으로 검토하던 지난해 9월부터 대통령은 물론이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기획재정부 장관, 금융위원장 등 한 자리씩 하는 정부관료들이라면 누구나 출구전략이나 기준금리 인상에 대해 `지금은 안된다`는 식의 얘기를 쏟아냈다.
이성태 한은 총재의 매파적 발언이 정점에 이르렀던 지난해 9월과 12월 직전에 특히 이같은 일이 잦았는데, 한은 내부에서는 "이 총재의 수위가 높아진 것은 정부 관계자들의 코멘트로 시장심리가 한쪽으로 쏠린 것을 바로 잡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너나없이 사공을 자처한 탓에 한은과 시장은 그만큼 혼란스러웠다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지난 8일 기획재정부 장관은 금융통화위원회를 사흘 앞둔 상황에서 다시 한 번 쐐기를 박았다. (관련기사 : 윤증현 장관 "금리정책 관련해 부연 설명하자면…" )
◇ `중앙은행 DNA`는 사라지나?
우려는 다음달 이후 꾸려질 차기 금통위를 감안할 때 더 커지고 있다.
3월말에는 이성태 총재, 4월에는 박봉흠, 심훈 등 금통위원 2명이 임기를 마친다. 특히 한은 출신으로 금통위 내 대표적 매파성향 인물로 분류돼 온 이 총재와 심 위원의 교체는 향후 금통위 역학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될 전망이다.
이 총재 후임에는 어윤대 국가브랜드관리위원장, 강만수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대통령 경제특보,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김중수 OECD대사, 김종창 금융감독원장, 박영철 고려대 교수 등 소위 `친(親) MB` 성향의 인물들이 거론되고 있다. 은행연합회 추천인 심 위원 후임도 친 정부 인사가 올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렇다보니 HSBC는 최근 보고서에서 "4월 교체되는 금통위원 3명중 둘이 한은 내부출신이었던 만큼 이들 교체 이후 금통위는 대체로 비둘기파적인 스탠스로 분명하게 돌아설 것 같다"고 점쳤다. 심지어 ING는 "4월부터 통화정책은 사실상 청와대가 이끌어갈 것 같다"고까지 했다.
한은 내부에서 말하는 `중앙은행 DNA`가 금통위에서 사실상 사라질 지도 모른다는 얘기다.
한은 관계자는 "외부에서 느끼든 느끼지 못하든 금통위와 위원들의 권한이 강화된 것은 사실이지만 임명권자나 추천기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 않은 것은 현실인 만큼 실제 어떻게 운영될지는 지켜봐야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한은 독립성 점검)②이성태 총재의 증언 총액대출 축소-금리인하 무산..`2002년의 기억들`
금통위 합의제 어려움도 호소 입력 : 2010.03.12 11:52
금통위 합의제 어려움도 호소 입력 : 2010.03.12 11:52
[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지금 금통위에서 금리를) 내리는 것은 아주 쉽게 통과되는데 올리는 것은 도저히 안된다. (중략) 작년 6월에 총액대출한도를 2조 정도 줄이려고 총재님하고 다 얘기해서 의안을 만들어 배포까지 했는데, 모처에서 `총액한도를 줄이고 그럴 때가 아니다`, 세 사람이 실제로 전화를 받았다. (중략) 제가 총재님이 전화 받는 것을 바로 옆에서 작년에 한 번 들은 적이 있다."
이달말이면 42년여의 한국은행 일을 마치고 떠나게 되는 이성태 총재는 부총재로 있던 지난 2003년 6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이같은 `폭탄발언`을 내놓았다.
<이 기사는 12일 오전 11시46분 실시간 금융경제 뉴스 터미널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및 이데일리 유료뉴스인 `마켓프리미엄`에 출고된 것입니다.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또는 마켓프리미엄을 이용하시면 이데일리의 고급기사를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긴축조치가 외압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음을 고발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부총재가 술회한 2002년 당시는 집값 폭등에 분노한 서민들이 한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금리를 인상하라"는 글로 도배하던 때였다. 그해 5월 25bp 금리 인상을 단행한 한은은 추가 인상을 시도했다.
