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 무기력증에 갇힌 일본…일벌레는 `흘러간 유행가` 워킹푸어ㆍ비정규직 급증 `중산층 신화` 흔들
오너없는 기업들 대부분 금융위기 이후 고전
◆ 일본病…그것이 주는 교훈 ① ◆

2조3000억엔의 누적부채를 감당하지 못하고 최근 법정관리를 신청한 JAL은 기업 리더십 부족이라는 일본병의 핵심 증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막대한 퇴직연금 부족액(4000억엔)이 쌓인 문제점을 안고 있었지만 역대 경영진 누구도 손을 대지 못했다. 1987년 민영화 후 국토교통성 간부들이 낙하산 CEO로 취임해 왔기 때문이다. JAL 본사가 도쿄 마루노우치에 있기 때문에 `국토교통성의 마루노우치 분실`이라고 불렸을 정도다.

2005년 일본항공 내부에서 "기업 존속에 대한 염려가 제기된다"는 보고서가 작성됐지만 당시 경영진은 "설마, 일본항공이 망할 리가 있겠는가"라며 폐기 처분한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당시 간부 중 한 명은 최근 TV방송에 출연해 "그때 구조조정에만 착수했어도 회사가 법정관리까지 내몰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위기 대응마저 느리다.

니혼TV는 "미국 GM이 회사 정상화까지 6개월 구조조정안을 발표한 반면 JAL은 무려 3년에 걸친 정상화 계획안이 제출됐다"고 비판했다.

물론 모든 기업이 일본병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이 존재하는 스즈키 자동차는 금융위기 후 실적이 상승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최근 업무 제휴에 합의한 독일 폭스바겐과 일본 스즈키 차의 지난해 글로벌 판매량이 859만대로 도요타(781만대)를 추월했다고 보도했다. 오사무 스즈키 회장은 "간부 중 오일쇼크를 경험한 사람은 나밖에 없다"며 "남에게 불 속의 밤을 줍게 하기보단 먼저 줍겠다"며 위기 속 리더십을 불태우고 있다.

◆ 사회적 무기력증

= 일본 경제 호황기의 최대 강점이었던 노동력이 금융위기 이후 무력해지고 있다는 점이 일본병의 또 다른 증상이다. 일본의 실업률은 5.2%로 악화되는 추세에 있으며 자살하는 사람이 12년 연속 3만명을 넘고 있다. 인구 10만명당 자살자가 19명으로 선진국 중에서 가장 많다.

니트족(일할 의지가 없는 젊은 층) 프리터족(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층) 등의 단어가 상징하듯 일본 노동인구가 소속감을 상실한 아노미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노동경제학자 출신인 세이케 아쓰시 게이오대학 총장은 "사회적인 안전망을 충분하게 갖춰놓지 않은 상태에서 성급하게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한 결과"라고 밝혔다.

2000년대 이후 단행했던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 비정규직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에 책임감 없는 노동인구가 급증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태는 노동생산성 하락으로 연결된다. OECD 통계에 따르면 2008년 일본의 노동생산성은 6만8219달러로 OECD 가맹국 30곳 중에서 20위였다. 선진국 중에서는 최하위다.

오마에 겐이치는 일본 젊은이 중에 "이대로 가난해져서 경제대국이라는 간판을 내리면 어떤가. 내 작은 행복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최근 일본에 불고 있는 `료마(龍馬)` 열풍도 이 같은 소시민 의식을 타파하기 위한 활동이다. 일본 NHK방송은 `료마전`이라는 드라마를 통해 막부 말기 `국가를 위해 젊음을 바쳤던`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 정부도 아노미 상태

= 정부는 경제에 활력을 주기 위한 재정 확대의 필요성을 통감하고 있다. 그러나 여력이 없어 갈팡질팡하는 상태다. 이미 G7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국가채무 수준(218.6%)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S&P가 일본 국채의 신용등급을 부정적으로 하향했기 때문에 재정은 더더욱 어려워진 상태다.

세금 인상으로 재원 마련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역시 향후 5년 안에는 하지 않겠다고 공언해 버렸다.

정경유착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 때문에 54년 만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민주당 정권은 정치적으로도 무기력증에 빠져 있다.

잇따른 정치자금 수사 등으로 집권 4개월째를 맞은 하토야마 내각에 대해서는 "수술은커녕 일본병을 더 악화시킬 수 있는 지도자"라는 냉혹한 평가도 나오고 있다.

