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한국 중산층은 무엇으로 사는가

위클리경향 | 입력 2010.04.15 11:53

 

ㆍ'보수 성향'에서 '진보 성향'으로 변화, 복지에 관심 높아

"'당신은 중산층에 속합니까'라고 물으면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대강 훑어보고는 '그럭저럭 삽니다' 라며 중산층에 자기를 구겨 넣는다. 하지만 '중산층이 되려면 어떤 요인이 필요합니까'라고 물으면 괴리된 답변이 나온다. 주택의 규모와 현금자산, 교육수준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거기에 해당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러한 괴리감이 우리 사회 중산층의 문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바탕을 두고 정부가 퍼뜨린 중산층 개념에 대한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의 말이다.

중산층은 한국사회 독특한 개념

신 교수는 "우리가 정의하는 '먹고 살 만한' 중산층이라는 것은 정확히 말하면 중간계급이지만 정부에서는 이 '계급'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쓰지 못하게 했다. 그래서 나온 것이 중산층"이라면서 "1960년대 초반에 이 명칭이 나온 이후 수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여전히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개념을 확대하거나 조정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조동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도 "중산층이라는 용어는 한국사회에서 마르크스주의 계통의 용어가 금기시되는 냉전시대부터 학계·정치계·언론계에서 사용돼 왔으며, 소득·자산·직업·학력 등으로 측정될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중산층은 '친여 보수 성향'을 드러냈다. 남은영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중산층은 사회 안정 요소다. 중산층이 많아지면 그만큼 사회 갈등 요인이 줄어들고, 정부 여당 성향이 존재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중산층을 육성하려 했다"면서 "이런 면에서 그동안 중산층에 대한 연구는 다소 보수적 측면에서 진행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산층은 상당히 주요한 변화를 촉발시키는 역할을 했다는 게 중론이다. 남 연구원은 "최근 들어 중산층은 정치의식과 사회의식에 있어서 진보적 세력이 많아졌다"면서 "실제로 화이트칼라(사무직)에서 보듯 교육 수준이 높으면 진보의식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 역시 "중산층은 흔히 보수적이고 안정을 희구하는 집단으로 이해돼 왔지만 최근엔 하층에 비해 오히려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면서 "이러한 진보적 성향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객관적 조건보다는 경제적·문화적 수준에 대한 주관적 인식의 요인이 더 중요한 것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뜨거운 공방을 일으키고 있는 '무상급식' 문제가 우리 사회 중산층의 정치적 태도를 보여 주는 사례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보편적 복지'라는 개념이 아직은 생소하지만 서민뿐만 아니라 중산층에도 중요한 '복지 지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여당은 전면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있으며,이명박 대통령은 "복지예산을 늘리고 싶어도 북유럽 나라처럼(해서는) 안된다"고 표명했다. 조세부담률이 우리보다 10% 이상 높아 중산층을 축으로 '세금=복지'라는 양방향의 국정 골격이 잡힌 북유럽과, '부자감세'에 발목 잡혀 재정적자는 확대일로이고 4대강 집중 예산으로 복지는 뒷전인 한국 간의 복지 방향에 대한 중산층의 선택이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다.

'무상급식' 후보 선택 중요한 기준

결국 키는 중산층이 쥐고 있다는 평가가 힘을 얻고 있다. 그동안 '타인을 위해 세금을 낸다'고 여겨 온 월급쟁이나 자영업자들이 '복지 무체감'을 벗고 무상급식을 통해 '세금이 나에게 돌아온다'는 자각 지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경향신문과 KSOI의 지방선거 여론조사 결과 '무상급식을 반대하는 후보에 대한 지지 여부'에서 저소득(200만원 이하·53.9%)보다 중간소득(201만~400만원·66.3%), 고소득(401만원 이상·55.7%)에서 '지지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많아 중산층이 무상급식을 후보 선택의 중요한 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초·중등학교 무상급식 전면실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서 저소득(77.1%), 중간소득(74.2%), 고소득(78.7%)으로 반응해 고소득층이 무상급식 실시에 가장 크게 공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 결과를 보면 중산층의 경우 야당의 무상급식 이슈에 대항하기 위한 여당의 '무상급식=부자급식'이란 프레임에 공감하지 않고 있다는 풀이가 가능하다.