"경제안정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한은으로서는 물가 뿐 아니라 국제수지와 자산가치 안정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금리수준은 균형수준 보다 낮아 경기진작적이며,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는 한은의 저금리정책에 따른 가계대출 급증이 원인이다." (2002년 9월,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
그러나 그달 12일. 금통위가 열리기 1시간 전 한은의 긴축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던 당시 전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현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국민과 기업에게 심리적인 패닉을 줄 수도 있다"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곤 다시 한 달 뒤 열린 금통위는 정회후 속개되는 진통끝에 회의는 한 시간 가량 늦게 끝났다. 결과는 금리 동결이었지만 "당초 25bp 금리인상을 단행키로 하고 총재와 금통위원들간에 얘기가 다 돼서 의안까지 만들었는데 한은 바깥의 압력성 전화로 무산됐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과거 국회에서처럼 직설적이진 않지만, 이성태 총재는 최근에도 금통위에서의 금리인상 결정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속내를 자주 드러내곤 했다.
"정책은 시점을 잡는게 결정적으로 중요할 때가 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이랄까 그런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중략) 특히 한은은 최고의사결정이 합의제 기구이기 때문에, 약점과 강점을 잘 이해하고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는 분들이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
지난달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이다. 금리인상 타이밍을 잘 파악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인상할 수 있는 결단력이라며 자조섞인 얘기이기도 하다.
한 달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11년만에 첫 열석발언권을 행사한 금통위를 마치고는 "금리 결정은 금통위원 7명이 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을 봐달라"던 이 총재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어 지난 11일 마지막 금통위를 주재하고 가진 회견에서 "소신이 꺾였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이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통화정책은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주어진 상황과 통계지표도 읽지만 경제주체들의 기대, 금통위들의 기대 , 정부의 생각 모두 포함해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중략) 통화정책하는데 염두에 둬야할 것이 큰 배는 방향전환이 빨리 안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조금씩 움직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는 모르고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 설득과 합의가 쉽지 않다."
이달말이면 42년여의 한국은행 일을 마치고 떠나게 되는 이성태 총재는 부총재로 있던 지난 2003년 6월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 이같은 `폭탄발언`을 내놓았다.
<이 기사는 12일 오전 11시46분 실시간 금융경제 뉴스 터미널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및 이데일리 유료뉴스인 `마켓프리미엄`에 출고된 것입니다. 이데일리 마켓포인트 또는 마켓프리미엄을 이용하시면 이데일리의 고급기사를 미리 보실 수 있습니다.>
금융통화위원회의 긴축조치가 외압에 의해 무산되는 일이 실제 일어나고 있음을 고발한 사건으로 유명하다.
이 부총재가 술회한 2002년 당시는 집값 폭등에 분노한 서민들이 한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금리를 인상하라"는 글로 도배하던 때였다. 그해 5월 25bp 금리 인상을 단행한 한은은 추가 인상을 시도했다.
"경제안정을 기본 사명으로 하는 한은으로서는 물가 뿐 아니라 국제수지와 자산가치 안정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 현재의 금리수준은 균형수준 보다 낮아 경기진작적이며, 지금 현안이 되고 있는 부동산 문제는 한은의 저금리정책에 따른 가계대출 급증이 원인이다." (2002년 9월, 당시 박승 한국은행 총재)
그러나 그달 12일. 금통위가 열리기 1시간 전 한은의 긴축 움직임을 사전에 감지하고 있었던 당시 전윤철 경제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공개석상에서 "현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할 경우 국민과 기업에게 심리적인 패닉을 줄 수도 있다"며 쐐기를 박았다.
그리곤 다시 한 달 뒤 열린 금통위는 정회후 속개되는 진통끝에 회의는 한 시간 가량 늦게 끝났다. 결과는 금리 동결이었지만 "당초 25bp 금리인상을 단행키로 하고 총재와 금통위원들간에 얘기가 다 돼서 의안까지 만들었는데 한은 바깥의 압력성 전화로 무산됐다"는 증언이 잇따랐다.
과거 국회에서처럼 직설적이진 않지만, 이성태 총재는 최근에도 금통위에서의 금리인상 결정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속내를 자주 드러내곤 했다.