■ 국제사회 `섬` 돼가는 일본

자기것만 고집…`갈라파고스 현상` 확산

= 남아메리카 대륙과 1000㎞나 떨어진 갈라파고스 섬에는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고유한 종(種)들이 존재한다. 찰스 다윈의 연구대상이 되기도 한 이 섬의 특이한 종들은 그러나 외부에서 새로운 동물이 유입될 때마다 멸종 위기에 처했다. 불리한 상황을 겪으며 생존한 외부종이 생명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2008년 말부터 일본 IT업계에서는 갈라파고스 현상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일본 제조업이 일본 시장에 주력하기를 고집한 결과 세계 시장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일본 시장에 몰두하면서 휴대폰을 만들다 보니 국제적 휴대전화를 만들지 못하는 현상, VTR 운영 시스템 싸움에서 혼자 베타맥스 방식을 고집하다가 VHS 방식이 세계 표준으로 정착되는 바람에 고립된 소니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사회ㆍ문화ㆍ외교적으로도 고립현상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점이다. 오마에 겐이치는 "오늘날 일본 젊은이 중 대부분은 반경 3m 밖에 있는 것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아소 다로 전 일본 총리가 외무상 시절 일본의 천민계층인 노나카 히로무 전 의원 이름을 거명하며 "그런 자가 일본 총리가 되면 안 된다"고 말한 것도 사회계급적 고립 현상을 상징한다. 후텐마 비행장 문제로 미국과 날을 세운 하토야마 정권은 결과적으로는 미국과도, 중국과도 외교적으로 두텁지 못한 고립노선을 걷게 됐다.

■ 대처 영국처럼 극복? 포르투갈처럼 몰락?

= 선진국들은 한 번씩 병을 앓았다. 1960~1970년대 영국은 강성 노조의 출현으로 경제가 급격히 어려워지자 한 독일 언론이 `영국이 병을 앓고 있다`는 진단을 하기에 이른다. 대항해 시대 때 전 세계 식민지를 호령했던 포르투갈은 해외 식민지에만 신경쓰다가 국내 산업과 정치를 외면한 결과 역으로 전 세계 모든 식민지를 잃었다. 그러나 영국은 병을 딛고 일어난 반면 포르투갈은 유럽의 중형 국가로 축소됐다.

일본은 영국이 될 것인가, 포르투갈이 될 것인가. 일본이 앓고 있는 병은 영국병, 더치병(네덜란드)과 유사하다. 2차대전 승전국인 영국은 60년대 후반부터 강성 노조의 출현과 사회복지 강화로 인해 경제적으로 노동 생산성이 급격히 하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과도한 사회보장이 원인이긴 했지만 `사회 전체적 무기력증`이라는 측면에서는 일본병과 유사하다.

70년대 네덜란드에서 생겨난 이른바 `더치병`도 마찬가지다. 네덜란드 유전 개발에 따른 일시적인 경제 호황으로 국민은 경제적 환상을 갖게 됐고, 구직활동을 하는 것보다 차라리 실업수당을 타면서 지내는 게 더 낫다는 무기력증으로 이어졌다.

영국병과 더치병을 극복한 것은 리더십이었다. 1979년 집권한 마거릿 대처 총리는 탄광 노조의 파업에 대비해 1년간 석탄 사용분을 미리 비축해 놓은 뒤 "어떤 타협이나 협상도 없다"고 선언했고 이후 대처 총리는 `철의 여인`이라는 닉네임을 얻기도 했다.

일본에 이런 리더십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일본 현지 지식인들은 일본이 영국ㆍ네덜란드보다 포르투갈처럼 전락할 것으로 염려하고 있다. 포르투갈 역시 식민지를 통해 벌어들인 자원 덕분에 자국 내 산업 및 정치 무기력증이 확산된 사례다. 식민지를 통해 벌어들인 돈에 의존한 나머지 국내 산업을 육성하지 못했다. 여기에 지난 2세기 동안 왕정, 공화정, 쿠데타 등 정치적 리더십 혼란이 일어나며 식민지마저 잃게 되자 경제적 위상이 급격히 축소됐다. 리더십이 없었다는 점이 포르투갈의 결정적 패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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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경영 컨설턴트인 오마에 겐이치가 한국을 보는 눈이 확 달라졌다. 몇 년 전만 해도 한국이 결코 일본을 따라잡지 못할 것처럼 얘기하던 그가 이제는 거꾸로 일본이 한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갑자기 비행기를 태우니 어지러울 지경이다. 한국 경제를 한 수 아래로 보고 충고를 아끼지 않던 오마에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그의 최신작 ‘지식의 쇠퇴’에 답이 있다. 일본 사회의 집단IQ 저하와 무기력증을 통렬하게 비판한 이 책에서 오마에는 생각하지 않는 일본인, 작은 행복(Small Happiness)에 만족하려는 소시민적 일본인에 분통을 터뜨린다. 모든 게 버블 붕괴에서 비롯됐다. 일본인들은 리스크의 ‘리’자만 나와도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리스크를 피하려다보니 제로금리에도 불구하고 은행에 뭉칫돈을 계속 맡기는 ‘경제음치’ 짓을 멈출 수가 없다. 게다가 만화 ‘소년점프’를 보고 자란 청년세대는 휴대폰과 반경 3m 외에는 관심이 없다. 자동차나 마이홈, 돈 욕심도 없다. 오마에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를 사용하면 하루 식비 500엔의 생활이 가능하다…맥도널드의 아르바이트 월급은 평균 4만6000엔이다. 그것은 샐러리맨이 부인에게 받는 평균 용돈보다 1만엔 정도 많다…프리터(프리 아르바이터·Free Arbeiter)로도 파라사이트(부모에 얹혀 사는 독신족·Parasite)로도 적당히 아르바이트를 하면 OK라는 값싼 생활이 가능한 것이다.”