이 같은 반응은 중산층의 불안감에서 시작한다. 조동기 교수는 "중산층 위기를 논의하는 맥락에서는 객관적인 규모의 문제보다 사람들이 주관적 측면에서 경험하는 상대적 박탈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닐슨컴퍼니코리아가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 3명 가운데 2명(63.3%)이 현재의 경제 위기로 인해 '소득이나 자산이 이전보다 줄었다', 10명 가운데 8명(78.7%)이 '경제 위기로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각각 응답했다. 특히 응답자들은 경제 위기 이후 '교양·오락비'(38.2%), '의복비'(33.5%)를 가장 먼저 줄였지만 경제 위기 상황에서도 '식료품비'(39.3%)와 '교육비'(28.1%)는 줄이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신분 유지나 상승의 유일한 도구인 '교육'에서조차 위기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부유층 진입에 대한 장벽은 높아졌다. 지난 3월 닐슨컴퍼니코리아가 같은 방법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우리나라 국민 대부분(87.5%)이 10년 전에 비해 부유층 진입이 '어려워졌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닐슨컴퍼니코리아 사회공공조사부문 최원석 국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경제 위기 상황을 겪으면서 사회 계층 간 이동의 경직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면서 "좀 더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부의 대물림 현상을 제도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장치도 중요하지만 서민과 중산층에게 성공할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보장해 주는 정책도 뒷받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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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내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특집]내가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이유"+" | Daum 미디어다음"; ㆍ전문·관리직은 물질소비, 사무직은 문화소비에 중점

우리 국민들은 일반적으로 중산층의 이미지로서 가장 대표적인 것을 '월소득과 재산'으로 꼽고 있으며, 다음은 '아파트와 주택' '소비와 문화생활, 교육' '직업과 사회적 지위'의 순으로 나타났다.

 

 

 

 

 

↑ 직업군에 따라 중산층에 대한 귀속의식이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아파트와 주택’ 등 물질소비와 ‘문화생활, 교육’ 등 문화소비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 |강윤중 기자

그 가운데에서도 전문직·관리직종사자(중상계급)들은 소득이나 재산보다 '아파트와 주택' 등 물질소비를 중산층의 조건으로 중요하게 꼽았으며, 사무직(신중간계급)에서는 상대적으로 '소비, 문화생활, 교육' 수준 등 문화소비를 중산층의 이미지로 꼽았다. 자영업자(구중간계급)와 단순근로자(노동자계급)는 '소득과 재산'을 다른 계층보다 상대적으로 더 중시했다.

중산층 하면 '소득·재산' 먼저 떠올라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가 지난 2006년 이후 19세 이상 1515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면대면 설문조사를 한 결과 우리 국민의 중산층 귀속의식은 과거 외환 위기 이전에 60~70%이다가 2006년에는 28%로 감소했으며, 이후 30% 안팎으로 나타났다. 중산층 의식이 상당히 떨어진 것이다. 중산층 귀속의식은 전문직·관리직 종사자에게서 가장 높게 나타났다.(43.2%) 다음으로는 사무직종사자(22.7%), 자영업자(18.7%), 단순근로자(11.4%)의 순이었다.

연구소가 '중산층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선택사항을 주지 않고 자유롭게 서술케 한 결과 '소득이나 재산'이라는 대답이 51.7%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아파트 등 주택'(22.7%), '교육, 소비 등 라이프스타일'(16.2%), '직업이나 사회적 지위'(9.5%)가 이었다. 남은영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조사 결과 중산층의 정체성은 객관적인 계층적 지위보다 소비문화에 영향을 많이 받고 있었다"면서 "문화소비와 물질소비가 중산층의 생활양식 및 정체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분석했다. 한국의 중산층은 계급보다 지위집단으로 규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득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직·관리직이 중산층 기준으로 '주택의 보유 여부'(36.4%)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들은 또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나타내는 지표물로 3000CC 이상 고급승용차(21.6%)와 피트니스 회원권(18.9%), 콘도 회원권(16.2%), 골프회원권(8.1%)을 답해 사무직종사자들의 2~7배로 큰 차이가 났다. 그러나 물질소비에 있어서 사무직종사자와 자영업자, 단순근로자 집단 간에는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는 상대적으로 사무직종사자들은 문화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전문직·관리직에 비해 소득 수준이 낮지만 문화소비는 이들과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지난 1년간을 기준으로 영화 관람의 경우 전문직·관리직과 사무직은 각각 6.27회, 6.82회로 응답해 두 직업군 간의 차이가 거의 없었다. 연극 관람도 각각 0.59회, 0.61회 즐겼다고 대답해 큰 차이가 없었다. 다만 비교적 고가의 문화생활인 뮤지컬, 음악회, 전시회 등 고급예술에서는 전문직·관리직이 다소 높았다.