"정책은 시점을 잡는게 결정적으로 중요할 때가 있다.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결단력이랄까 그런 것도 상당히 중요하다. (중략) 특히 한은은 최고의사결정이 합의제 기구이기 때문에, 약점과 강점을 잘 이해하고 강점을 살리고 약점을 보완하는 분들이 끌고 나갔으면 좋겠다."
지난달 금통위 기자간담회에서의 발언이다. 금리인상 타이밍을 잘 파악해야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제 인상할 수 있는 결단력이라며 자조섞인 얘기이기도 하다.
한 달 전, 기획재정부 차관이 11년만에 첫 열석발언권을 행사한 금통위를 마치고는 "금리 결정은 금통위원 7명이 하는 것이다. 말보다는 행동을 봐달라"던 이 총재의 자신감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어 지난 11일 마지막 금통위를 주재하고 가진 회견에서 "소신이 꺾였다는 얘기가 있다"는 질문에 이 총재는 이렇게 말했다.
"통화정책은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다. (중략) 주어진 상황과 통계지표도 읽지만 경제주체들의 기대, 금통위들의 기대 , 정부의 생각 모두 포함해 최적의 선택이 무엇인가를 봐야 한다. (중략) 통화정책하는데 염두에 둬야할 것이 큰 배는 방향전환이 빨리 안되기 때문에 미리미리 조금씩 움직이는 게 상당히 중요하다. 그러나 미래는 모르고 사람마다 의견이 달라 설득과 합의가 쉽지 않다."
(한은 독립성 점검)③일본은행의 뼈아픈 기억 플라자합의 후 과도한 완화정책 자산거품 조장
정부의 국제공조론에 발목..일본은행, 정책실기 입력 : 2010.03.12 11:53
정부의 국제공조론에 발목..일본은행, 정책실기 입력 : 2010.03.12 11:53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통화정책의 실기(失期)는 곧잘 버블로 이어지곤 했다. 일본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도 그랬다. 불확실한 경기, 안정된 물가를 이유로 금리인상을 주저했던 중앙은행들은 여지없이 자산가격 거품 문제에 직면했다.
달콤함의 대가는 컸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고, 미국은 전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위기를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플라스틱 버블(카드위기)에 이어 부동산시장 거품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약탈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08년 하반기 전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대듯 양적완화 정책을 폈지만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시장이 지속될 수도 없는 정부의 부양책에 너무 크게 기대고 있다"며 버블에 대한 경고음을 냈다. 폭탄 돌리기 하듯 유동성을 즐기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가 수습되기도 전 각국이 출구전략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출구로 이동하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경제 각부분에 거품이 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 돈을 풀었더니..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일본은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엔화강세를 용인하기로 한 뒤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금리를 크게 낮추는 등 지나친 금융완화를 실시한 것이 버블생성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엔고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일본은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총 13조5000억엔에 이르는 내수부양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기준할인율을 5.0%에서 2.5%로 인하하는 등 금융완화정책을 추진했다.
시중에 풀린 돈은 고스란히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흘러들었다. 플라자합의 이후 1989년까지 니케이 평균주가와 도쿄, 요코하마 등 6대도시 땅값은 3배 이상 급등했다.
거품은 사치품 수요도 조장해 승용차 수입액이 플라자합의 이후 5년만에 7배 증가하고 다이아몬드 수입도 3배 가까이 늘었다. 런던과 뉴욕 경매시장에 재팬머니가 유입되며 해외 명화를 싹쓸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너무 늦었다. 저금리에 취한 기업들은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데 익숙했고, 은행들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늘리는데 주력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2년뒤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급기야 1990년을 전후해 리크루트 스캔들, 이토만 사건 등 기업과 은행,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부패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일본은 경제위기에 손써볼 여지도 없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 20여년전 일본, 지금의 한국..국제공조론, 앵커론
눈여겨볼 부분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다. 일본은 지금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뒤처지는 나라로 꼽힌다. IMF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은 지난 2003년 선진 27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27개국의 평균은 0.70점인데 일본은행은 0.13점을 받았다.
1980년대에도 비슷했다. 일본은행은 1986년 초 일본경제를 불만 붙이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마른 숲(dry woods)`에 비유하며 과도한 완화정책이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듬해 스미다 일본은행 총재가 또다시 금리인상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정부에 의해 번번이 묵살됐다.
