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전해지는 각국의 경기 호전 소식을 통해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세계경제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높은 성장세를 나타낼 전망이다. 하지만, 이번 회복은 경제위기 직후의 기저 효과와 미뤄두었던 소비와 투자 실현에 따른 반등의 성격이 강하며, 위기 이전 수준의 고성장세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고성장기의 종료와 더불어 나타날 세계경제 트렌드의 두드러진 변화는 세계경제 지형도의 변화(Continental Shift)를 꼽을 수 있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권의 역할이 확대되는 가운데, 중국의 뒤를 이어 인도와 아세안이 새롭게 부상할 전망이다. 투자와 소비의 허브 역할을 담당할 거대도시(Mega City)의 부상도 눈 여겨 봐야 한다. 원자재가와 환율의 움직임은 과거에 비해 변동폭이 줄어들 전망이다. 그러나 낮은 원화가치의 덕을 톡톡히 봤던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힘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개방 및 자유화 중심의 세계화 패러다임도 금융규제가 확대되고 정부 역할이 커지는 등 새로운 방향으로 진화를 모색할 것이다.
이번 금융위기의 충격은 일견, 매우 쉽게 지나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저성장이라는 만성적인 위협,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과 경쟁 환경의 부상, 수익성에 직접 타격을 줄 원화가치 절상 등의 위협 요인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 목 차 >
Ⅰ. 세계경제의 고성장 시대 종료
Ⅱ. 경제적 지형도 변화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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Ⅲ. 유가 및 환율, 완만한 변화 예상 Ⅳ. 뉴노멀(New Normal)기의 세계화 글로벌 경제의 회복세를 전하는 소식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그리스 등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불안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EU, 중국, 브라질 등 세계 주요국의 경제 활력이 조금씩 살아나는 추세이다. 소비와 투자가 늘면서 고용 사정이 개선되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조정하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다. 과연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겨울을 지나 본격적인 봄날을 맞이한 것일까? 이 글에서는 향후 5~10년 간 세계경제의 성장 경로와 그 과정에 나타날 구조적 변화들을 세계경제의 네 가지 중요한 트렌드를 중심으로 정리하였다. 먼저, 세계경제의 흐름에 대한 진단이다. 최근 나타나는 회복 신호의 진정한 의미와 그 뒤를 이어 나타날 고성장 시대의 종언 가능성을 분석하고 그에 따른 변화의 모습을 소개한다. 다음으로는 컨티넨털쉬프트(Continental Shift), 즉 세계경제 지형도의 재편 방향과 속도를 이야기한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더욱 두드러질 것으로 예상되는 개도권의 부상과 중국의 굴기(떨쳐 일어남) 가능성 및 그 파장에 대해 살펴본다. 세 번째로, 지난 5년 여 간 세계경제를 긴장시켰던 유가와 주요 통화 환율의 움직임 및 그 배경을 분석한다. 마지막으로 이번 위기를 통해 드러난 세계화 패러다임의 한계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세계화의 새로운 특징들에 대해 조망하고, 우리 기업들이 기억해야 할 주요 포인트를 소개한다. Ⅰ. 세계경제의 고성장 시대 종료 세계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충격에서 벗어나 지난해 하반기 이후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인도 등 거대 개도국이 수요의 버팀목이 된 가운데 각국의 금융시장 안정 대책, 대규모 경기부양이 수요위축의 악순환을 끊고 경기를 회복국면으로 돌려놓았다. 경기대책 규모나 환율여건 등에 따라 각국별 경기사이클은 다르게 나타나지만 세계경제 전체적으로는 전 분기 대비 1% 내외의 빠른 성장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 각국 정부의 경기부양책은 점차 축소될 것이지만 위기 상황에서 미루어두었던 내구재 소비가 재개되고 이에 따라 세계교역도 높은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민간부문의 수요가 회복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0.7%로 마이너스 성장했던 세계경제는 올해 3% 대 중반으로 성장세가 높아질 전망이다. 그러나 올해의 높은 성장은 세계적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으로 지난해 수요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던 데 따른 영향이 크다. 