자영업자의 경우엔 자신이 중산층이라는 정서적 소속감이 낮았다. 연구소에서 규정한 중산층(전문직·관리직, 사무직, 자영업자) 가운데 18.7%로 가장 낮은 것. 문화예술소비 면에서 자영업자는 지난 1년 동안 영화 관람을 2.28회 경험해 단순근로자의 3.34회보다 오히려 적었다. 남 연구원은 "자영업자의 경우 대부분 영세상인이 많아 소득 수준이 낮기 때문으로 분석됐다"면서 "게다가 상대적으로 노동시간도 길어 문화예술소비 여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외환 위기 전까지 높은 경제성장률을 보이면서 중산층이 확산됐다. 특히 1980년대 이후 소비문화가 확산되면서 중산층이 소비문화를 많이 도입해 즐기고 추구하는 층으로 성장했다고 불 수 있다. 그 흐름은 1997년 외환 위기 이후에도 이어져 실제소득이 줄었지만 소비심리는 줄지 않아 소비의 양극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글로벌화에 따라 고가의 수입품이 더 많이 밀려들어 오면서 오히려 일부 계층에선 소비심리가 상향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중산층 안에서 서로 구분하는 경향

남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중산층이 물질소비에 우선시하는 데 반해 프랑스의 경우 문화적, 귀족적 취향을 좇는다"면서 "우리의 경우도 미국에 가까워 물질적인 것으로 자신의 지위를 나타내기를 좋아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특히 산업화가 급속하게 진행된 사회에선 중산층 안에서도 서로 구분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며, 우리의 경우도 그런 성향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남 연구원은 "소비문화는 객관적인 계층적 지위보다 중산층의 정체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면서 "소득이 높을수록 중산층 정체성을 갖고 있다.

주택소유자일수록, 주택의 면적이 더 넓을수록, 고가의 물질적 지위소유물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중산층 정체성을 더 많이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즉 소비문화(문화예술소비와 물질소비)는 중산층의 생활양식(구별짓기를 위한 지위표시물) 및 정체성 형성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문직·관리직종사자들이 사무직종사자들과 문화예술소비에서는 비슷한 양상을 띠지만 물질적 부분에선 사무직이 따라갈 수 없는 차이를 보이면 지위를 나타내는 요인으로 쓰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국은 경제 성장을 하면서 중산층이 등장하고 새로운 라이프스타일과 소비에 대한 욕구도 상승했다. 소비문화, 특히 문화예술과 물질 소비는 중산층의 특성을 잘 보여 준다. 중산층 의식에 있어 어떤 직업에 속하느냐보다는 소비가 더 크게 영향력과 통제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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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추락하는 중산층엔 ‘희망’이 없다

위클리경향 | 입력 2010.04.15 11:53 |

 ㆍ경제위기·고용불안으로 빈곤층 편입… '삶에 대한 꿈' 격차도 벌어져

 

 

 

↑ IMF 외환 위기 이후 우리 사회가 잃은 것은 중산층이다. 고용 불안과 실업 문제로 양극화가 더욱 가속했기 때문이다. IMF 외환 위기 이후 실업에 내몰린 한 노동자가 최저생계비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김정근 기자

 

 

 

↑ 중산층의 붕괴는 내수 기반 및 성장 동력의 약화, 빈부격차 확대 등을 초래한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시급하다. |정지윤 기자

한국의 중산층이 70%? 정부가 잘못된 중산층 정의를 내림으로써 그 붕괴의 원인 분석과 대책에도 방향이 어긋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학계에서 보는 중산층은 30~40% 수준. 그러나 이들마저 비정규직 확산으로 인한 소득격차와 고용불안감으로 흔들리고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중산층과 고소득층의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단순히 경제적 격차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에서는 지위 상승의 희망까지 포기하게 되는 '희망격차사회'로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0년 대한민국에는 중산층의, 중산층으로의 희망이 사라져 가고 있다.


지난 3월 16일 통계청은 1인 가구와 농어촌 가구를 제외한 도시가구의 월 중위(中位)소득이 302만2000원이라고 밝혔다. 중위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순으로 나열했을 때 가운데 있는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통계청 기준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를 제외한 한국 도시가구 가운데 중산층의 월 평균 가처분소득은 151만1000~453만3000원이다. 반면에 151만1000원 미만을 버는 가구는 빈곤층, 453만3000원 이상을 버는 가구는 고소득층으로 분류된다.

지난해 조세와 4대 연금 보험료를 포함한 국민 부담률이 26.5%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세전 소득이 가구당 월 205만5782만~616만7347만원이면 중산층이란 결과가 나온다. 이를 연봉으로 환산할 경우 2467만~7401만원 수준이 '대한민국 중산층'이라는 것이다.