오마에는 일본 전체가 앓는 의욕 상실과 소시민화를 포르투갈 현상이라고 부른다. 포르투갈은 한때 대항해시대의 주역으로 거대한 식민제국을 건설했으나 네덜란드와 프랑스, 영국에 한 번 밀리자 패배주의에 사로잡혀 순식간에 세계무대에서 자취를 감췄다. 일본이 꼭 포르투갈 짝이 날 수도 있다는 게 오마에의 걱정이다.

90년대 초 버블 붕괴 이후 ‘잃어버린 10년’은 어느덧 ‘잃어버린 20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한때 세계의 혁신을 주도하던 일본이 무기력증의 저주에서 벗어날 방도는 없는 걸까. 오마에는 한국과 중국을 배우자고 말한다. 그러려면 먼저 아시아를 우습게 보는 일본인의 버릇부터 고쳐야 한다. 일본은 19세기 말 후쿠자와 유기치가 탈아론(脫亞論)를 편 이래 아시아를 깔보고 서구를 편애하는 못된 습관이 남아 있다. 중국이나 한국을 본받자고 하면 노골적으로 인상을 쓰거나 자존심이 상하는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마에는 한국에서 뭘 배우라는 걸까. 그는 먼저 삼성을 배우라고 말한다. “일본 기술을 모방했을 뿐”이라며 삼성을 얕볼 게 아니라 자존심을 접고 삼성을 벤치마킹하라는 것이다. 영어로 수업하는 이화여대 국제학부나 ‘다국적기업의 아시아 본부장을 만들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건 고려대 경영대학원도 글로벌 전략화에 더딘 일본이 한국에서 배워야 할 점으로 꼽힌다.

금융위기 이후 한국 경제를 칭송하는 소리가 드높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우익잡지에 ‘한국 경제가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글을 실었던 오마에도 그 대열에 뛰어들었다. 삼성전자의 올 3·4분기 영업이익이 소니·파나소닉·히타치 등 일본 경쟁사 9곳의 이익을 다 합친 것보다 배나 많다는 보도가 나올 정도니 그럴 만도 하다. 한국의 올해 무역흑자 규모는 사상 처음 일본을 앞지를 것이 거의 확실하다.

아시아의 늙은 호랑이로 전락하려는 일본을 두고 고것 참 쌤통이라고 하고 싶은 맘이 굴뚝 같지만 그래선 한국을 애써 무시하려는 일본과 다를 바 없다. 생각하기를 멈춘 일본인의 대오각성을 촉구한 오마에의 절규는 우리에게도 득이 된다. 한국은 수십년 간 일본을 모델로 쉼없이 달려 왔다. 지금은 일본을 반면교사로 삼을 때다. 우리라고 한국병에 걸리지 말란 법이 없다. 오마에는 경제에서 거품을 빼고 위기 의식 아래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는 것만이 한국병을 예방할 가장 확실한 백신임을 새삼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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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일본이 리더십과 창의력을 상실한 채 '집단 무기력증'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가 생겨도 고치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는 '일본병'이 경제ㆍ사회 전체로 퍼지고 있다. 과거 60~70년대 영국과 네덜란드가 과도한 사회보장으로 '영국병'과 '더치병'을 앓았던 것과 흡사하다.

'일본 제조업의 자존심'인 도요타는 지난 27일 8개 모델 생산을 아예 중단했다. 28일에는 유럽에서 200만대 실시하기로 한 리콜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가속페달 결함 문제로 북미시장에서 340만대를 리콜한 데 이은 조치다. 도요타의 리콜은 제품 결함이 이미 나와 지적되고 있었음에도 뒤늦게 나온 조치라는 점에서 충격적이다. 2007년 3월, 2009년 9월에도 같은 결함이 발견됐지만 대응이 안이했던 것이다.

5년 전부터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만 겨냥해 온 도요타는 올해도 2년 연속으로 최종 적자가 예상되며 자칫 이류기업으로 전락할 위기감마저 감돌고 있다.

'하늘의 일본'으로 불렸던 일본항공(JAL)도 추락하고 있다.

2001년 이후 네 차례나 공적자금을 지원받았지만 끝내 회생하지 못하고 최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지난 87년 민영화됐지만 관료 출신 낙하산 인사들이 지속됐고 노동조합을 무려 8개나 보유하는 등 경영을 개선하지 못하다가 2조3000억엔에 달하는 누적부채를 안은 채 끝내 몰락하고 말았다.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침체도 심각하다. 아무리 일해도 소득이 늘지 않는 '워킹푸어' 계층이 이미 3년 전 1000만명을 넘어섰으며 비정규직 근로자 비율은 전체 근로자 중 40%를 돌파했다.

'하류사회'라는 책을 발간해 일본병을 고발한 작가 미우라 아츠시는 "70년대 이후 태어난 세대는 잘살아 보겠다는 목표의식을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며 "소득격차나 경기침체보다는 정신적인 의욕상실이 현대 일본이 직면한 더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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