일본 정부가 금리인상 불가론을 들고나온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물가가 안정됐고, 당시에도 국제공조 필요성이 일본 정부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6~1988년 1% 미만에 머물러 물가만 보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단계가 아니었다. 여기에 관료들 사이에 미국과의 정책협조론이 팽배해있어 일본은행의 정책변경에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은 일본 경기가 회복궤도에 오른 뒤에도 완화적인 정책이 지속돼야한다며 일본은행을 압박하기도 했는데, 이 때 정부와 언론이 들고나온 논리가 `일본 앵커(anchor)론`이다. 세계 경제의 주도국인 일본이 먼저 금리를 올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공조 등을 이유로 금리인상 시기상조론을 펴고 있는 지금의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 교수는 "`앵커론`으로 저금리를 합리화한 일본과 지금의 한국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한 유사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통화증발과 재정지출에 의한 경기활황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달콤함의 대가는 컸다.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겪었고, 미국은 전세계 경제를 침체에 빠뜨린 서브프라임 위기를 만들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어서 플라스틱 버블(카드위기)에 이어 부동산시장 거품이 서민들의 주머니를 약탈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2008년 하반기 전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헬리콥터로 돈을 뿌려대듯 양적완화 정책을 폈지만 이 같은 정책이 지속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초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誌)는 "시장이 지속될 수도 없는 정부의 부양책에 너무 크게 기대고 있다"며 버블에 대한 경고음을 냈다. 폭탄 돌리기 하듯 유동성을 즐기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무언가 조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기가 수습되기도 전 각국이 출구전략에 관심을 두고 있는 것도 출구로 이동하는 시간이 늦어질수록 경제 각부분에 거품이 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제때 대응하지 못하면 경제 전체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 돈을 풀었더니..일본의 잃어버린 10년
일본은 지난 1985년 플라자합의에서 엔화강세를 용인하기로 한 뒤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금리를 크게 낮추는 등 지나친 금융완화를 실시한 것이 버블생성의 직접적 원인이 됐다.
엔고로 수출경쟁력이 약화된 일본은 1985년부터 1987년까지 총 13조5000억엔에 이르는 내수부양책을 실시하는 동시에 기준할인율을 5.0%에서 2.5%로 인하하는 등 금융완화정책을 추진했다.
|
시중에 풀린 돈은 고스란히 부동산과 주식 등으로 흘러들었다. 플라자합의 이후 1989년까지 니케이 평균주가와 도쿄, 요코하마 등 6대도시 땅값은 3배 이상 급등했다.
거품은 사치품 수요도 조장해 승용차 수입액이 플라자합의 이후 5년만에 7배 증가하고 다이아몬드 수입도 3배 가까이 늘었다. 런던과 뉴욕 경매시장에 재팬머니가 유입되며 해외 명화를 싹쓸이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 금리인상을 단행하며 대응에 나섰지만 너무 늦었다. 저금리에 취한 기업들은 낮은 이자로 돈을 빌려 부동산에 투자하는데 익숙했고, 은행들도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늘리는데 주력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만연했다. 일본의 부동산 가격은 2년뒤까지 상승세를 이어갔다.
급기야 1990년을 전후해 리크루트 스캔들, 이토만 사건 등 기업과 은행, 관료들 사이에 형성된 부패사건이 잇따라 터지면서 일본은 경제위기에 손써볼 여지도 없이 잃어버린 10년이라는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 20여년전 일본, 지금의 한국..국제공조론, 앵커론
눈여겨볼 부분은 정부와 중앙은행의 관계다. 일본은 지금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뒤처지는 나라로 꼽힌다. IMF에 따르면 일본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은 지난 2003년 선진 27개국 가운데 최하위를 기록했다. 27개국의 평균은 0.70점인데 일본은행은 0.13점을 받았다.
|
1980년대에도 비슷했다. 일본은행은 1986년 초 일본경제를 불만 붙이면 활활 타오를 수 있는 `마른 숲(dry woods)`에 비유하며 과도한 완화정책이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듬해 스미다 일본은행 총재가 또다시 금리인상 필요성을 제기했지만, 정부에 의해 번번이 묵살됐다.
일본 정부가 금리인상 불가론을 들고나온 배경은 크게 두가지로 볼 수 있다. 우선 물가가 안정됐고, 당시에도 국제공조 필요성이 일본 정부의 화두로 떠올랐다.