한국 중산층 70%? OECD 기준의 맹점

통계청은 이 기준에 따라 지난해 중산층이 차지하는 비중을 66.7%로 집계했다. 2003년(70.1%)과 비교하면 3.4%포인트 하락한 수치다. 같은 기간에 빈곤층은 11.6%에서 13.1%, 상류층은 18.3%에서 20.2%로 각각 늘었다.

그러나 정부의 이 같은 중산층 분류에 대해 동의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한민국 가구의 70% 안팎이 중산층이라는 통계 자체가 어불성설이며, 게다가 월 평균 151만원과 453만원 소득가구의 삶을 한데 묶을 수 없다는 지적이다. 이는 정부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에 따라 중산층을 분류하기 때문이다. OECD는 중위소득의 50% 미만을 빈곤층, 50~150% 미만을 중산층, 150% 이상을 고소득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들이 생각하는 중산층 기준은 OECD 기준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직장인 연봉 비교 사이트인 페이오픈의 설문 결과 우리 국민은 가구당 연간소득이 5000만~7000만원은 돼야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등 각종 여론조사에서 7000만원을 중산층의 기준으로 삼는 국민이 대다수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에 대해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OECD 가입국의 경우 기본적인 사회안전망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규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OECD에 속한 국가들은 의료나 보육, 교육 등 기본적인 복지가 되어 있기 때문에 소득으로는 그 외의 것에 소비하는 추세"라면서 "하지만 우리의 경우 개인 소득으로 이 모든 것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학계에서는 폭이 상당히 넓어 그 특성을 규정하기 힘든 OECD 기준 중산층 대신 '미들클래스'라는 용어를 쓴다. 미들클래스는 산업화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계급으로, 노동계급과 다르고 자본가계급(기업가)과도 다르다. 미들클래스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하나는 산업화 진전에 따라 대기업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계층으로, 경영이나 관리감독 등 중간경영자에 속하는 사람들이다. ▲또 하나는 고학력과 훈련 정도, 자격증을 갖춘 새로운 형태의 전문직이다. 법률가, 의사, 회계사 등이 이들에 속하며 이들은 자격증을 보유함으로써 공장노동자와 다른 보수나 사회적 신분을 지니게 됐다. 여기에 사무직(화이트칼라) 가운데에서도 승진 등 미래가 보장되는 경력직도 포함해 이들을 보통 중간계급, 미들클래스로 규정하고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주요인

중산층의 규정과 개념에 따라 중산층의 위기 수준도 달라진다. 조동기 동국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에서는 '중산층'이라는 용어가 서구 학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중간계급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득·자산·직업·학력 등으로 측정될 수 있는 독특한 개념"이라면서 "2006년 한국사회학회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핵심적 중산층은 40% 안팎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중산층의 범위와 위기 진단 또한 이런 현실적인 기준에 맞춰야 한다는 지적이다.

우선 대한민국 중산층을 '70% 안팎'으로 보고 있는 통계청이 분석한 중산층 감소 주원인은 '고령화로 1인 가구가 늘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 가구 비중은 20.2%로 2000년 15.6%보다 크게 늘었다. 이 가운데 노령화된 1인가구가 늘면서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이탈하는 사람이 증가한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기술 발전도 빈곤층 증가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기술 발전으로 고급인력에 대한 수요가 많아진 반면에 저급 노동 수요는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결과 중산층이 고소득층으로 편입되거나 빈곤층으로 전락하면서 중산층 감소가 이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70% 안팎'이라는 큰 범위 탓에 분석에 있어 정밀함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신광영 교수는 "모호한 중산층 개념을 정확하게 중간계급으로 정의한 다음 그 위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면서 "중간계급이 줄어드는 것, 규모가 변치 않더라도 불안정 상태가 되는 것, 규모도 고용도 보장되지만 소득이 준 것 등을 중간계급 위기의 원인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우선 외환 위기 이후 10년 동안 중산층(중간계급)의 규모가 줄었다. 특히 사무직과 경영관리직의 변화가 상당히 컸다. 경영관리직의 경우 10년 동안 30% 가까이가 자영업이나 노동직으로 전환됐다. 또 자영업의 경우 대부분 영세상인으로 파악됐다. 신 교수는 "상당히 안정되고 성공한, 한국경제가 성장하면서 등장한 새로운 사회집단이 줄어든다는 것은 한국사회의 불안정한 사회집단이 늘어난다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산층의 위기는 규모뿐만 아니라 고용 불안정도 큰 요인이다. 과거엔 평생직장을 보장받았지만 외환 위기 이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고용 불안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는 전반적인 명예퇴직, 조기퇴직 등이 원인이다. 고용 불안의 정도를 보면 비정규직이 늘어나면서 고용이 불안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폭 늘었다. 비정규직 바람은 대학 시간강사 등 이전에 중산층으로 분류되던 전문직에도 예외 없이 적용돼 불안감을 더하고 있다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신 교수가 지적하는 중산층 붕괴의 가장 큰 문제는 비정규직 확산이다. 중산층의 규모가 줄지도 않고 고용도 다소 안정돼 있다 하더라도 비정규직의 소득이 줄어든 것이다. 신 교수는 "2000년대 말 소득 차이의 주요인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라면서 "1998년과 2007년에 대해 경영관리직 정규직의 월급을 지수 100으로 놓고 각종 직군의 급여 수준을 비교하면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좀처럼 줄지 않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으로는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한편으로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가 생기면서 소득 격차가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중산층에 대한 고용주나 자영업자와의 간극에도 변화가 있다. 1998년 당시엔 고용주와 중간계급 간의 격차가 그리 크지 않았으나 갈수록 그 격차는 벌어졌다.(1998년 지수 126.9 → 2007년 지수 178.6) 반면에 자영업자와의 격차는 줄었다.(1998년 지수 47.6 → 2007년 지수 78.1) 위로는 벌어지고 아래로 가까워지면서 중산층의 계급 자체가 상당히 떨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장기침체·희망격차사회 우려


