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호황 끝?…‘옥수수에 물어봐’ - 옥수수 가격과 주가의 향방
최근 농산물 가격 상승에 옥수수 가격의 급등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미국이 자동차 연료를 주입할 때 전체의 10%는 바이오에탄올을 사용해야 한다는 규정을 신설하면서부터 옥수수 파동은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한 대에 넣는 바이오에탄올을 생산하는데 무려 150kg의 옥수수가 사용되는데도 불구하고, 왜 미국은 이런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면 이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옥수수, 석유와 ‘맞짱 뜨다’
미국은 먹는 옥수수와 연료(사료)용 옥수수에 서로 다른 정책을 적용하고 있다. 전자와 후자는 탄소 구조 자체가 다른 품종이다. 이 때문에 후자의 부족으로 전자의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더 많은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원래 옥수수는 인디언의 작물이었다. 아메리카를 접수한 서구인들이 기존 남미 대륙의 동식물 대신 유럽에서 키우던 작물과 동물을 아메리카에 이식했지만 옥수수만은 예외였다. 왜냐하면 단위 면적당 그만큼의 수확을 거둘 수 있는 작물은 옥수수가 거의 유일해서 이주민들도 옥수수에 기대지 않고서는 엄청난 식량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옥수수는 이주민들에게 배척되지 않고 오히려 간택돼 진화하면서 많은 음식물의 원료로 사용됐을 뿐만 아니라 동물의 사료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가 먹고 있는 먹을거리의 4분의 1이 옥수수에서 나오고, 동물 사료의 절반은 옥수수가 차지한다. 일부 지역의 주식에서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섭취되고 사용되는 작물이 된 것이다.
하지만 옥수수의 본격적인 재배는 상당한 재앙을 초래했다. 미국의 농지가 상당 부분 옥수수 밭으로 변화하면서 기존 작물을 키우던 농장들이 모두 사라져 농장의 다양성이 사라진 것이다. 옥수수가 들판을 점령한 셈이었다.
그 결과 옥수수의 수요는 점점 늘어났다. 미국식 음식들이 세계의 식단을 사로잡으면서 아이스크림, 밀크셰이크, 콜라, 소다수 등이 네팔의 산간까지 침투하고 개발도상국들의 지방과 단백질 섭취 요구가 늘어나면서 사육하는 동물의 수도 덩달아 늘어났다. 결국 기존의 건초 등으로는 동물용 사료를 채울 수 없었던 개발도상국들이 닭이나 소, 돼지의 사료로 미국의 다국적기업이 생산하는 옥수수 사료에 의존하게 됐다.
물론 이런 옥수수들은 유전자 조작 작물들이다. 결국 식용 옥수수의 수입에서 사료용 옥수수의 수입까지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옥수수에 의존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런 수요에도 불구하고 유전자 조작이나 품종 개량과 같은 공급 측면의 기술 진화로 옥수수 가격은 점점 더 떨어졌다. 1970년대 미국에서는 우리나라 추곡 수매 제도와 같은 방식으로 옥수수 농가의 소득을 보전해 줬으나 정부 보조금이 조금씩 줄어들면서 농가의 수익성은 점점 악화됐다. 미국에 새로운 고민이 생긴 순간이다.
바로 이때 나타난 현상이 바로 석유 가격의 상승이다. 석유 가격은 옥수수 값을 올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의 하나다. 옥수수를 재배하기 위해 소요되는 석유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동식물은 자연계에서 질소를 흡수해야 생존한다. 식물이 자연에서 섭취할 수 있는 질소는 식물의 뿌리에 사는 박테리아나 비올 때 번개가 들이칠 때 고정된 빗속의 질소가 고작이다. 즉, 질소는 대기 중에 무한하게 존재하지만 식물이 그것을 섭취하는 방법은 제한돼 있는 것이다. 따라서 고온의 열을 이용해 공기 중의 질소를 동식물이 흡수할 수 있는 질소로 고정하는 공정의 개발은 작물을 재배하는 데 가히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흔히 말하는 요소비료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요소비료를 얻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화석 연료를 사용해야 한다. 농장에서 사용하는 트랙터 역시 많은 기름을 소모한다. 그래서 석유 가격의 상승은 기본적으로 수요와 관계없이 비용 측면에서 언제든 옥수수 가격 상승 요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구나 중동의 석유 자원에 대한 지나친 의존에서 벗어나려는 미국의 시도는 바이오에탄올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했고 그것은 곧 의무화됐다. 이는 석유 의존도 감소뿐만 아니라 옥수수 가격 상승을 노린 두 가지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바이오에탄올은 옥수수의 줄기나 껍질을 이용하는 방식이 개발되지 않는 한 경제적으로 무용한 방식임에도 미국이 왜 결정을 내렸는가에 대한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다.