각국의 저금리 정책 지속과 경기부양의 효과로 경제 불안심리가 줄어들면서 그 동안 미뤄두었던 소비를 재개하고 기업들이 다시 재고를 축적하는 과정에서 성장의 속도가 빠르게 나타나는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세계경제는 2000년대 중반 평균 4% 이상의 고성장세로 다시 복귀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의 고성장 메커니즘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 세계경제의 고성장은 저금리와 금융시장 과열 등에 따른 유동성 급증으로 자산가격에 거품이 발생하고 고평가된 자산가격에 기반해 선진국, 특히 미국의 소비가 과도하게 늘어난 데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진국의 소비수요 확대로 세계교역이 활발해지면서 개도국들은 투자를 통해 생산능력을 빠르게 확충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선진국 소비 고성장의 전제조건은 자산가격의 빠른 상승, 금융기관의 기민한 유동성 창출, 달러화에 대한 강한 선호 등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향후 수년간은 이러한 추세가 재개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자산가격의 회복 및 미국 은행들의 대출기능 정상화에는 수년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최근 미국에서 소비심리가 살아나고 이에 따라 저축률이 떨어지는 등 소비 중심의 성장이 재현되는 듯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이는 저금리 기조와 경기회복 기대심리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출구전략 시행으로 금리가 정상 수준으로 높아질 경우 저축을 통해 부채를 줄이려는 유인이 확대되면서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안전자산 선호 현상이 약화되면서 달러화가 중장기적으로 약세를 보이고 이는 수입품 가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를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다. 선진권의 디레버리지, 즉 부채를 갚기 위한 절약과 이에 따른 유동성 창출 능력 감소는 개도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일차적으로 소비 수요가 줄어드는데 이어, 투자은행(IB) 중심의 프로젝트파이낸싱이 까다로워지고,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관련 의사 결정이 신중해지면서 개도권에 대한 투자 둔화도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는 적극적인 정부 지출을 통해 그 갭을 메워나가고 있고 선진권에 비해서는 훨씬 나은 형편이지만, 지난 10여 년 간 선진권으로부터의 투자 유입에 의존해 고성장세를 유지해 왔던 개도권 국가들 역시 자금 조달 비용 상승에 대비해 새로운 방향 모색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선진권, 민간소비 위축과 재정적자 부담으로 수요 견인력 감소 향후 수년간 미국 등 선진국은 디레버리지(Deleverage) 과정을 겪으면서 수요를 견인할 능력이 과거보다 크게 줄어들게 될 것이다. 개도국이 상대적으로 고성장 하겠지만 소비 견인력에 있어서는 선진국 수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GDP 규모는 개도국과 선진국이 엇비슷해졌지만 소비 측면에서는 아직 선진국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소비 조정과 함께 산업에 따라서는 과잉 부문의 설비 조정도 진행될 전망이다. 철강, 조선, 정유, 자동차 등 2000년대 개도국을 중심으로 설비가 빠르게 확장된 제조업 부문에서 과잉설비에 따른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들 부문은 그 동안 전세계 설비투자 확대를 주도해 왔으나 시장 경쟁이 격화되면 한계 기업을 중심으로 과잉설비의 도태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고, 그럴 경우, 전반적인 설비투자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국가부채 문제도 선진국 경기회복의 중요한 걸림돌이 될 수 있다. 글로벌 위기 극복 과정에서 주요 선진국들은 재정적자를 GDP 대비 10% 가까운 수준으로 급격히 늘렸고 이에 따라 국가부채 규모도 빠르게 확대되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민간부문 부채가 정부부문으로 이전된 것으로 해석되는데 결국 정부의 부채문제 해결이 향후 세계경제의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IMF 분석에 따르면 주요 선진국들은 매년 재정적자를 줄여가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GDP 1% 규모의 정부수요 감소 효과가 나타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부문의 수요 위축에 따른 성장 저하 효과는 재정적자나 국가부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개도국보다는 선진국에 집중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원자재 공급 제약 문제는 성장률을 제한하는 상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2007년 이후 유가의 빠른 상승은 세계경제가 매년 4% 이상의 고성장을 감당할 만큼 자원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신재생에너지, 녹색자원 등 대체 노력이 이루어지겠지만 당분간 자원공급 측면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수요의 둔화로 원자재 문제가 성장을 크게 제약하는 요인으로 직접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며, 