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5개국 중앙銀이 푼 돈, 시중銀서 잠잔다

[LG경제硏 글로벌 통화 분석] 본원통화 126% 늘어났지만 통화량은 24% 증가에 그쳐… 한국은 비교적 상황 양호한편 기업·개인이 투자·소비 안해 엄청난 돈 은행금고에 그대로… 뒤늦게 급격한 인플레 가능성 조선비즈 | 김태근 기자 | 입력 2012.09.19 03:13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시중에 풀어도 시중에 돈이 돌지 않는 '돈맥경화' 현상이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심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LG경제연구원은 18일 발간한 '글로벌 통화공급 확대' 보고서에서 "미국·유로존·영국·일본·캐나다 등 주요 5개 중앙은행의 본원통화와 통화량(M2)〈키워드 참조〉을 분석한 결과, 올 7월 말 현재 5개 중앙은행이 공급한 본원통화는 2007년 말 대비 126% 늘어난 반면 시중의 통화량은 24% 늘어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숫자로 확인된 글로벌 '돈맥경화'

주요 선진국 중앙은행은 2008년 이후 경기 침체에 대응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0% 가까이 낮췄고, 더 이상 금리를 내리기 어려워지자 최근에는 채권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는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돈이 돌지 않아 정책 의도가 잘 먹히지 않고 있다.

중앙은행이 돈을 시중에 풀면 시중에 유통되는 돈의 총량은 공급된 통화보다 더 많이 늘어난다. 시중은행이 자금을 대출해 주는 과정에서 통화량을 늘리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은행이 본원통화 100원을 공급한다고 하자. 이 돈이 시중은행에 가면 은행은 당장 고객에게 지급할 돈 10~20원을 남기고 나머지 80~90원은 돈이 필요한 기업이나 개인에게 빌려준다. 기업·개인이 빌려간 돈은 몇 차례 손바뀜을 거쳐 다시 은행으로 돌아온다. 은행은 그 돈의 상당 부분을 다시 대출한다. '신용 창조'라고 부르는 이런 과정이 여러 차례 반복되면 본원통화 100원은 시중에 유통되는 돈을 1000~2000원 더 늘리는 효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LG경제연구원의 보고서는 이 같은 돈의 순환 고리가 전 세계적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보여준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유로존·영국·일본·캐나다 등 빅5 중앙은행들의 본원통화 규모는 7월 말 현재 7조165억달러에 달한다. 2007년 말 대비 126% 늘어난 것이다〈그래픽 참조〉.

그러나 실제 통화량은 본원통화가 늘어난 것에 비례해 증가하지 않았다. 7월 말 현재 5개 경제권의 광의 통화량(M2)은 36조4412억달러로 2007년 말 이후 7조1700억달러가량 늘어났다. 2007년 말보다 24% 늘어나는 데 그친 것이다.

돈이 돌지 않는 이유는 기업과 개인들이 경기 침체를 우려해 투자와 소비에 나서지 않고, 대출을 많이 받지 않기 때문이다. LG경제연구원 보고서는 "가계와 기업의 대출 수요가 부진하다. 가계는 빚을 갚느라 여력이 없고, 기업은 불확실성 때문에 몸을 사리고 있다"고 평가했다.

은행들이 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대출에 소극적인 것도 돈이 돌지 않는 원인 중 하나다. 손성원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 채널아일랜드 석좌교수는 "금융 위기 이후 미국 금융기관이 주택 담보대출을 꺼리고 있다"며 "중앙은행이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출 수는 있지만 은행이 돈을 빌려주도록 유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은 "나중에 경기가 회복되는 시점에는 급증한 본원통화가 통화량을 뒤늦게 폭발적으로 늘려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돈맥경화 조짐 안 보여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일까? 한은 본원통화는 2007년 12월 말부터 올해 7월까지 67% 늘어났고, 같은 기간 광의의 통화량(M2)은 41% 늘었다. 우리나라 역시 통화량 증가 폭이 본원통화 증가 폭보다 적지만, 그 격차는 다른 나라보다 크지 않다. 한은 관계자는 "본원통화 증가분 중 상당 부분은 2009년 6월 발행을 시작한 5만원권"이라며 "고액권이라 보유하려는 수요가 많고 돈이 유통되는 속도가 느려 저액권보다 통화량 팽창 효과가 낮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본원통화

중앙은행이 시중에 공급하는 통화를 말한다. 본원통화는 은행을 통해 시중에 풀리는데, 이 돈이 은행 대출과 예금으로 여러 차례 돌고 돌기 때문에 시중에 유통되는 화폐량은 처음 공급된 본원통화량보다 훨씬 더 커진다.

☞광의의 통화량(M2)

일정한 시점에 특정 국가에 풀린 통화의 총량을 보여주는 지표로 한국은행이 매월 집계해 발표한다. 민간이 보유한 현금과 은행 요구불예금 등을 합친 '협의의 통화(M1)'에 정기예금, 정기적금 등 예적금과 양도성예금증서(CD), 환매조건부채권(RP) 등 현금으로 바꾸기 쉬운 금융상품 잔액을 합해 계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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