일본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1986~1988년 1% 미만에 머물러 물가만 보면 통화정책으로 대응할 단계가 아니었다. 여기에 관료들 사이에 미국과의 정책협조론이 팽배해있어 일본은행의 정책변경에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미야자와 기이치 대장상은 일본 경기가 회복궤도에 오른 뒤에도 완화적인 정책이 지속돼야한다며 일본은행을 압박하기도 했는데, 이 때 정부와 언론이 들고나온 논리가 `일본 앵커(anchor)론`이다. 세계 경제의 주도국인 일본이 먼저 금리를 올려선 안된다는 것이다.
G20 의장국으로서 국제적 공조 등을 이유로 금리인상 시기상조론을 펴고 있는 지금의 한국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셈이다.
최희갑 아주대 경제학 교수는 "`앵커론`으로 저금리를 합리화한 일본과 지금의 한국상황을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상당한 유사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특히 통화증발과 재정지출에 의한 경기활황은 그 끝이 좋지 않았다는 점에서 걱정스러운 면이 있다"고 우려했다.
(한은 독립성 점검)④美 연준이 코너에 몰린 까닭 한때 추앙받던 그린스펀, FED 독립성 위기 불러
"자산버블은 소관밖" 방치하다 금융규제 권한 흔들 입력 : 2010.03.12 11:53
"자산버블은 소관밖" 방치하다 금융규제 권한 흔들 입력 : 2010.03.12 11:53
[이데일리 이학선 기자] 미국 대형은행들을 벌벌 떨게한 법안을 들고 나온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 위원장은 미국 중앙은행에 `인플레이션 파이터`를 별명을 붙여준 장본인이다.
볼커 위원장은 1979년 연준 의장직에 올라 연 20%가 넘는 고금리 정책을 펴 14%대였던 소비자물가를 2%대로 낮추는 공을 세웠다. 그는 재임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을 비롯해 정부와 재계, 노동계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지만, 성공적으로 물가를 잡아 레이건 행정부의 연임을 가능케 한 인물로 꼽힌다.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사상 최장기 의장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도 전임자인 볼커가 물가안정을 우선해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지금 연준은 위기에 처해있다. 볼커의 혜택을 그린스펀이 봤다면, 이번엔 그린스펀의 실수가 버냉키를 코너로 모는 양상이다.
◇ 흔들리는 연준
미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연준은 미 의회로부터 화폐발행권한을 위임받은 기구에 불과하지만, 통화정책을 펼 때 의회나 정부로부터 간섭받는 일이 매우 드물다.
기본적으로 연준의 조치는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준 이사의 임기가 14년에 달할 정도로 임기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도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정부가 가타부타 언급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저금리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압박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연준이라고 금융위기의 충격을 피해갈 순 없었다. 크리스토퍼 도드 미 상원 금융위원장은 미 연준과 연방예금보험공사 등의 금융감독권한을 따로 떼어내 새로운 감독기구에 통합해야한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최종 통과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연준으로선 권한축소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있다.
심지어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말 워싱턴포스트에 "연준의 은행감독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미국 경제의 안정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 연준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 하원은 지난해말 연준이 미국회계감사원(GAO)으로부터 금융위기 대응조치에 대한 감사를 받도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준은 그간 통화정책과 관련해 GAO의 감사를 받지 않았으나, 앞으로도 이런 예외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 무너진 `그린스펀 독트린`
연준이 외풍에 노출된 것은 자업자득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연준은 그간 자산버블은 사전적으로 인식하기 어렵고, 설사 조기에 알더라도 경기위축 없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이다. 이 경우 중앙은행의 시계에서 자산버블은 주요 고려사항이 아니다. 버블이 터지면 그때서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에 역량을 모을 수밖에 없다.
대표적 사례가 IT버블이 붕괴된 2000년대초(2000~2003년)다. 당시 연준은 6.5%였던 기준금리를 사상최저인 1.0%까지 낮추며 경기부양에 뛰어든다. 때마침 고용없는 회복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물가가 안정돼있어 금리인하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집값 또한 덩달아 뛰는 부작용을 피할 순 없었다.
