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에 상륙한 ‘토건 포퓰리즘’
이명박 정권 출범 후 정부와 공기업 부채가 150조 원 정도 급증한 것으로 집계된 가운데 지난 5년간 국내 지자체 중 최고의 부채 증가율을 기록한 인천시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인천시는 다수의 초대형 토목건설 사업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부채가 계속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해 인천시는 차입과 채권발행을 통해 1조원 내외의 빚을 냈다. 인천시의 연간 부채 규모가 그 전해(2008년)에 960억원 수준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한꺼번에 10배의 빚을 끌어들인 것이다. 2009년 말 현재 인천시의 총채무는 2조3천억여 원에 달한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인천시는 ‘걱정할 필요 없다’는 입장이다. 총부채 규모가 1년 예산의 29.4% 수준에 불과하고, 땅값도 매년 평균 17%씩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시 측은 땅값이 상승하면 지방세(등록세, 취득세 등) 수입도 따라 올라 부채상환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부채의 90% 정도가 장기 저리 자금(상환기간 8~15년, 3~5%의 저금리)으로 ‘채무의 질’도 아무 좋다는 것.
그래서 인천시는 지난해 이 지역의 5급 이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세미나에서 “오히려 지금은 빚을 내서 대규모 사업을 추진할 시기”라고 강조한 바 있다. 인천시청 박종철 예산담당관은 “연간 예산이 7조원 정도인데 매년 2천억 원 정도 상환하는 정도니 별 문제 없다”고 말한다. 더욱이 인천시는 이런 부채를 ‘생산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소비나 사회복지가 아니라 사회기반시설,도로, 철도 등에 투자해 자본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박준복 정책위원장은 앞으로 늘어날 세입 규모로는 수많은 토목건설 사업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인천시의 평균 일반재원은 연평균 3천억~5천억 규모로 증가하지만 이 정도로는 지하철, 경기장 등 대규모 건설사업 중 한두 곳의 경비를 충족시키기도 힘들다는 것이다. 그래서 시로서는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서라도 채무를 계속 늘릴 수밖에 없으며, 이는 지자체의 재정건전성에 치명적 타격을 가하리라는 이야기다. 그런 조짐이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박 정책위원장은 말한다. “인천시가 지난해 발행한 지방채 중 905억원은 빚을 갚기 위해 빌린 것이다. 그리고 지방채 중 시중은행에서 빌린 돈의 이자는 종전 보다 훨씬 높은 5.25~5.36%이다.”
그러나 이는 ‘면피’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도개공이 계속 적자를 낼 경우엔 인천시가 세금으로 갚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인천도개공이 그동안 해온 사업은 대다수 안상수 인천시장의 공약 사항이었다. 인천 경실련 김송운 사무처장은 인천도개공이 “안상수 시장의 공약 중 대부분을 사업으로 시행해왔다”며 “시장이 지방 공기업의 설립 목적과 관계없이, 자기 공약을 공기업의 돈으로 대신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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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폐기한 ‘토건국가’ 길로 가는 한국
시사IN | 이종태 기자 | 입력 2010.04.13 12:29
원래 '토건국가'는 1960년대 이후 일본의 급격한 경제성장과 몰락을 설명하는 데 사용되는 개념이다. 일본이라는 토건국가에서 정부는 국민들의 저축을 지방정부를 매개로 건설회사에 몰아주었다. 건설사들은 이런 공사를 발주 받는 과정에서 정치인, 관료 등과 결탁하면서 시장 수익 이상의 성과를 얻는다. 그리고 이런 성과의 일부를 지역 주민들에게 '부스러기'로 나눠준다. 단기적이긴 하나 일자리를 창출해서 소득을 이전하고 지역경기에 붐을 일으키는 것이다.
즉, 일본에서 토건국가는 성장동력이자 사회통합 기제였다. 변형된 케인즈주의이며, 대다수 국민이 혜택을 누린 강력한 포퓰리즘 체제이기도 했다. 일본은 1990년대와 2000년대, 매년 40조~50조엔(400조~500조원)을 토건사업에 쏟아 부은 것으로 추정되는데, 전체 노동인구의 10%인 1백만여 명이 이 부문에서 직간접적 수입을 얻었다고 한다.