일시적인 수요팽창 시기마다 상승 움직임을 보이면서 성장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요인들을 감안할 때 세계경제 성장률은 중기적으로 3%대 초반 수준에 머물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세계경제가 2000년대 이전의 성장세로 회귀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디플레 요인 해소, 인플레 요인 증가로 물가 불안 가능성 대두 물가는 과거의 안정세를 찾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대 중반, 고성장에도 불구하고 물가 상승률이 낮은 수준으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유가가 30달러 대까지 내려가는 등 자원가격이 낮았던 데다 중국산 저가 제품의 공급이 세계물가와 임금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향후 자원가격은 전통 에너지 부문의 공급 능력 축소로 말미암아 상승기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발 디플레 압력도 점차 약화될 전망이다. 중국은 고성장으로 일인당 소득이 높아지면서 이것이 임금을 통해 제품가격에 반영될 것이다. 또한 글로벌 불균형의 해소 과정에서 위안화가 꾸준히 절상되면서 중국산 제품의 수입가격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정책적으로 높은 인플레를 용인하려는 유인이 커질 수도 있다. 최근 IMF 보고서에서 나타났듯이 물가와 명목금리를 높게 가져가는 것이 경제위기 발생시 정책여건을 유리하게 할 수 있다. 더욱이 국가부채 문제를 해소하는 과정에서 인플레를 통한 부채부담 축소 유인도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국가부채 부담으로 재정정책의 여력이 충분하지 않아 경기 위축시 통화확장 정책을 사용할 유인이 더욱 커질 것으로 판단된다. 세계경제 성장세의 둔화로 인플레 압력이 크지는 않지만 과거 고성장 저물가 시기보다 다소 높은 물가상승세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경제의 변동성 확대 2000년대 세계경제는 고성장과 함께 경기변동의 폭이 크게 줄어들면서 大안정기(Great Moderation)라고 명명된 바 있다. 경제안정의 원인으로 여러 가지가 지적되는데 중국의 빠른 생산성 상승에 따른 글로벌 물가안정 효과가 컸다는 점, IT 버블 붕괴 이후 외부 충격이 크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정부의 경제안정화 정책이 효과를 거두었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요인들이 향후에도 지속적으로 작용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된다. 중국 발 물가안정 효과가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금융 및 재정 부문의 취약성으로 세계경제에 충격을 줄 리스크 요인들이 산재해 있다는 점에서다. 특히 당분간은 국가 재정 부문의 리스크가 크게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주요 선진국들이 재정적자 축소에 나서고 국제기구 설립 및 국가간 공조 확대 등의 재정위기 대응책을 마련해가겠지만 국가에 따라서는 적자문제 해소가 지연되는 경우도 존재하게 될 것이다. 뚜렷한 성장동력이 없는 국가들이 성장률 저하를 우려해 인위적 경기부양을 실시하는 등 파퓰리즘 정책을 지속할 경우 해당 국가에 대한 신뢰 저하로 글로벌 금융시장이 혼란해질 수 있다. 이들 국가들이 국채발행 실패로 디폴트 선언에 이르면 글로벌 은행 부실 확대에 따른 신용경색과 함께 부도위기가 확산될 우려도 배제하지 못할 것이다. 민간부문의 부채는 정부부문이 떠안으면서 해결이 가능했지만 정부부문의 부실은 이를 해결할 주체가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전반적인 리스크 요인의 상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경기조절 능력은 과거보다 저하될 것으로 판단된다. 서브프라임 위기를 통해 통화정책만으로는 부양효과가 충분치 않으며 재정정책이 중요하다는 점이 부각되었지만 국가부채가 누적되어 있는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위해 충분한 정도의 재정확대를 실행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분간 세계경제는 리스크 요인에 대한 불안감이 상존하는 가운데 경기의 변동성도 과거에 비해 확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금융 부문 회복세 나타나겠으나 과거 호황기에는 못 미치는 수준 실물경제의 저성장 추세는 향후 국제금융시장의 안정과 기능회복에도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 등 선진국 부동산 시장의 침체 장기화라든지 몇몇 나라에서 나타날 지 모를 가계 및 기업의 부실증가, 정부부채 부담 등의 불안요인들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 경제주체들의 위험회피성향이 위기 이전 세계경제의 고성장기에 비해 전반적으로 높은 수준에 머무르는 상황에서 금융활동에 대한 규제와 감독 또한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 대공황을 겪은 미국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사업영역의 엄격한 분리원칙이 나타났었던 것처럼, 최근 미국 오바마 정부가 제안한 금융기관의 사업영역 및 시장점유에 대한 제한도 향후 주요 선진국을 중심으로 국가간 공조의 틀을 통해 확산, 구체화될 것으로 보인다. 