1600 방어 여부에 향후 6개월 달려
옥수수 가격이 오르면 기본적으로 미국의 국내 물가 압력이 높아진다. 하지만 미국은 곡물 수출과 그것을 사료로 쓰는 육류의 수출을 제한할 수 있는 당위성을 얻게 된다. 즉, 옥수수 가격 상승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식량을 전략물자화할 수 있는 중요한 동기를 얻게 된 것이다.
미국 정부의 이러한 입장은 세계 각국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특히 곡물을 자체 생산할 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중동 지역 국가들(참고로 우리나라의 식량 자급률은 약 27% 수준이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게 된다.
석유 없이 사는 게 어려울까,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게 더 어려울까. 여기에 전략적 고민이 엿보인다. 결국 이러한 양상은 두 가지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다. 하나는 양 진영이 치킨 게임을 하기보다는 석유 생산량을 늘리고 저가에 옥수수 공급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히는 것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이와 반대로 극한의 치킨 게임으로 양 진영이 충돌하면서 유가와 곡물가가 천정부지로 치솟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후자의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마주 달리는 기차가 서로 충돌하기 직전까지는 피차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투자자들은 여전히 상품에 대한 관심을 가져도 좋다. 하지만 양 진영의 치킨 게임이 거의 종착점에 이르고 기차가 충돌하기 직전에 이르면 현물에 대한 투자를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역사는 핵을 가진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하지 않듯 결국 긴장을 해소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 것이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현재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브라질과 같은 천연자원 생산국(특히 식물자원)과 곡물에 대한 지수 투자, 다국적 곡물 기업이 포함된 펀드 투자는 여전히 유효하지만, 그 수익률이 정점에 이르고 상황이 점차 악화되면 마지막 폭탄을 더 이상 돌리려 하지 말고 적당한 지점에서 이익을 수취하고 떠나는 것이 옳다.
주식시장의 경우에도 같은 맥락에서 움직일 것이다. 약달러 기조, 미국의 경기 침체 등은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 같은 금융 부문과 유가 상승 등의 실물 부문에 기초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에는 이제 거의 8부 능선을 넘고 있지만, 후자의 경우에는 아직 끝이 보이지는 않기 때문에 안심할 상황이 아니다. 하지만 시장은 이런 상황들을 선반영하고 있고, 바로 이런 시각들의 충돌이 1600 수준에서의 사자와 팔자 간의 충돌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주식시장이 1600을 지켜내는지는 대단히 중요하다. 이것은 바로 게임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많은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를 알려주는 지표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가끔은 차트도 한 번씩 보자. 지금 코스피의 일간, 주간, 월간 가격들은 대단히 중요한 지점에 위치해 있고 거래량 역시 치열한 격돌을 벌이고 있는 모습이다. 이 싸움에서 누가 이기는지는 최소 6개월간의 방향성을 좌우하는 중차대한 의미를 가질 것이다.
용어 설명
치킨 게임 : 극단적인 경쟁을 의미한다.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이 즐겼던 자동차 게임에서 비롯된 말이다. 양쪽에서 두 대의 자동차가 마주 달리다가 충돌 직전 먼저 방향을 바꾸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었다. 진 사람은 멍청이라는 뜻의 치킨으로 불렸다. 치킨 게임에서 양측 모두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충돌하는 수밖에 없고 이는 공멸일 뿐이어서 아무 이득이 없다.
현직 외과의사이자 저명한 투자 칼럼니스트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시골의사’ 박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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