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한국자본주의 4.0'의 실천전략

조선일보 |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 입력 2011.08.03 23:08

 

무상급식, 대학 반값 등록금 등 포퓰리즘성 복지 담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무상복지 주장의 이론적 근거인 복지보편주의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는 복지가 과연 효과를 극대화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 또 무상복지 담론은 복지 재원 조달에 있어 수익자 부담보다는 일반 조세에 의존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더 많은 조세저항을 불러일으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최근의 복지 담론을 망국적 포퓰리즘이라고 간단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지금의 혼란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양극화라는 도전에 직면한 한국자본주의가 새 모습으로 거듭나기 위한 몸부림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 [조선일보]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

경제평론가 칼레츠키(Kaletsky)는 저서 '자본주의 4.0'에서 서구자본주의의 진화 과정을 네 단계로 설명하면서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 4.0 시대가 시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자본주의 역시 네 단계의 진화 과정을 밟아왔다.

 

한국자본주의 1.0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했으나 이를 구현하지는 못했다.

 

'빈곤으로부터의 탈출'을 목표로 했던 한국자본주의 2.0은 강한 정부와 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는 데 성공했다.

 

정치 민주화로 시작된 한국자본주의 3.0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반을 닦는 계기가 됐으며 IT 강국은 물론 G20 의장국이라는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양극화 현상이 심화됐고 지금은 한국자본주의 4.0의 새 틀을 짜는 시대적 과제를 안고 있다.


서구자본주의와 마찬가지로 한국자본주의 역시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전환기의 징후가 있었다. 1960년을 전후하여 1.0에서 2.0으로 갈 때에는 '못살겠다, 갈아보자'라는 선거 구호에서 보듯이 빈곤의 악순환을 벗어나고자 하는 욕구가 분출됐다. 1980년대 후반에 2.0에서 3.0으로 바뀔 때에는 민주화 시위와 노사 분규의 시련을 겪었고, 3.0에서 4.0으로 변환되는 오늘날에는 복지포퓰리즘 경쟁과 대기업 비판 등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자본주의 4.0의 핵심은 보수적 가치관인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원리'에 진보 성향의 '사회적 연대의식'을 접목시키는 것이다. 자본주의 2.0에서는 정부의 역할이 강조됐지만 자본주의 4.0에서는 기업의 역할이 부각되는 것도 큰 차이점이다.

한국자본주의 4.0의 실천전략은 '지속 가능 경제' '지속 가능 경영' '지속 가능 복지'의 동시 추진이다. '지속 가능 경제'의 요체는 수출과 내수의 균형 유지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자리 창출효과가 큰 건설경기의 연착륙 유도와 서비스산업의 활성화를 위한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대책 마련이 급선무다. 환율정책 역시 수출과 내수가 균형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지속 가능 경영'의 핵심은 기업과 사회 간 상생(相生)체제의 구축이다. 이를 위해서는 경영의 투명성 제고, 이사회의 감시기능 강화, 의사 소통구조의 개선과 자유경쟁적 경영권 승계 과정의 정착 등이 이루어져야 한다. '지속 가능 복지'를 위해서는 복지 사각지대 해소와 더불어 일자리 복지의 기반을 다지는 전달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한국자본주의 4.0에 필요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화와 타협, '사랑 나눔'의 사회문화가 형성돼야 한다. 최근의 복지 담론이 소모적 정쟁(政爭)을 넘어 한국자본주의의 새 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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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4.0] 이젠 '자본주의 4.0'이다

한계 부딪힌 50년 한강의 기적… 다같이 행복한 성장으로 가야

조선일보 | 김덕한 기자 | 입력 2011.08.02 03:12 | 수정 2011.08.02 14:52

 

한국은 현대사의 우등생이다. 세계 최빈국으로 현대사(現代史)의 문을 열고 들어와, 21세기의 문턱을 넘은 지금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한국 자본주의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전(全) 지구적으로 확대된 무한경쟁에서 탈락한 패자(敗者)가 우리 사회 불안 요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비정규직·중소기업·빈민 등 각 분야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소수의 승자(勝者)에게 과실(果實)이 독점돼온, 수출 대기업 중심의 성장 방식도 큰 마찰음을 내기 시작했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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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나갈 것인가. 자본주의는 내부적인 모순을 스스로 치유하면서 성장해왔다. 새로운 도전 역시 수정과 변용을 거쳐 뚫고 나가야 한다. 주체는 자본주의의 키(key) 플레이어, 시장과 기업이 돼야 할 것이다. 기업이 승자독식의 먹이사슬을 끊고, 키 높은 침엽수에서부터 바닥의 이끼까지 모두 제 역할을 하는 공생(共生)의 숲처럼 새로운 자본주의를 열어가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 닥친 도전을 뚫고 나갈 '자본주의 4.0'을 모색해본다.


A자동차 조립라인의 김영석(38·가명)씨는 커튼 뒤에서 일한다. A자동차에서 작업 일부를 도급받는 사내 하청 업체 소속, 이른바 '사내하도급' 근로자이기 때문이다. 커튼 앞에는 정규직들이 있다. 김씨는 "저 커튼이 내겐 넘을 수 없는 장벽 같다"고 말했다.

한국 자동차 업계는 사상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지만 김씨는 늘 불안하다. A자동차가 김씨가 소속된 하도급 회사와 용역계약만 해지해 버리면 그는 실업자가 된다. 김씨는 "완성차 업체들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다는 기사를 보면 나만 손해를 보고 있는 것 같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의 초고속·압축성장은 수출 위주의 경제가 엔진 역할을 하면서 대기업이 이끌었다.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이룬 한국식 자본주의였다. 하지만 이제 '국가대표 브랜드'로 성장해 세계 시장을 누비는 한국 대표 기업들을 내 일처럼 응원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김씨의 사례는 고속 질주해온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일자리가 있어도 불안하고 초호황을 누리는 회사에서 일해도 행복하지 않다.

'한강 자본주의'의 시효가 끝났음은 국민의식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본지가 최근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경제의식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2.7%가 '대기업들이 중소기업과 서민층의 몫을 빼앗아 좋은 실적을 올리고 있다'는 주장에 공감한다고 답했다.

대기업의 좋은 실적이 자신의 살림살이에 전혀 혹은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82.1%에 달했다. 경제성장과 분배의 문제에 대해서도 분배가 더 중요하다고 답한 사람이 55.2%로 성장을 중시하는 사람(38.5%)보다 훨씬 많았다. 살림살이에 불만족하는 이유로는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 때문'(35.1%)이라고 보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성장은 하는데 부(富)가 일부 계층에 집중되고 다수 대중은 빈곤해지는 '빈곤화 성장' 때문에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기존의 시장원리로만은 해결하지 못하는 단계에 진입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시장에만 맡기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서상목 경기복지재단 이사장은 "자본주의는 자유방임의 고전자본주의에서 정부 주도의 수정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모든 걸 맡기는 신자유주의로 진화해 왔다"며 "이젠 사회적 모순을 정부의 힘이 아닌 시장과 기업의 힘으로 극복하는 자본주의 4.0 시대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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