향후 국제금융시장은 위기로부터의 완만한 회복과정을 지속하면서도, 유동성 창출과 국가간의 자본이동에 있어서는 2000년대 중반과 같은 활발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금융산업을 선진국 경제에서 자리해 온 주요 성장산업으로서의 위상 또한 상당부분 위축될 것이다. 선진국을 중심으로 규제와 감독이 강화되고, 여기에 재정건전화 과정에서 전반적인 조세부담까지 늘어나면 선진국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해 온 상당수 금융회사들로서는 투자활동의 근거지를 홍콩 같은 신흥경제권으로 옮길 유인마저 가지게 될 것이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선진국 대비 개도국 및 신흥경제국가의 상대적으로 높은 경제성장률, 그리고 이들 국가에서 소비, 인프라투자 등 내수경제 기반의 확충은 해외투자 유치를 위한 매력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겠으나 글로벌 유동성 위축에 따른 전반적인 둔화 추세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일 전망이다. Ⅱ. 경제적 지형도 변화 가속화 이와 같은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 속에서 경제력의 중심이 태평양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전망이다. 2015년에는 개도권의 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가 8억5천만 명으로 늘어나 선진권의 8억 명을 추월하고, 특히 소득 수준이 연간 4만 달러를 넘어서는 고소득층 인구가 9천만 명에서 2억1천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어나면서 프리미엄 시장의 중요성이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개도권의 역할이 생산기지 중심으로 제한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앞으로는 소비시장에서도 변화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전세계 소비시장의 국별 점유율 변화를 추정한 결과, 미국과 유로존, 브라질 등 태평양 동쪽 지역 국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 43.5%에서 2015년 42.3%로 줄어드는 반면, 서쪽 지역 국가들의 비중은 24.3%에서 30.3%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특히 개도권에서 이런 변화가 두드러져 태평양 서쪽의 아시아 국가들이 중남미나 동유럽 국가들에 비해 더 빠르게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컨티넨탈쉬프트의 주축은 중국 중국 내부에서는 인정을 미루고 있지만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가 중국이 G2 국가로 성장했음을 인정하고 있다. 중국 역시 과거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즉 자신의 실력을 숨기며 때를 기다리는 전략에서 세계 각국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강조하는 ‘화평굴기’로의 노선 전환을 선언한데 이어, 2010년대 중반부터는 ‘화해세계’ 등 조금 더 적극적인 역할을 강조하며 ‘환골탈태’ 하는 신중화주의 시대로의 ‘굴기’ 움직임을 본격화 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측면만을 놓고 보면, 중국은 이미 여러 부문에서 선진권에 대한 ‘따라잡기(catch-up)’ 단계를 넘어선 상태이다. 광대한 내수시장을 기반으로 정부 주도의 미래산업 육성 정책을 추진 중이며, 2020년까지 재생에너지 비중을 15%로 늘리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저임 전통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대비하고 자원 및 차세대 산업 분야에서의 경쟁우위를 선점하기 위한 해외직접투자 확대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이 자국 통신 시장에서 독자적 3G 표준을 제정해 성공한 것이나, PDP TV를 누르고 LCD TV 분야에서 완승을 거둔 사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세계 500대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해 있는 상황에서는 각 산업 분야의 글로벌 표준 경쟁 역시 중국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전개될 여지가 크다. 중국의 G2 전략은 비경제적인 분야에서도 두드러질 전망이다. 미국에 대해서도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을 만들기 위해 규모의 경쟁력에 기반한 평화적 팽창주의 전략을 앞세워 대양해군 육성, 우주전 능력 배양 등 다양한 형태의 군사작전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동시에, 주변국과의 경쟁에서 자국의 이익을 강하게 관철시키기 위해 아세안, 인도, 러시아 등의 인접국 외에 중남미, 아프리카, 중동 등 세계 각국과의 교류를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있으며, 각종 국제기구 내 지위 향상을 위해서도 외교력을 집중하고 있다. 물론 G2로의 굴기가 순탄한 것만은 아니다. 시장경제와 체제 간 모순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게 점쳐지기 때문이다. 내륙개발 수요가 막대해 상당 기간 고성장이 가능하겠지만 그 과실은 대도시에 편중될 것이라거나, 도농 간, 도시 내 빈부 격차 심화로 2013년 이후의 차세대 지도부 통치기간 중에 사회적 안정성이 흔들릴 것이라는 등의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과의 갈등 역시 쉽지 않은 과제다.