미국의 주택판매는 2001~2005년 사이 30%가 넘는 급신장세를 보였다. 주택경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4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전년대비 2배 이상 급증하는 등 폭발적 신장세를 보였다.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사람들에게까지 묻지마 대출이 실행되며 잠재적 부실이 양산됐음을 의미한다.
뒤늦게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커져버릴대로 커진 자산가격을 잡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최근 한은을 방문한 연준 관계자는 "모기지대출을 받은 뒤 초기대출상환일에 1000달러를 줘야했던 집이 변동형 페이옵션 모기지의 경우 150달러만 줘도 집을 살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1.00%포인트를 올린다한들 대책이 될 수 있었겠느냐"며 "금리정책으로 집값을 잡는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 연준의 위기, 한은에 불똥튀나
하지만 연준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감독 권한을 갖고 있다. 금리정책의 한계가 있었더라도 규제를 동원해 자산버블을 사전에 예방했더라면 금융위기 충격이 덜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 최근 연준의 독립성이 도마위에 오른 것도 규제라는 칼을 꺼내지 않고 자산버블에 자유방임행태를 보인 것에 대한 제재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한은은 연준과 대비된다. 연준은 규제감독이라는 칼이 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독립성 위기를 불렀다면 한은은 규제감독이라는 칼 자체가 없다. 지난해 한은에 은행에 대한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마련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진 못했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고 얘기하지만 그래서 무방비 상태가 된 것 아니냐"며 "모든게 풀린 상태에선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저금리에 따른 집값상승은 한미 양국의 공통문제였지만, 규제라는 칼을 들고 있는 미 연준과 그렇지 않은 한은을 똑같은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준의 흔들리는 위상은 독립성의 위기에 놓인 한은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준은 그간 전세계 중앙은행의 모델역할을 해왔다.
박창현 한은 조사국 해외조사실 과장은 "금융감독권한이나 투명성 문제 등 연준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미국 경제는 물론 해외 중앙은행의 위상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예컨대 연준이 감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다른 나라도 이와 유사한 정치적 압력이 가해질 수 있어 그 전개과정과 파급효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볼커 위원장은 1979년 연준 의장직에 올라 연 20%가 넘는 고금리 정책을 펴 14%대였던 소비자물가를 2%대로 낮추는 공을 세웠다. 그는 재임 당시 집권당인 공화당을 비롯해 정부와 재계, 노동계 등의 거센 반발에 부딪쳤지만, 성공적으로 물가를 잡아 레이건 행정부의 연임을 가능케 한 인물로 꼽힌다.
앨런 그린스펀이 연준 사상 최장기 의장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도 전임자인 볼커가 물가안정을 우선해 중앙은행의 신뢰성을 높였기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하지만 지금 연준은 위기에 처해있다. 볼커의 혜택을 그린스펀이 봤다면, 이번엔 그린스펀의 실수가 버냉키를 코너로 모는 양상이다.
◇ 흔들리는 연준
미국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높은 편에 속한다. 연준은 미 의회로부터 화폐발행권한을 위임받은 기구에 불과하지만, 통화정책을 펼 때 의회나 정부로부터 간섭받는 일이 매우 드물다.
기본적으로 연준의 조치는 대통령의 재가를 받을 필요가 없고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준 이사의 임기가 14년에 달할 정도로 임기의 안정성을 보장받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지금도 연준의 통화정책에 대해 정부가 가타부타 언급하는 것을 삼가고 있다. 대통령까지 나서 저금리 필요성 등을 언급하며 압박하는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하지만 연준이라고 금융위기의 충격을 피해갈 순 없었다. 크리스토퍼 도드 미 상원 금융위원장은 미 연준과 연방예금보험공사 등의 금융감독권한을 따로 떼어내 새로운 감독기구에 통합해야한다는 법안을 내놓았다. 최종 통과여부는 불확실하지만, 연준으로선 권한축소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해있다.
심지어 버냉키 의장은 지난해 말 워싱턴포스트에 "연준의 은행감독 권한을 제한하는 것은 미국 경제의 안정을 심각하게 저해할 것"이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내기도 했다. 연준의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미 하원은 지난해말 연준이 미국회계감사원(GAO)으로부터 금융위기 대응조치에 대한 감사를 받도록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연준은 그간 통화정책과 관련해 GAO의 감사를 받지 않았으나, 앞으로도 이런 예외가 통할지는 미지수다.