심지어 일본정부는 1998년에 발표한 '국토 그랜드 디자인'에서도 초대형 토건사업들을 계획했다. 가장 특기할만한 것은 한국의 '4대강 사업'을 연상케하는 '슈퍼 제방' 프로젝트다. 치수 안전도를 개선하기 위해 일본의 주요 강들을 따라 '슈퍼 제방'을 쌓겠다는 계획이다. '슈퍼 제방'으로 불리는 이유는 제방을 쌓은 뒤 수백m 규모로 흙을 쌓는 방식으로 사실상 국토를 바꾼다는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동아시아 연구자인 개빈 맥코맥은 이에 대해 "2백년에 한번 발생하는 대홍수에 대비해서 일본의 주요 강을 따라 '슈퍼 제방'을 쌓는다는 정신병리학적 계획 … 완공에 1천년이 걸린다는 계획표를 짜기는 했다"고 냉소한다.
이러다보니 일본의 국가채무(중앙정부+지방정부)는 GDP의 150%를 훌쩍 뛰어넘게 되었다. 대부분 토건사업에서 진 빚이다. 하토야마 정부는 토건에서 복지로 방향타를 돌리고 있지만 세계사적으로 초유인 거대 규모 부채는 이후 일본 국민경제의 운신을 극도로 제한하게 될 것이다.
이런 일본식 토건국가는 정치적으로는 자민당-건설사-금융사로 이루어지는 '철의 삼각동맹'에서 기인한 것이다. 공공자금(국민의 돈)으로 초대형 건설사업을 주도하며 이에서 발생한 '부적절한 사익'을 취하고, 그 결과엔 절대 책임 지지 않는다. 이런 토건국가 시스템이 한국에서도 유사하게 작동 중이라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예컨대 인천시가 지난해 초대형 토목건설 사업들을 추진하기 위해 빌린 1조원 중 상당 부분은 중앙정부의 자금이다. 중앙정부에 모인 세금이 지방정부에 채무의 형태로 이전되면서 초대형 토건사업을 일으키고, '지역 경기'를 좌지우지하게 된다. 이엔 수많은 지역 주민들의 생활이 얽혀 있다. 중앙 및 지방 정부와 정치권의 입장에서는 대규모 토목건설 사업을 끊임없이 만들어 내는 것이 대중에게 인기를 끌고 권력을 유지하는 방편이 된다. 문자 그대로 '토건 포퓰리즘'이다.
한국의 공공 건설사업들에서도 행정권력-정치권-건설사가 긴밀히 결탁하고 있는 흔적이 역력하다. 예컨대 경실련 신영철 정책위원은 공공 건설사업에서 정부 측이 건설사에 주는 공사비가 실제 시장 가격보다 크게 부풀려져 있다고 주장한다. "토목공사 중 덤프운반, 발파 등만 봐도 공사비가 실제 시장가격보다 2배 이상 부풀려져 있다. 이런 구조 하에서 건설업체들은 단지 수주했다는 이유만으로 폭리를 취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방공기업의 대주주지만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 기본 원칙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 인천 경실련 김송운 사무처장은 "현재 인천도개공이 추진하고 있는 송도 국제화복합단지, 영종물류산업단지 등 다수의 토목사업은 지난 지방선거 당시 안상수 후보의 공약사항이었다"고 말한다. 지방공기업이 지방정부의 한 부서처럼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4대강 사업비용 22조원 중 수자원공사에 8조원을 떠맡긴 것과 비슷한 사례다.
그리고 이런 시스템은 일본 토건국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인사'에서 완료된다. 인천도개공의 2대 사장은 인천시 도시계획국장, 3대 사장은 행정부시장, 현임 4대 어윤덕 사장은 정무부시장 출신으로 모두 '안상수 시장의 남자'이다.
그리고 일본의 토건국가 시스템은 장기 불황이라는 상황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다른 산업이 적절한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토건국가라는 포퓰리즘으로 돈을 뿌린 것이다. 실업과 양극화는 토건 포퓰리즘의 다른 얼굴이며, 한국도 일본과 같은 길을 걷게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토건국가의 대안으로 최근 제기되고 있는 것이 '복지국가'이다. 토건 부문에 대한 거대 투자를 복지로 돌려 성장 잠재력을 재구축하자는 것이다. 참여예산제, 예산실명제 등을 통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예산지출을 투명하고 책임성 있게 만드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인천사회복지보건연대 박준복 정책위원장은 "인천의 경우, 사회복지 재원을 일반회계 자체재원의 5% 미만에서 6%로 늘리고, 행사성·낭비성 예산을 줄이며, 순세계잉여금을 사회복지 예산으로 이월 활용하면 .전면적 무상급식, 아동수당, 보육 강화 등을 시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종태 기자 /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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