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 정부의 개입주의가 더욱 강화될 가능성이 높아 환율, 무역수지 등 여러 분야에서 두 나라의 이해가 엇갈릴 수밖에 없다. 두 나라 모두 상호 간의 경제적 영향력과 의존도가 워낙 커 섣불리 강경책을 사용하지는 않겠지만, 위안화 절상, 시장 개방 등 양국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한 여러 분야의 조정 과정에서 크고 작은 파열음이 예상된다. 포스트 중국은 인도와 아세안 향후 중국의 뒤를 이어 고성장의 바통을 이어받을 나라로는 인도와 아세안(ASEAN)이 꼽힌다. 인도와 아세안은 2015년까지 매년 5~8%의 고성장을 기록해 두 나라의 소득 1만 달러 이상 인구가 1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며, 브라질, 러시아, 멕시코, 터키 등도 구매력을 갖춘 인구가 꾸준히 늘면서 그 뒤를 이을 국가들로 꼽힌다. 특히 인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초반 외국자본이 급격히 이탈하는 등 불안한 모습을 보였으나 600억 달러에 달하는 신속한 경기부양 정책 실시로 침체를 막아냈다. 지난 3월에는 정책 금리를 전격 인상, 아시아 국가들 중 가장 먼저 출구전략을 시행하는 등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장기적으로 자산버블 위험성과 농업 등 1차 산업의 기후변화 리스크, 국제원자재 가격 급등에 따른 인플레이션 리스크, 루피화 강세에 따른 무역수지 적자 확대 가능성 등의 위험요인이 숨어 있긴 하지만 지난해 출범한 신정부가 위 변수들을 적절히 통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아울러 뭄바이, 델리, 자카르타 등 인도와 아세안 지역 도시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개도권 내수시장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메가 씨티(Mega City)’, 즉 인구가 1천만 명을 넘어서는 거대도시의 경제적 영향력은 앞으로 더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거대도시의 성장을 통해 도시 건설 인프라 투자가 늘어나고 도시형 소비 수요가 주변 지역으로 신속히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국경이 인접해 있는 인도와 아세안 주요 도시의 성장은 특히 더 큰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선진권 내에서도 회복 속도 차 확대 전반적으로 개도권에 비해 선진권의 회복이 더딘 가운데, 선진권 내에서도 각국이 처한 거시경제적 제약에 따라 그 속도가 달라질 전망이다. 유럽과 일본의 부진이 특히 두드러진다. 적극적인 경기 부양과 내수 확대 추진을 통해 성장 활력을 이어가는 개도권과 달리 국가 채무 부담이 이미 상당히 커져 있던 이 지역 국가들은 이번 위기 극복 과정에서 집행한 추가 지출로 국가 채무가 한계 상황에 도달해 경기를 부양할만한 별다른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유로존은 올해 0.7% 성장에 이어 2011년 성장률이 0.4%에 그치는 등 선진권에서 가장 부진한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일본의 성장률 역시 2010~2015년 평균 0.8%에 불과할 전망이다. 유로존이 이처럼 어려워지는 것은 그리스를 비롯한 PIGS 4개국의 재정적자 부담이 워낙 커 유로존 주요국에게까지 영향이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로존 내 의견 조율 실패로 자칫 어느 한 나라의 재정위기가 최고조에 이르기라도 한다면 그 파장이 서유럽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에 반해 미국은 다소 형편이 나아 2010년에 2.7%에 이어 2010~2015년 평균 2.1%의 성장률을 유지하고, 호주, 한국 등 상대적으로 국채부담이 적은 후발 선진국들 역시 유럽이나 일본에 비해 훨씬 나은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Ⅲ. 유가 및 환율, 완만한 변화 예상 성장에 부담을 주지 않는 완만한 유가 상승 국제유가는 개도국 중심의 세계 석유 수요 증가, 비OPEC 중심의 원유 공급 능력 확대 둔화를 바탕으로 지속적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다만 석유 수요가 느리게 증가하면서 원유 공급 상황에 여유가 있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유가 상승 속도는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 석유 수요는 선진국의 수요가 정체되는 가운데 중국 등 개도국과 중동 등 산유국의 수요 확대로 인해 연평균 1.1%씩 증가할 전망이다. EU, 일본 등 선진국에서는 에너지 사용의 효율화, 비화석 에너지 사용 확대 등을 추구하는 저탄소 녹색성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고 경기 회복세도 더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석유 수요는 정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개도국의 석유 수요는 녹색성장 정책 추구에도 불구하고 산업화, 도시화 등 경제 발전에 따라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반면 석유 공급 능력의 확대는 유전 개발 투자 위축으로 인해 점차 둔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2009년 저유가, 신용경색으로 인한 채산성 악화, 유동성 부족으로 유전 개발 투자가 감소하였는데 그 