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세장의 길잡이…첨단 산업 적용 ‘글쎄’ - 주가순자산배율의 유용성
> 한경비즈니스 2008-01-18 11:03:00
시장이 그동안 누차 강조한 대로 서서히 불확실성의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럴 때 투자자들은 적극적으로 투자에 나서기보다는 이 기간을 차라리 공부하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삼으면서 다음을 기다리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그런 맥락에서 이번에는 주가순자산배율(PBR)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교육 기업, PBR로 평가하면 곤란
먼저 아래의 ‘주가 예측…PER보다 PBR 봐라’라는 제목의 신문 기사를 보자.
“흔히 사용되는 주가 예측지표 중 주가수익률(PER)보다 주가순자산배율(PBR)의 예측력이 한 수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코스닥 시장에서는 PER보다는 PBR가 유용하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증권선물거래소가 26일 배포한 ‘주가 예측지표로서의 PER 및 PBR의 유용성 분석’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이 두 지표와 국내 주식시장의 흐름을 비교해 본 결과 PBR가 PER보다 높은 예측력을 가진 것으로 조사됐다. 12개월 동안 각 지표로 나눈 그룹군(PER/PBR 상중하 그룹 총 6개)의 PER를 측정해본 결과 저PBR주가 저PER주보다 더 높은 주가 상승률을 나타낸 것이다. 즉, 주가가 PER보다 PBR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을 보인 것. PBR는 투자지표로서 유용성이 큰 것으로 확인됐다. 코스피와 코스닥 양 시장 모두에서 PBR가 낮으면 낮을수록 수익률이 높게 나타났다. 특히 코스닥에서는 PER의 유용도가 떨어지는 반면 PBR에 따른 주가 반영 속도는 빠르면서도 지속적으로 나타나며 투자 지표로서 톡톡한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PER도 유용한 투자 참고 지표이긴 하지만 PBR에 비해 주가와의 상관성에서 다소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PER가 낮은 종목일수록 주가는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국내 주식시장에서 2000년 이후 실적에 비해 주가가 낮은 종목들은 꾸준한 주가상승을 이뤄 적정 가치에 부합하도록 변모했다. 그러나 시장별로 PER의 반영 양상은 다르게 나타났다. 코스피 시장에서 저PER주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높은 수익률을 보였다. 반면 코스닥 시장에서 저PER주는 단기간에만 올랐을 뿐 시간이 지남에 따라 주가와의 상관성은 떨어졌다.”
이 기사는 PER는 유가증권시장에서, PBR는 코스닥시장에서 유용한 지표가 되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왜 그럴까. 앞서 말한 대로 코스닥 시장은 계량화하기 어려운 성장성을 가격으로 사고팔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투기화돼 있기 때문이다. 즉, PER가 높을수록 인기가 있고 미래 가치가 선호되지만, 그 반대의 경우는 저평가가 아니라 꿈조차도 없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면 PBR는 무엇일까. PBR는 주가를 주당 순자산 가치로 나눈 값이다. 즉 ‘주가/1주당 순자산’이 바로 PBR다. 여기서 말하는 순자산이란 대차대조표상에 나타난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문자 그대로의 ‘순자산’을 말하는 것으로, 성장성이나 기업의 특성이 아닌 현재 해당 기업의 재무 가치 즉, 재산 가치를 따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A, B, C 세 기업이 비슷한 업종에서 비슷한 수익을 내고 있고 이 회사들의 장부상 주당 순자산이 2만 원이고 주가가 각각 1만 원, 2만 원, 3만 원이라면 PBR는 각각 1만 원/2만 원=0.5배, 2만 원/2만 원=1배, 3만 원/2만 원=1.5배가 될 것이다. 이 경우 A사는 회사를 매각하면 주식을 두 번 살 수 있고, B사는 한 번, C사는 회사를 팔아봐야 전체 주식의 3분의 2밖에 살 수 없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어느 회사를 사야 할까. 답은 A사로, 너무 자명하다. 이때 이들 기업의 목표가는 A사는 2만 원으로 매수, B사는 중립, C사는 목표가 30% 하향이 될 것이다. 이러고 보면 ‘주가 예측… PER보다 PBR 봐라’는 기사도 나름대로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우선 정답부터 말하자면 ‘틀렸다’다. 가치 투자의 아버지인 벤저민 그레이엄은 앞서 말한 대로 PER와 PBR의 중요성을 누누이 강조했다. 그렇다면 그를 스승으로 삼은 워런 버핏도, 그리고 그를 사모하는 가치 투자자 군단들도 그들 스승의 가르침을 따라야겠지만 아쉽게도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왜냐하면 과거 벤저민 그레이엄이 기업을 평가하던 시절에는 미국의 주력 산업은 대부분 굴뚝주, 소위 2차산업에 해당하는 거대 장치산업들이다. 이들 기업의 특성은 넓은 부지, 큰 설비, 엄청난 자금들을 필요로 한다. 즉, 전력, 에너지, 철도, 통신 서비스와 같은 산업들은 거대한 인프라가 필요하고 자산도 가치 평가가 수월하다. 이런 산업군들의 속성상 ‘만약 그와 같은 시설을 짓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자금이 필요할까’라는 역질문에 대한 답으로 PBR라는 개념이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대 기업들은 다르다. 2차산업은 신흥국 중심으로 재편되고 자본 거래가 활발한 나라들이나 3차산업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산업군을 가진 나라에서 PBR의 의미는 갈수록 퇴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PBR는 PER가 고평가된 상황에서 거품의 정도를 살피는데 의미를 두거나, 과거 대비 상대적인 가치 평가를 할 때, 혹은 동일 업종에서 가치를 비교할 때 정도만 유용할 뿐 하이테크화하는 기업들이나 서비스 기업들의 경우에는 유용성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 크레듀와 같은 교육 기업, 네이버와 같은 포털, 심지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등의 경우에는 그 정도가 더 심하다.