중산층의 붕괴는 내수 기반 및 성장 동력의 약화, 빈부격차 확대 등을 초래한다. 중산층의 붕괴는 경제의 허리가 무너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중산층 붕괴를 막기 위해서는 제대로 된 일자리 창출이 급하다. 물론 쉽지 않은 과제지만 이는 기업의 참여와 투자 활성화 등과 맞물려 있다.

신 교수는 "중산층을 살린다는 것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해야 고용과 소득의 안정화를 유지할 수 있으며, 그것이 중산층을 아래로 떨어지지 않게 한다는 주장이다. 신 교수는 "일부에선 고소득자의 세금을 깎아 내수를 활성화시켜서 경기를 부양해 중산층을 두텁게 만든다고 하지만 이는 조지 W 부시나 고이즈미 준이치로가 한 중산층 부양정책으로 이미 다 실패했다"면서 "고소득층은 자산이 여유롭기 때문에 소비를 할 만큼 한 사람들로, 이들의 소비 창출은 결국 국외 소비다. 세금을 깎아 주면 실제로 중산층이 아닌 고소득층, 즉 부자가 혜택을 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또 "비정규직 문제를 개별기업 차원에서 다룰 경우 기업마인드를 벗어날 수 없다"며 정부의 조정을 강조했다. 그는 "적어도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면 기업 단위가 아닌 국민경제 단위로 생각할 필요가 있다"면서 "흔히 비정규직을 노동계급만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노동계급만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 한국사회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해 온 중산층에도 그런 문제가 온 것으로, 안정적인 세력들이 흔들리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극히 취약한 사회 안전망 확충과 과다한 가계비 부담의 요인인 사교육비 문제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실질소득은 오르지 않는데 사교육비가 많이 들면서 교육 외 소비는 상당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 또한 노후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어 불안감이 크기 때문에 집 한 채라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인식이 부동산에 몰리는 것이다.

남은영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은 "OECD 국가 가운데 사회적 안전망이 잘돼 있다는 스웨덴의 경우 소득 300만원이나 500만원이나 실질적으로 살아가는 데 있어서는 기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면서 "하지만 우리는 개인이 부담하는 몫이 많기 때문에 300만원 소득의 스웨덴 사람처럼 살려면 500만원 이상을 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한 번 추락한 중산층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막연한 성공 가능성이 사라지고, 게다가 그런 꿈 자체를 포기하게 되는 상황에 내몰리게 된다. 일본에서는 이를 '희망격차사회'라고 한다. 단순히 경제적인 격차뿐만 아니라 어떤 집단에서는 "내가 잘살 수 있다"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아예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신 교수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부모들은 자식만큼은 교육을 통해 어느 수준까지는 오를 수 있다는 생각으로 교육에 대해 투자해 왔지만 비정규직 등 중산층을 붕괴시키는 환경에선 이런 희망과 가능성이 점점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력하고 살아보겠다는 그런 강한 성취 동기가 우리 사회의 버팀목이었지만 이것이 사라지면 심각한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국가적 에너지의 소실로 경제 회복이 더욱 더뎌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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