여파가 2012년경부터 나타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극지, 심해 유전 개발로 인해 OPEC보다 더 많은 개발비용을 필요로 하는 비OPEC 지역에서 투자 위축이 크게 발생했기 때문에 원유 공급 능력 확대의 둔화는 비OPEC을 중심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공급량 조절을 통해 고유가를 추구하는 OPEC의 공급 비중이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수요 증가, 공급 능력 확대 둔화로 유가가 상승할 것이지만 저성장으로 인해 과거에 비해 느려진 수요 증가세(과거 5년 연평균 증가율 대비 1.1%p 감소)와 높아진 세계 수요 대비 원유의 여유생산능력(과거 5년간 평균 대비 4.5%p 증가)으로 인해 그 상승세도 과거에 비해 둔화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국제유가는 연평균 5.7%씩 완만히 증가하면서 2015년에는 평균 배럴당 110달러(WTI 기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그림 9> 참조). 이 수준의 유가는 과거 2차 오일쇼크와 2008년 유가급등 시기와 비교해 보면 세계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그림 10> 참조). 달러, 완만한 약세 예상 미 달러화는 단기적으로 강세가 예상되지만, 내년 이후 중장기적으로는 약세 국면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에는 금융시장의 불안요인들이 아직 남아있는 데다, 하반기 또는 내년 FRB의 금리인상이 유로지역이나 일본보다 빠르게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 달러 강세 요인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중장기적으로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해소되고 실물경제가 회복되어감에 따라 안전자산으로서 달러에 대한 수요는 줄어들 것이다. 가치저장수단으로서 달러의 매력도 반감되고 있다. 미국의 국영 모기지 업체가 발행한 채권은 이번 위기의 진원과 맞닿아 있는 위험자산으로 탈바꿈했으며, 실제로 중국 등 일부 개도국과 신흥시장 국가에서는 금융위기를 경과하면서 자신들의 외환보유액으로 달러표시 자산의 비중을 더 이상 늘리지 않으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당분간은 미국정부가 암묵적인 약 달러 정책을 펼 유인도 있다. 소비와 수입에 크게 의존하는 미국경제의 성장구조에 근본적인 변화는 없겠지만, 재정지출의 지속적 증가가 불가능한데다 부채조정으로 인해 민간소비의 침체국면이 지속되는 동안은 달러약세를 통한 수출의 확대가 경제의 성장세를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할 수 있다. 위기극복 과정에서 연간 GDP의 10% 수준을 상회하고 있는 연방재정적자의 누증도 향후 달러 약세 요인이다. 물론 미국경제가 재정위기에 빠져들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여겨진다. 채무 및 재정지출에 대한 연방정부의 조절능력이 전세계 국가들 가운데 가장 높은 것으로 평가 받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경제의 성장률이 크게 높아지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재정적자의 증가는 경제의 성장세를 제약하고 인플레이션 발생 가능성을 높임으로써 향후 달러 가치에 대해 잠재적인 약세요인으로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중장기 약세 요인들에도 불구하고, 달러화가 지닌 기축통화 지위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2008년 하반기 미국에서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유로화와 엔화가 지닌 취약성을 확인하는 계기였다. 이러한 점에서 대미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막대한 달러표시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개도국 및 신흥시장국가의 미 국채 투매 시나리오 또한 현재로서는 그 실현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유로 강세 전환은 유로 체제 보완 이후에나 가능 금융위기 국면에서 달러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통화로 인식되며 약세를 나타냈던 유로화는 최근 불거진 재정위험에 대해서도 취약한 모습을 나타냈다. 이는 2000년대 초반 이루어진 경제통합과, 그 결과로서 가능했던 남유럽 경제 고성장의 이면에 잠재해 있던 구조적 위험요인이 현실화된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 스페인 등의 국가들은 실질실효환율의 고평가 상태가 지속됨으로써 무역적자가 누적되어 왔으며,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과정에서 정부부채도 크게 늘어났다. EMU에 기반한 단일통화정책과 국가별 재정정책간의 불일치 문제는 다소 느슨하게 운영되어 온 ‘안정성장협약(SGP)’에 의해 보완될 뿐, 문제발생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비상대책 또한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못한 상황이다. 