자산 가치, 장부상 가치와 ‘괴리’
그렇다고 PBR가 무용하다는 것은 아니다. 자산 가치는 2차 장치산업 분야, 토지나 시설 설비를 기본으로 하는 분야, 그리고 금융 기업에서는 여전히 독보적인 가치 평가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거대 장치산업, 가령 한국전력의 경우 분명히 보유 부동산이나 설비만 해도 상당히 PBR가 저평가된 것은 사실이지만, 장부 가치와 실제 가치의 차이가 큰 것이 고민이다. 보유 부동산을 구입 시점의 가격으로 자산을 산정하거나 공시지가 기준으로 평가된 경우가 많아 실제의 PBR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으로 낮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위 자산주 열풍이 불면 이익 성장성은 낮지만 저평가된 자산 가치만으로도 주가가 급등할 수 있다(섬유, 제지, 제분 등 공장 부지가 많이 필요한 2차산업이 대표적이다). 특히 금융 기업의 경우에는 대차대조표상의 자산이 거의 현재 가치를 반영하기 때문에(주식이나 채권 같은 유가증권이나 현금성 자산은 가치가 실제 가치를 반영한다) 더더욱 유용하다. 금융 업종의 경우에는 자산 가치가 장부 가치와 비슷하므로 실제 자산 가치 대비 적정 주가를 산출하기가 용이하고 다른 기업과 비교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A방직과 B방직의 PBR가 모두 0.5배라고 해도 A방직은 자산이 구입가로 장부에 반영돼 있고 B방직은 자산 재평가를 통해 실거래가로 반영돼 있다면 결국 A방직이 저평가된 것이라고 여길 수 있는 것이다.
이쯤에서 정리하면 PBR는 영업이익 성장률이 정체되고 PER 역시 10배 이하로 금리 수익 정도밖에 내지 못하는 소위 사양산업일 경우에는 상당히 유용하다. 즉, 이런 경우 회사는 청산이 유리하고 청산이 유리한 회사는 실제 자산의 가치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PER가 높고 프랜차이즈 밸류(독점력)가 큰 회사의 경우에는 무형의 자산을 평가할 잣대도 마땅치 않고 현재 가치보다는 미래 가치가 더 중요하므로 은행이나 증권, 보험사 등의 금융사를 제외하고는 현재 자산은 큰 의미가 없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PBR는 한전, 가스공사, 방직회사, 제지회사, 제분회사, 봉제회사, KT, 은행, 보험, 증권, 조선, 철강, 건설 등의 경우에는 충분히 유용하게 적용할 수 있는 지표인 셈이다. 한데 이렇게 단순하고 명확한 PBR 지표가 왜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오히려 기술력과 미래 가치가 중요한 코스닥 기업에서 더 효과적이었을까.
도입부에 본 기사와 필자의 설명은 분명히 차이가 크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첫째, 과거 코스닥은 지나치게 미래만 보고 허상을 좇은 결과 거품이 발생했다. 그 후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미래 가치보다 현재 가치에 주목해 PBR가 더 유용한 지표로 사용된 것이다. 둘째, 그 결과 2000년 이후 코스닥에서 소위 굴뚝주들이나 건설주들의 주가가 주로 성장했고 순수 벤처 기업들의 주가는 부진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시장은 늘 효율적이고 유행이 변하듯이 시장을 바로 보는 기준도 변한다. 그래서 주가가 약세를 보이고 불안하면 PBR가 강세를 보이고 심리적으로 흥분하면 PER가 훨씬 더 일리가 있게 보이는 것이니, 무엇이든지 절대 가치는 없다는 점을 꼭 기억해 두자.
현직 외과의사이자 저명한 투자 칼럼니스트다. 본명보다 ‘시골의사’란 필명으로 유명하다. 투자 분석으로 영리 활동을 하지 않는 거의 유일한 전문가다. 명쾌한 논리와 유려한 문장으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다.
‘시골의사’ 박경철
'주식일반 > 박경철(주식)'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안정성·수익성 두 마리 토끼 사냥법 (0) | 2008.04.16 |
---|---|
재무제표 쉽게 보는 법 ① (0) | 2008.04.16 |
고평가와 고PER ‘별개’ (0) | 2008.04.15 |
심각한 투자 환경…‘잔치는 끝나’ (0) | 2008.04.15 |
자산시장 호황 ‘끝물’ (0) | 2008.04.15 |