◇ 무너진 `그린스펀 독트린`
연준이 외풍에 노출된 것은 자업자득 성격이 짙다는 평가다.
연준은 그간 자산버블은 사전적으로 인식하기 어렵고, 설사 조기에 알더라도 경기위축 없이 선제적으로 대응하는것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른바 `그린스펀 독트린`이다. 이 경우 중앙은행의 시계에서 자산버블은 주요 고려사항이 아니다. 버블이 터지면 그때서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것에 역량을 모을 수밖에 없다.
|
대표적 사례가 IT버블이 붕괴된 2000년대초(2000~2003년)다. 당시 연준은 6.5%였던 기준금리를 사상최저인 1.0%까지 낮추며 경기부양에 뛰어든다. 때마침 고용없는 회복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들고 물가가 안정돼있어 금리인하에 대한 반발이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집값 또한 덩달아 뛰는 부작용을 피할 순 없었다.
미국의 주택판매는 2001~2005년 사이 30%가 넘는 급신장세를 보였다. 주택경기가 정점으로 치닫던 2004년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전년대비 2배 이상 급증하는 등 폭발적 신장세를 보였다. 상환능력이 의심되는 사람들에게까지 묻지마 대출이 실행되며 잠재적 부실이 양산됐음을 의미한다.
뒤늦게 금리인상에 나섰지만, 커져버릴대로 커진 자산가격을 잡기에는 늦은 감이 있었다.
최근 한은을 방문한 연준 관계자는 "모기지대출을 받은 뒤 초기대출상환일에 1000달러를 줘야했던 집이 변동형 페이옵션 모기지의 경우 150달러만 줘도 집을 살 수 있게 된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1.00%포인트를 올린다한들 대책이 될 수 있었겠느냐"며 "금리정책으로 집값을 잡는데는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 연준의 위기, 한은에 불똥튀나
하지만 연준은 금융기관에 대한 규제감독 권한을 갖고 있다. 금리정책의 한계가 있었더라도 규제를 동원해 자산버블을 사전에 예방했더라면 금융위기 충격이 덜했을 가능성이 있었던 것. 최근 연준의 독립성이 도마위에 오른 것도 규제라는 칼을 꺼내지 않고 자산버블에 자유방임행태를 보인 것에 대한 제재로 볼 수 있다.
이 점에서 한은은 연준과 대비된다. 연준은 규제감독이라는 칼이 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독립성 위기를 불렀다면 한은은 규제감독이라는 칼 자체가 없다. 지난해 한은에 은행에 대한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법안이 마련됐지만 국회를 통과하진 못했다.
한은 고위관계자는 "규제는 적을수록 좋다고 얘기하지만 그래서 무방비 상태가 된 것 아니냐"며 "모든게 풀린 상태에선 중앙은행이 통화정책으로 통제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고 말했다.
저금리에 따른 집값상승은 한미 양국의 공통문제였지만, 규제라는 칼을 들고 있는 미 연준과 그렇지 않은 한은을 똑같은 잣대로 바라보는 것은 곤란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연준의 흔들리는 위상은 독립성의 위기에 놓인 한은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연준은 그간 전세계 중앙은행의 모델역할을 해왔다.
박창현 한은 조사국 해외조사실 과장은 "금융감독권한이나 투명성 문제 등 연준의 위상을 둘러싼 논의가 미국 경제는 물론 해외 중앙은행의 위상변화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예컨대 연준이 감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다른 나라도 이와 유사한 정치적 압력이 가해질 수 있어 그 전개과정과 파급효과를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상생활관련 > 신문기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재투자 안해요" 심상찮은 펀드런 한국일보 | 입력 2010.04.11 22:47 (0) | 2010.04.12 |
---|---|
저금리 시대에는 가치주로.. 2010.3.19 (0) | 2010.03.19 |
(투자의맥)산업 사이클과 주식투자 (0) | 2010.03.01 |
그리스 불안에 웃음 짓는 글로벌 IB들 2010.02.26 14:26 (0) | 2010.02.27 |
2010년 국내외 경제전망 (0) | 2010.02.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