역설적으로 최근 불거진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는 향후 유로화가 지닌 이러한 제도적 취약점들이 보완되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역내 회원국이나 IMF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이 성공을 거두더라도, 그 후의 재정건전화 과정이 경기부진을 동반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ECB의 금리인상을 더디게 만들고 이는 한동안 유로화에 대해 약세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하지만 EMU의 보완과 더불어 유럽국가들의 재정건전화가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내고 유럽경제의 회복세가 좀더 본격화되면 유로화는 달러 대비 강세로 전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본 저금리 지속, 엔 캐리 트레이드 확대 시, 엔화 약세 2009년 초 하토야마 정부 출범 이후 달러당 80엔대 후반~90엔대 중반 사이에서 강세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엔화환율은 일본 소비자들의 구매력을 높임으로써 내수부문의 회복에 기여한 반면, 수출부문의 경쟁력을 제약하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일본경제에서 수출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이러한 환율정책 기조가 중장기적으로 지속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행의 금리인상 시기도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상당기간 지연될 것으로 예상되며, 인상폭 또한 크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국제금융시장에서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고,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통화가 달러에서 엔화로 전환되면서 엔화에 대한 약세압력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의 정부부채비율(GDP 대비 172%, 2008년)에도 불구하고 당장 일본의 재정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정부채무의 대부분이 자국통화표시 형태인 데다 민간순저축이 재정적자 규모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재정건전화룰 위한 일본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경주되지 않는 상황에서 고령화로 인한 저성장 추세의 지속으로 재정상황이 더욱 악화될 경우, 현재 AA 신용등급인 일본국채가격이 중장기적으로 하락할 가능성도 지적되고 있다. 위안화 절상 통해 글로벌 불균형 완화에 기여 최근 중국에 대해 환율조작국 지정 카드를 포기하지 않는 등 미국의 대중 간섭주의가 강화되는 모습이다. 글로벌 불균형 완화를 위해서는 위안화 절상이 불가피하다는 국제사회로부터의 압력도 점차 거세지고 있다. 무역불균형을 둘러싼 이러한 갈등 양상은 당장은 다소간의 진통과정을 거치겠지만 점진적으로 완화될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의 기본적인 외교노선 또한 팽창주의, 패권주의를 지양하기 때문에 이러한 미·중간 긴장의 고조가 향후 파국으로까지 치달을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 논란 또한 오히려 양국간 본격적인 협상과 타협의 개시를 의미하는 측면도 있다. 중국정부도 수출을 통한 일방적인 성장보다는 중장기 대외균형을 이룬 경제모델을 추구하고 있기 때문에 향후 구매력 확대를 통한 국내소비의 증가와 더불어 위안화의 점진적 절상을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 위안화 환율은 2015년까지 현 수준으로부터 약 20% 내외의 폭으로 절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Ⅳ. 뉴노멀(New Normal)기의 세계화 개방과 자유화를 강조해 오던 세계화의 규범(Normal)도 달라질 전망이다. 지난 1980년대 후반 이후 신자유주의 확산 움직임과 맞물려 정착된 세계화에 대한 전통적 규범(Old Normal)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을 추구하고, 자유무역과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확대를 통해 단일화된 글로벌 시장의 출현을 확신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전통적인 세계화 규범이 이번 금융위기를 통해 금융시장의 리스크에 둔감하고 시장자율의 폐해를 사전에 인지하지 못하는 등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각국 정부와 글로벌 기업들을 중심으로 세계화에 대한 새로운 규범의 탄생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향후 세계화의 뉴노멀은 국제공조, 금융규제, 보호주의 등 세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먼저, 개도국의 발언권이 증대될 가능성이 높다. 위기 이후 개도권의 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됨에 따라 국제공조와 관련한 개도권 국가들의 발언권이 커질 전망이다. WTO/DDA, 포괄적 FTA 확대 등 선진국이 주창해오던 무역자유화는 점점 더 진척이 어려워지는 반면, 아시아, 중남미 등 일부 지역 국가들을 중심으로 시작된 느슨한 형태의 경제통합체 구성 논의는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이며, 글로벌 리더십 분야에서도 선진권 중심의 G8 보다는 개도권 참여가 확대된 G20의 위상과 중요성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형태의 보호주의 출현도 염두에 둬야 한다. 위기 직후 일부에서 우려했던 보호주의로의 회귀 현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각국 정부가 시장에 깊숙이 개입하면서 환경규제, 기술표준, 선별적 사업 허가 등을 통한 새로운 형태의 보호주의 움직임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다.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나 대만 전자산업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정부가 한계 상황에 처하거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특정 기업이나 산업을 살리기로 결정할 경우 해당 시장에 대한 적극적 개입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즉, 과거에는 정부의 역할이 시장의 룰이 제대로 지켜지는지를 감시하는 ‘심판’이었지만, 앞으로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즉 작전을 짜고 경기에 직접 참여하는 ‘선수 겸 코치(playing coach)’ 수준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동안 무소불위의 자유를 누렸던 금융산업 역시 규제가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을 중심으로 상당한 반발이 나타나고 있지만, 이번 금융위기의 피해가 워낙 컸던 탓에 규제는 불가피할 전망이며, 그 형태는 글로벌 자본이동에 대한 규제 장치를 신설하거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분리하는 등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에 따라 사모 펀드의 레버리지 제약이나 글로벌 유동성 유입 감소 등으로 M&A 시장이 위축되고 기업의 자금 조달 비용이 상승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전망과, 이를 계기로 금융시장의 건전성과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함께 제기되고 있다. 앞서 지적했듯이 세계경제는 올해와 내년에 걸쳐 단기적으로 높은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이는 경제위기 직후의 기저 효과와 미뤄두었던 소비와 투자 실현에 따른 반등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섣부른 낙관은 금물이다. 오히려 중장기적으로는 2000년대의 평균 성장률 4.0%보다 낮은, 즉 8, 90년대와 비슷한 3%대 초반 수준으로 후퇴할 가능성이 높다. 높은 성장률과 빠른 시장 확대만을 경험해 온 우리 기업들로서는 구조적 저성장이라는 익숙지 않은 환경에 대비하기 위해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성장기의 종료와 더불어 나타날 또 한 가지 두드러진 변화는 많은 전망 기관들이 지적하듯 중국을 비롯한 신흥 경제권의 역할 확대라는 점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눈 여겨 볼 부분은 거대도시(Mega City)의 부상이다. 아시아, 중남미 등 개도권의 거대도시들이 투자와 소비의 허브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글로벌 기업들의 전략적 포커스 역시 전통적인 ‘국가’ 단위 대응에서 ‘도시’ 및 ‘도시 간 연결 네트워크’로 발 빠르게 옮겨가야 한다. 지난 5년 간 세계경제의 변동성을 심화시켰던 원자재가격과 환율의 움직임이 상대적으로 더딜 전망이라고 해서 마음을 놓을 수는 없다. 달러와 유로는 구조적인 한계로 말미암아 단기간에 절상 기조로의 전환이 어려운 형편이고, 중국 등 개도권 경제 역시 섣불리 자국 화폐의 평가 절상을 용인할 정도로 녹녹한 상황이 아니지만, 그 동안 낮은 원화가치의 덕을 톡톡히 봤던 우리 기업들 입장에서는 상당히 힘든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변화는 세계화의 새로운 패러다임 등장이다. 지금까지 강조되어 오던 개방과 자유화 중심의 세계화가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허들을 만나 새로운 진화를 모색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진권 기업과 시장 중심의 권력이 줄어들고 그 틈을 개도권 기업들과 각국 정부가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동안 기업 대 기업의 경쟁에 익숙했던 우리 기업들로서는 심판에서 플레잉코치로 변신한 각국 정부를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당혹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진출국 정부를 기업의 또 다른 사업 파트너로 받아들이는 인식의 변화와 함께, 해당 정부와 산업 정책에 대한 조언을 주고 받고 이를 기업 전략에 반영함으로써 새로운 성장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방안도 생각해 볼만하다. 이번 금융위기의 충격은 일견, 매우 쉽게 지나간 것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계경제의 저성장이라는 만성적인 위협,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시장과 경쟁 환경의 부상, 수익성에 직접 타격을 줄 원화가치 절상 등의 위협 요인이 다가오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변화에 적절히 대비하지 못하는 기업은 머지 않아 진짜 위기의 실체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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